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 만들기

 

                                                                                         민명자

초저녁인데도 종로 거리는 혼잡하다.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려는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모여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뜨리는가 하면, 보신각 주변에는 벌써 제야의 타종을 보기 위해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즐비하게 늘어선 노점상들을 옆으로, 이리저리 인파들 사이를 겨우 빠져나와 인사동 입구로 접어든다. 오른쪽의 작은 광장에서는 ‘1% 나눔의 콘서트’라는 현수막을 걸고 한 젊은이가 불우이웃 성금을 모으기 위해 열창을 한다. 솜사탕 장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솜사탕을 나누어 먹는 연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어릴 때 먹었던 솜사탕의 미각이 살아난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의 시장 어귀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솜사탕을 만들어 팔았다. 나는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지날 때마다 그 곁에 가까이 가 한참씩 바라보곤 했다. 솜사탕 기계는 바깥에 원통형의 큰 용기(容器)가 있고, 페달을 밟으면(지금은 전기 모터가 발을 대신한다) 이 용기 안에 있는 작은 통이 윙윙 돌아가게 되어 있다. 솜사탕을 만들려면 우선 이 작은 원통에 설탕을 두어 숟갈 넣고 페달을 밟는다. 그러면 그 설탕이 작은 원통의 잔구멍들을 통해 어린 새의 솜털처럼 보드라운 것이 되어 큰 통 쪽으로 날아 나온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모았다. 금방 둥그런 솜사탕이 되었다. 박자가 척척 맞는 그 손동작과 발동작이 어린 눈에는 가히 마법 같았다.

솜사탕이 어떤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건 훨씬 후에야 알았다. 그 원리란 작은 통이 제 몸 안에 있는 설탕을 큰 통으로 내보내는 힘, 요컨대 원심력의 작용이다. 그때 나는 ‘솜사탕 같은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한 일이 있다. 아마도 원심력을 ‘너에게로 내가’ 나아가려는 힘에 비유한다면, 이와는 반대로 구심력은 ‘나에게로 너를’ 끌어들이려는 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혀끝에 닿자마자 있는 듯 없는 듯 이내 제 몸을 녹여 단맛을 내는 솜사탕, 그러한 사랑도 ‘나에게로 너를’ 끌어들이려는 힘이 아니라 ‘너에게로 내가’ 나아가려는 그런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솜사탕 같은 사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가 역시 유명한 작곡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둘이 환상적인 커플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은 부인의 노래에 대해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부인이 좀더 완벽한, 한 차원 더 높은 노래를 하도록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남편의 기대와는 달리 부인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자신의 결함이 자꾸 지적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감을 상실한 그녀는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 부부는 헤어져야 했다. 후에 그녀는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어느 부호와 재혼을 했다. 그에게 있어 부인의 노래는 가히 천상의 소리와 다름없었다. 그는 부인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자주 파티를 열어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무대에 서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바탕으로서의 마음은 거의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솜사탕을 만들어내는 원료로서의 설탕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솜사탕 같은 사랑’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마음을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게 하도 오묘하니 ‘사랑’이란 단어는 늘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난해하게 우리 앞에 던져진다. ‘사랑이 길더냐 짧더냐, 둥글더냐 모나더냐’,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도 않고, 도대체 알 듯 모를 듯한 사랑의 정체. 사랑의 종류나 표현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러기에 사랑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생사에서 끊임없이 화두가 되어 와 오히려 낡고 진부한 언어처럼 되어버렸다. 그만큼 참된 사랑이 어렵다는 반증일 게다.

한때 나는 작곡가와 같은 사랑을 진정한 사랑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흠을 방치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에게 있어서는 ‘사랑’과 ‘정의(正義)’가 동의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생각했던 흠이나 정의라는 게 다만 내 기준에 따른 것일 때가 더 많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자기 아내를 좀더 완벽하게, 한 차원 더 높게 해주려던 작곡가의 사랑도 물론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완성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랑’으로 끝났다. 그의 사랑이 실패로 끝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의도나 욕심이 더 앞선 탓에, ‘너에게로 내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너를’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듯하다.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1% 나눔의 콘서트’는 이미 끝나 있었다. 문득 불우이웃을 위하여 열창하던 그 젊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너에게로 내가’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광장에는 젊은 연인들이 아까보다 더 많이 붐비고 있었다. 저들의 마음속에는 각각 어떤 사랑이 자리잡고 있을까? 나는 속으로 뇌어보았다.

‘솜사탕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에 있답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에 ‘사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다. 그 중에 진정으로 ‘너’를 위한 ‘솜사탕’은 얼마나 많이 만들어냈을까? 이제 잠시 후면 서른세 번 제야의 종이 울릴 것이고, 그 소리는 원심력으로 멀리 퍼져, 많은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게 할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나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솜사탕과 겹쳐 환(幻)으로 둥둥 송년의 밤하늘에 떠올랐다.

 

 

<계간수필>로 등단(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