정(亭)

 

                                                                                        이미연

황사가 날아온다. 강풍이 분다. 뿌연 하늘을 이고, 우리 일행은 바람 사이로 보이는 꽃을 보러 봄 야유회를 나선다. 모이는 장소는 압구정동이다. 그곳에는 행선지를 앞 창에 이름표처럼 매단 버스가 있다. 모자 하나 눌러 쓴 채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간다. 그러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려 해서 손으로 머리와 모자를 함께 누른다. 자리에 앉고 나니, 버스가 출발한다.

한강의 정취를 자랑하던 압구정(鴨鷗亭)의 형체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곳을 떠난다. 한명회가 갈매기를 벗하려고 했는지, 명나라 사신들을 청하는 연회를 위해 지으려 했는지, 그의 뜻을 알기 어려우나 호화로움이 지나쳐 임금의 노여움을 샀다는 이야기만 전한다. 한명회가 건너던 뱃길에는 지금 한남대교가 서 있다. 버스는 그 다리를 건너 남산에 난 굴을 통과했다. 복개된 청계천 그 옆을 지나 복원 중인 경복궁의 대문 광화문을 향했다. 그 옛날에 지름길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래서인가 관광버스는 바로 그 길을 지나고 있다.

버스는 광화문 앞을 지나치면서 서쪽에 있는 금화터널을 지나 연희궁이 있던 신촌(新村)으로 향한다. 대학 동네를 지나 쭉 달리니, 도심을 벗어나 다시 한강의 하류에 다다른다. 효령대군이 세워 세종과 문종, 성종들을 포함한 왕족들이 즐겨 찾았던 망원정(望遠亭)[또는 喜雨亭이라 불린다]을 뒤로 한 채 북(北)으로 달린다. 한강제방(漢江堤防)으로 만든 넓은 길은, 신호등 없이 자유롭게 달려 자유로인지 북쪽의 동포를 향해 달려서인지, 그 이름만은 자유로(自由路)이다.

임진각(臨津閣)에 도착한다. 임진각은 사적(私的)인 공간인 정자(亭子)와는 달리 조금 더 높은 공적公的인 누각(樓閣)이다. 30년 전 잘 정돈된 통일로와 함께 염원을 모아 그 끝에 세운 전망대와 양식당과 매점 한식당을 겸한 현대판 각(閣)이다.

일행과 나는 버스에서 내리고 둘레를 돌아본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삼촌과 함께 왔을 때는 꽤 멋진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오래된 건물을 단장하느라 골조만 남았다. 임진각 앞마당에는 우리나라 지도를 본 뜬 연못, 북한산 제품을 팔기 위한 매점, 아이들 놀이시설들 그리고 주차장도 보인다.

그곳을 떠나 버스는 한강이 아닌 임진강가에 세워진 반구정(伴鷗亭)에 들러 일행을 내린다. 이 정자는 황희(黃喜) 정승의 유배지였다가 87세에 퇴임하고 머물렀던 곳이다. 그가 89세에 돌아가시자 세조 때 후학 유림들은 앙지대(仰止臺)란 사당을 지어 영정을 모시었다. 그 후학들의 뜻을 기리는 듯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반구정은 임진강가에 있어 맑은 날이면 송도의 송악산이 보이는 위치이건만 언덕도 낮고, 앞에는 검은 개펄이 펼쳐져 있어 지금에 와서는 경치가 그리 빼어난 편은 아니다. 황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조차 없어서인가 주변 풍경은 조금은 쓸쓸하다.

임진강 상류(上流) 쪽으로 십여 분 버스가 달려 우리는 화석정(花石亭) 주차장에 내린다. 좁게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이즈음 방문객의 발길도 뜸한 듯 한가한 정자를 만난다. 현판(懸板)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글씨로 걸려 있다.

화석정은 당(唐) 문장 중 풍광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화석(花石)을 그대로 옮길 만한 주변 경치를 자랑한다. 8세 때 어린 율곡이 가을 풍경을 읊은 시(詩) ‘화석정’이 안쪽으로 걸려 있다. 인솔하신 선생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과 함께 해설을 해 주신다. 눈으로 경치를 바라보고 그 풍광을 묘사한 작품을 귀로 들으면서 나는 마음에 부드럽게 새겨지는 여운을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후에 관직에서 퇴임한 이이(李珥)는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이곳에서 여생을 보낸다. 여정(輿情)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돌아서는 발길에 하늘을 바라보니 그 당시 모여 앉아 있었을 선생님과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사라진 화려한 압구정은 그 기원(起源)대로 현재도 화려한 주거와 상업지대로 남는다. 희우정은 왕조가 사라지고 몇 번의 화재와 이전으로 옮기다가 지금의 위치인 자유로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그 이름을 보존하고 있다. 임진각은 실향민의 염원을 담아 북녘을 바라보던 일반인을 위한 첫번째 누각이었지만, 지금은 곳곳의 통일전망대가 생기고 금강산 등 일부의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어 그 본래 설립의 뜻은 변하고 있는 중이다. 삼십여 년의 세월 실향민과 우리에게 보여준 애환(哀歡)은 조금씩 희석된 채 여느 관광지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다.

반구정과 화석정은 전에도 가본 곳이었고 처음 들어본 이야기들도 아니었지만, 사람과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정자와 그들을 따르는 후학들의 모습이 떠올라 여러 선생님들과 문우들과 동행한 내가 느낀 감동은 새삼스럽다. 학문하는 자의 곧은 자세와 현직에서 물러나도 스승을 따르는 후학들의 자세가 조촐한 정자와 어우러진다.

가는 곳마다 꽃들이 피어 있었던 듯도 한데 나는 꽃을 기억하는 대신 정자들이 한 송이 꽃처럼 영롱하게 기억된다. 방배동에 있는 정자 한 귀퉁이에 앉아서, 지천명(知天命)인 나도 그 후학들처럼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황사는 부는데, 묵묵히 서 있는 정자가 의연(依然)하다.

 

 

<계간수필>로 천료(99년). 그레이스 수필문우회 회원.

공저 『단감찾기』,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화』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