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김유정(金裕貞)의

 

‘幸福을 등진 情熱’

 

 

일 `시`:``2005년 6월 18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문우회 및 계수회 회원 18명

사` 회`:`김병권

정` 리`:`최순희

 

<본문>

 

幸福을 등진 情熱

 

 

인젠 여름도 갔나부다. 아츰 저녁으로 제법 맑은 높새가 건들거리기 시작한다. 머지 않어 가을은 올 것이다. 얼른 가을이 되어주기를 나는 여간 기달려지지 않는다. 가을은 마치 나에게 커다랗고 그리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가저올 것만 같이 생각이 든다.

 

요즘에 나는 또 하나의 병이 늘었다. 지금 두 가지의 病을 앓으며 이렇게 철이 바뀌기만 무턱대고 기다리고 누어있다. 나는 바뀌는 節序에 가끔 속았다.

 

지난 겨울만하여도 얼른 봄이 되어주기를 그 얼마나 기달리었든가. 봄이 오면 날이 和暢할게고 보드라운 바람에 움이 트고 꽃도 피리라. 萬物은 씩씩한 蘇生의 樂園으로 變소할 것이다. 따라 나에게도 보드라운 그 무엇이 찾아와 무거운 이 憂鬱을 씻쳐줄 것만 같았다.

 

「오냐! 봄만 되거라.」

「봄이 오면!」등단(2001년).

현 이대 동창문인회 총무. 과천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저서 『낯선 시간 속에서』, 『바람 속에 서다』 공저.

 

나는 이렇게 혼잣소리를 하며 뻔질 주먹을 굳게 쥐었다. 한번은 옆에 있든 한 동무가 수상스러워서 묻는 것이다.

「金! 봄이 오면 뭐 큰 수나 생기십니까?」

「그럼이요!」 하고 나는 제법 토심스리 대답하였다. 내 自身 亦자 난데없는 그 수라는 것이 웬놈의 순지 영문도 모르련만.

그러자 봄은 되었다. 갑자기 변하는 日氣로 말미아마 그런지 나는 每日같이 血痰을 吐하였다. 밤이면 不眠症으로 시난고난 몸이 말랐다.

 

이렇게 病勢가 점점 惡化되어 갈제 그 동무는 나를 딱하게 처다 본다.

「金! 봄이 되였는데 어째…」

「글세요!」

이때 나의 대답은 너머도 무색하였다 그는 나를 데리고 술집으로 가드니 「인젠 그렇게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거 안 됩니다」 하고 넘겨 집는 소리로 낯에 嘲笑를 띠는 것이다. 허나 그는 설마 나를 비웃지는 않었으리라. 왜냐면 그도 또한 바뀌는 철만 기다리는 사람의 하나임을 나는 잘 안다. 그는 秀才의 詩人이었다. 거츠러진 나의 몸에서 그의 自身을 비로소 깨닫고 그리고 역정스리 웃었는지도 모른다.

 

바뀌는 철만 기다리는 마음 그것은 分明히 憂鬱의 延長이다. 咫尺에 님 두고 못 보는 마음 거기에나 比할는지. 안타깝고 겁겁한 希望으로 가는 날짜를 부지런히 손꼽아본다. 그러나 정작 제철이 닥처 오면 덜컥하고 고만 낙심하고 마는 것이다.

幸福의 本質은 믿음에 있으리라. 속으면서 그래도 믿는, 이것이 어쩌면 幸福의 하날지도 모른다.

 

事實인즉 나는 그 幸福과 因緣을 끊은 지 이미 오랬다. 지금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은 決코 그것 때문이 아니다. 말하자면 幸福과 등진 熱情에서 삐쳐난 生活이라 하는 게 옳을는지.

그러나 가을아 어서 오너라. 이번에 가을이 오면 그는 나를 찾아주려니, 그는 반듯이 나를 찾아주려니, 되지 않을 걸 이렇게 혼자 자꾸만 우기며 나는 철이 바뀌기만 까맣게 기다린다.

─ 1936. 10. <여성>

 

 

사회`:`안녕하십니까. <계간수필> 제41호, 2005년 가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김유정의 ‘행복을 등진 정열’입니다.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은 우리 문단의 큰 별로서, 짧은 생애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입니다. 친구 안회남安懷南의 권유에 따라 1930년에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25세 되던 1933년 ‘산골 나그네’를 <제일선>이란 잡지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습니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4년 동안 소설 31편, 수필 12편, 서간 5편, 논문 1편, 번역 2편 등 모두 51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오늘 합평작인 ‘행복을 등진 정열’은 1936년 <여성>지에 발표된 수필입니다.

지정토론자로는 유경환·김형진·김국자 선생을 모셨습니다. 먼저 유경환 선생께 김유정 작가론을 부탁드립니다.

유경환`:`김유정은 1908년 강원도 춘성군 신남면 중리, 속칭 ‘실레’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나 서울 운니동의 아흔아홉 칸짜리 집에서 자라났습니다. 7세에 모친이 별세하고 9세 때 부친마저 별세하는데, 그 형의 방탕으로 천석지기 재산을 거의 다 날리게 되지요. 1930년 연희전문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그 후 보성전문에도 잠시 적을 두었다가 고향 실레 마을로 내려가 야학을 가르치는 등 농촌 계몽활동에 힘쓰지요. 이때 늑막염을 앓기도 하고 예산 근처에서 금광을 전전하다 1933년엔 폐결핵 진단을 받는데, 춘천서 배분받은 돈이 떨어지자 생활을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33년에 처녀작 ‘산골 나그네’를 발표하고, 35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가 당선되었으며, 조선중앙일보에 ‘노다지’가 가작입선하지요. 이 해에 소설 9편과 수필 3편을 발표하고, 역시 폐결핵을 앓던 이상과 친하게 됩니다. 1936년에는 마지막 애인 박봉자를 사랑했으나 거절당하고, 이듬해 서른 살을 채우지 못하고 경기도 광주 매형 집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소설 ‘봄봄’, ‘동백꽃’ 등 31편과 수필 12편, 번역 작품을 2편 남겼습니다. 그 중 수필 ‘조선의 집시’(1935)는 병술을 들고 다니며 팔던 들병장수들의 애환을 그린 글입니다. 누구도 형상화하지 않았던 한국의 민속적 여성상이랄까, 생존에 급급할 수밖에 없던 억압된 여성 주변을 잘 그리고 있지요. ‘강원도 여성’(1937)은 현대문명이 침투하지 않은 민족적 여성주의의 모델로, 질긴 동갈색 얼굴에 근실한 이목구비가 싱싱한 태어난 그대로의 30년대 산골 여성의 모습을 담아낸 글입니다.

1935년부터 너나없이 식민지 시대의 궁핍을 벗어나기 위해 금을 찾아 나서는데, 김유정도 ‘금 따는 콩밭’, ‘노다지’, ‘금’ 등 3편의 소설과 ‘연기’, ‘봄밤’ 등 금을 모티브로 하는 수필 2편을 남깁니다. 김유정의 문장을 바로 알기 위해선 소설도 살펴보아야 하는데, 대표작인 ‘동백꽃’과 ‘봄봄’은 둘 다 도시의 야박한 인심이 스며들지 않은 농촌을 무대로 김유정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농촌 사람들의 우직하고 토속적인 인간미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유정의 짧은 생애는 시대의 희생자가 된, 피폐할 대로 피폐한 한 지식인 청년의 몰락을 보여줍니다. 유정은 서른이 가까운 나이까지도 애정결핍으로 어머니를 닮은 다섯 살 연상의 남도명창 박녹주를 연모하나, 이것이 짝사랑으로 끝남으로써 술에 몸을 망치고 때 이르게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사회`:`김유정은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탔으나, 술이 취하면 동요를 즐겨 불렀고 늘 자살을 위한 약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합니다. 누님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았다는데, 유정이 결혼을 별로 원치 않은 데는 그 영향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에는 김형진 선생께서 김유정의 수필론을 발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형진`:`김유정의 수필들은 색채가 뚜렷한데, 농담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흑색 계열에 속합니다. 이는 그의 발병과 관계가 깊습니다. 병증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다섯 편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병상기 혹은 투병기라 하겠습니다. 그의 문학적 특성은 앞의 다섯 편에 더 잘 드러난다고 봅니다.

겉보기론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가난하나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오월의 산골짜기’, ‘잎이 푸르러 가시든 님이’는 김유정 문학의 바탕색으로 작용하여 ‘봄봄’, ‘동백꽃’ 등의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을 법합니다. 아름다운 고향산천과 그 아름다움에 싸여 살면서도 늘 가난하고 고되어 무뚝뚝한 고향 사람들과의 부조화를 보고 느끼면서 그가 문학적 도구로 치켜든 것이 풍자적 저항이었지요. 거기서 나온 것이 ‘전차가 희극을 낳아’, ‘조선의 집시`-`들병이 철학’입니다.

‘밥! 밥! 이렇게 부르짖고 보면 대뜸 신성치 못한 아귀를 연상케 된다… 그리고 매춘부적 애교 아첨도 필요할는지 모른다… 노동하여 생활하는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즉, 들병이입니다. 사회적 통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들병이’에 대한 합리화는 예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들의 생활을 동정하고 동조하는 태도까지 보입니다. 이는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못함 사이에서 빚어진 풍자적 독설이며, 이 대목이 김유정 수필의 진수라 할 것입니다.

병증이 나타나면서 그의 수필은 흑색을 띠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투병기로 치부될 수 있는 글들이지요. 이는 다시 ‘길`-`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대표되는 저항적 투병기와 ‘밤이 조금만 짧았더라면’으로 대표되는 패배적 투병기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전자에서 한 청년의 “돌아가시기 전에 얼른 걸작을 쓰셔야지요?”라는 말에 모욕을 느끼고, “내가 그 길을 완전히 걷는 그 날까지는 나의 몸과 생명이 결코 꺾임이 없을 것을 굳게굳게 믿는 바이다” 하는 다짐은 다분히 저항적이지요. 그러나 그가 문학적 도구로 치켜들었던 풍자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여유가 없어진 때문이겠지요. 그러다 ‘밤이 조금만 짧았더라면’을 거쳐 ‘네가 봄이런가’에 오면 한층 더 절망적이 된 모습에서 죽음이 임박했음을 엿보게 됩니다. 이렇게 그의 투병은 패배로 끝이 나지요.

나는 김유정 전집에 수록된 수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필일까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단순한 기록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글들을 통하여 김유정 문학의 바탕을 이해하고 그의 삶의 중요한 단계를 실감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회`:`지금까지 작가론과 작품론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김국자 선생께 이 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김국자`:`양친을 일찍 여의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고, 처절하게 사랑을 앓은 사람이 글도 잘 쓰던데, 김유정의 경우가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고나 할까요.

수필을 알기 위해 소설부터 조금 살펴보자면, 그의 소설은 특유의 풍자와 아이러니 수법으로 시대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도 검열에 걸리지 않았고 재미있는 소설로 평가받았지요.

단편 ‘만무방’은 지주와 마름에게 시달리는 가난 속에서 일년 내내 일해도 가을에 도조, 장리쌀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등줄기에 식은땀뿐이라 빚에 쪼들리다 못해 ‘애교 있게’ 도망치는 응칠이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다 가정마저 해체되어 결국 응칠이는 계집도 집도 자식도 없고, 방은 있대야 남의 집 곁방이요 잠은 새우잠이지요. 이런 신세다 보니 게을러지고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술판, 금판, 투전판을 쫓아다니며 소일하게 됩니다. 김유정 소설의 대다수 남자 주인공들의 모습이지요.

‘봄봄’에서도 붙박이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점순이네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주인공과 장인의 싸움이 초장부터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이렇게 웃다가도 끝에는 하나같이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함과 막막함을 풀 길 없는 결말이 내려집니다. 작가가 살았던 암담한 시대적 배경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지요. 김유정은 양심이나 윤리성과는 별개로 토속적이고 질퍽한 어휘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무지하고 빈곤한 그 시대의 일상적 삶을 그려내는데, 여기에 그의 소설의 특징이 있다 하겠습니다.

한편 수필은 김유정 자신의 이야기이고, 그러다 보니 다분히 교훈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구성 면에서도 조금 허술해 보입니다. 합평 작품인 ‘행복을 등진 정열’은 제목부터 많은 암시를 주고 있지요. 우선 ‘등진’이란 단어는 일이 어그러지고 뻐그러지는 상황을 연상시키는데,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렇게 등지는 결말을 보여줍니다.

첫 단락에서 ‘가을은 마치 나에게 커다랗고 그리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가져올 것만 같이 생각이 든다’라면서 병마에 시달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갖지요. 뻔히 눈을 뜬 채 꿈꾸는 상태에서 심리적 탈출을 꾀하는 거지요. 넷째 단락의 ‘오냐! 봄만 되거라’ 혹은 ‘봄이 오면’ 하는 독백들은 그의 소설 ‘금 따는 콩밭’에서 ‘오냐! 금만 나오거라’ 하고 중얼거리면서 생명과도 같은 콩밭을 여기저기 파헤치는 장면을 연상시켜 더욱 처절하게 다가듭니다.

김유정은 형이 많은 가산을 탕진하여 성인이 되어도 독립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시대적 암울,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과 절망적인 폐결핵 선고와 같은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 살아남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이 글에 담고 있습니다. 피를 토하면서도 글을 쓴 이유는 바로 글쓰기가 곧 삶이었기 때문이겠지요. 김유정은 또한 언어구사력이 탁월한 작가로 사투리를 많이 사용했는데, 수필과 소설이 모두 일맥상통하는 것이 ‘소설이 승화되면 결국 수필이 된다’는 말의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사회`:`작가론과 소설과 수필을 아우르는 지정토론자들의 작품론을 들어보았습니다. 그 밖에 새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객석에서 첨언해 주십시오.

정진권`:`‘병마와 싸우며’란 수필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인데, 대중소설을 몇 권 보내주면 번역해서 그 돈으로 닭을 몇 마리 고아먹고 싶다는 등의 얘기가 있습니다. 참 불쌍하고 안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합평 작품 다섯째 문단의 ‘인젠 그렇게 기다리지 마십시오’라는 말이나 여섯째 문단의 ‘지척에 님 두고 못 보는 마음’에 나오는 ‘그’나 ‘님’이 누구 얘긴가 궁금했는데, 의문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저는 박녹주 얘기는 오늘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유경환`:`앞서 김형진 선생은 발병 이전의 다섯 편은 회색이고, 그 후의 투병기들은 흑색이며, 그의 수필의 대부분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필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하셨는데, 동감입니다. 그 당시 수필의 수준이 이 정도였구나 싶습니다. 이 작품 끝부분의 ‘이번에 가을이 오면 그는 나를 찾아주려니’는 박녹주 얘기입니다. 지금은 다섯 살 연하인 나를 동생 취급하며 내 사랑을 물리치지만, 그도 늙고 다른 이들에게 버림받아 갈 데 없으면 내게 오리라는 이야기지요. 김유정은 연서를 31장 썼는데, 그 중에는 보내지 못한 것도 있고 혈서를 쓴 적도 있습니다.

정진권`:`만일 박녹주 얘기를 모르고 이 글을 읽는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유경환`:`그러니까 엉성한 글이란 말이지요.

김형진`:`작품 외적인 요소들을 토론에 포함시키면 재미는 있겠으나, 작품 내적인 요소들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맨 첫째 단락과 끝 단락은 굳이 박녹주를 연결시키지 않아도 맥락이 닿는다고 봅니다.

유경환`:`처음부터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면 어떻게든 가난을 극복하고 자아상을 확립하려 애썼을 터인데, 자신은 곰방대에 엽초를 피우면서도 횟배 앓는 일곱 살짜리 막내아들에게는 비싼 궐련을 피우게 한 대지주 아버지 밑에서 유정은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고아가 되고 형이 가산마저 탕진하자 자기정체성을 못 찾고 가뜩이나 식민지 지배하의 세상에 대한 울울함을 품은 터에 실연까지 당하니, 이런 흑색의 글이 나오는 것이지요. 소설에서는 나라를 잃고 전통사회가 붕괴된 혼란기의 사회상을 순박한 농촌을 배경으로 토속적·해학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는데, 수필에선 형상화가 그만 못 미친 셈이지요. 이는 김유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1930년대 우리 수필이 그저 이 정도였구나 하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정진권`:`고전이라면 작품 외적인 것은 고려하려 해도 할 수가 없겠지만, 수필 경우는 작품 내적인 것만으로도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저는 작품 자체에 중점을 두자는 견해와 외적인 요소도 고려하자는 견해를 둘 다 수용하고 싶은데요.

김시헌`:`우리 합평회이니까 외적인 요인을 포함시키지, 일반 독자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병이 나을 계절만 열정적으로 기다렸는데, 배반당한 마음에 속이 상해서 삐친다’는 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전부지요.

유혜자`:`수필 ‘길’은 의사가 올 가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해서 폭음을 했는데, 봄·여름을 버텨내고 다시 가을이 되는 이야기지요. 이 작품도 ‘올 가을을 못 넘긴다’ 한데서 쓴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호형`:`저도 유혜자 선생처럼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박녹주 얘기를 듣고 보니 모든 생의 의미가 그 사람에게 있은 듯 여겨집니다.

김진식`:`이상이 둘 다 폐결핵에 걸렸으니 같이 죽자고 했으나, 의사의 사망진단도 이겨냈으니 뱀 100마리만 고아먹으면 된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이십대에 쓴 글이니만큼 그 시대의 탐미주의·퇴폐주의 풍조에 물들기도 했겠지요. 문학은 곧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 둘을 완전 분리하기는 힘들고 어느 정도는 통합해서 봐야 균형 있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유경환`:`동감입니다. 문체 등등 눈에 보이는 텍스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 글은 순전히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글로서, 김유정의 조카 등 주변인들이 전해 준 것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닌 작품으로 결론이 났을 것입니다. 종합적인 비평을 위해 오늘 합평회부터 처음으로 텍스트 안팎을 통합적으로 새로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네, 작가와 작품과 작품 속의 현상론을 종합적으로 탐구 비교 연구하려는 시도입니다.

최병호`:`박녹주 얘기를 모를 때는 맥락이 안 닿던 부분들을 김유정의 문단적 비중 때문에 갸우뚱거리며 확대 해석해보려 고민했었는데, 이 자리에 와서 속내를 알고 보니 좀더 이해가 쉬워지는군요.

은옥진`:`저도 배경을 모른 채 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글로만 읽었습니다. 맨 끝의 ‘그’를 알고 나니 해석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김소경`:`70년 뒤에 읽혀질 것을 모르고 썼을 터인데,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입니다.(웃음) 그 시대에 불우한 작가가 펜을 잡고 글을 썼다는 사실이 가엾고도 고맙게 여겨집니다.

김채은`:`저도 처음에는 ‘한창 젊고 좋은 나이에 깊은 병이 들었구나’, ‘그런데도 철이 바뀌는 걸 애처롭게 기다린다?’, 혹은 ‘행복의 본질은 믿음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뭔가를 은유하긴 했는데 이게 뭘까?’ 하며 궁금하여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인 채 나름대로 이해가 되긴 됐는데, 다른 분들의 해설과 배경을 듣고 나니 속뜻이 선연히 잡히는 듯합니다.

신현복`:`반대적인 어휘가 많아 첫 단락부터 답이 나왔습니다. 옛날식 어휘가 많은데도 생소하지 않고 마음에 와 닿았고요. 그래도 한 소절이라도 그녀에 대한 언급이 표면화 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무언지 안개처럼 아른아른 하던 것이 녹주였구나 싶은 느낌입니다. 전 계절에 대한 기다림을 혹시 조국 해방에 대한 기다림인가 했거든요.

김시헌`:`여러분의 의견을 듣다 보니 작품 자체만 읽는 독법과 작가와 그 주변을 포괄시키는 독법 둘 다 유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작가의식이 있는 작가라면 독자의 이해를 위해 어딘가 암시를 해줬어야 하지 않나 싶긴 합니다.

고임순`:`1936년이면 사망 일년 전에 쓴 글인데, 건강해야 여자 생각도 하는 거지요. ‘행복의 본질은 믿음에 있으리라’는 말은 소설 써서 약을 사먹고 병이 나을 수 있으리란 믿음이지, 이 글만 갖고는 여자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웃음)

김진식`:`그 문제에 대해선 안회남이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김유정은 어머니의 사진을 품고 다녔는데, 사진 닮은 여자만 보이면 박녹주 말고도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말했다 합니다. 탐미주의 작가들이 간직했음직한 어머니의 초상이지요.

김국자`:`36년에도 마지막 여인 박봉자에게 구애했다 거절당한 것으로 되어 있던데요.

유경환`:`박녹주와 박봉자가 동일인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허세욱`:`이번 합평회부터 거시적 토론에서 미시적 토론으로 틀을 바꾸기로 했는데, 오늘 토론을 보니 내용과 진행 방법이 달라진 건 확실한 듯하네요. 그런데 그 명쾌한 해결성이 나중의 토론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쳐 얼마쯤 장애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작가와 배경도 중요하고 또 문맥 자체만을 탐구하는 것도 필요할 듯싶습니다.

1930년대 문학이 패션(passion), 열정을 추구했다면 이는 곧 패배의 동의어입니다. 행복을 등진 정열의 추구란, 건강이건 애정이건 그때마다 패배하기 마련인 물살을 거꾸로 거스르는 행위인 거죠.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작가가 계절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계속 뭔가를 기다리는데, 기다림이란 광의로 해석하여 인생의 본질에 대한 기다림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이 글도 제목이 생삽하지만, 12편의 수필 제목들이 다 개념어의 나열인 것이 특색입니다. 29세라는 젊은 나이 때문인 듯한데, 김유정에게 있어 소설이 주이고 수필은 변두리이되 진실의 발로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유경환`:`토지를 자본으로 해서 쌀이 나는 전통사회의 틀이 붕괴되자 일엽편주 같은 개인은 시대의 강에 침몰되어 몰락하고 마는데, 김유정의 인생이 꼭 그렇다는 느낌입니다. 김형진 선생의 말처럼 작가론을 배제하고도 그 침몰 과정이 이 수필 한 편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사회`:`투병 중에 쓴 수필들 중에 벗·동무·친구라는 호칭으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상하게도 그에게 글을 쓰도록 강력하게 권했던 안회남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안회남은 카프 동인으로 <개벽> 기자로 있다가 1950년(기록에는 47년)의 월북 후 곧 숙청되었지요. 혹 이 점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유혜자`:`번역거리라도 달라는 서신이 죽기 열흘 전에 그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회`:`구성 등등 지적할 점이 많긴 하나, 30년대에 살았던 이십대 청년의 글에서 이 이상 더 무엇을 기대하랴 싶기도 합니다. 텍스트에만 치중할 것이냐 작가와 배경 등도 함께 고려할 것이냐에 대한 결론은 내지 못한 채, 각자 숙제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열띤 토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