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평>

 

구성의 묘책과 형상화의 묘미

 

 

                                                                                             김형진

<계간수필> 한 권에 실린 수필들에 대해 어떤 형식으로든 비평을 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30편의 수필을 놓고 하나하나 언급하기엔 지면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수작으로 추켜세울 만하다거나 문제작으로 지적할 만한 한두 작품만 고르기도 난감하다. <계간수필>에 실린 수필들은 관점에 따라서는 모두가 수작이요, 모두가 문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보기로 했다.

 

구성의 묘책

 

수필에도 구성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가 의외로 많다. 특히 타 장르에서 제법 문명(文名)을 떨치는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수필을 문학예술의 어엿한 한 장르로 인정한다면 구성이 필수적인 요소에 속한다는 건 상식일 테니 말이다.

 

먼저 종적구성의 묘책을 보여준 <미소짓는 법`-`정목일>.

이 작품을 언뜻 보면 조금 답답할 정도로 집요하다. ‘미소는 …이다’의 연속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면 이 글에서 ‘미소’는 감정을 입술에 그려내는 표정이 아니라 내면세계를 점진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선명한 창임을 알 수 있다.

‘미소는 명상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미소는 사유의 깊이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의 꽃이다.’

‘미소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꽃이다.’

 

이렇게 깊이를 더해 가다가 종국에는,

 

‘미소는 깨달음의 꽃이며, 죽음을 초월하는 경지이다.’

 

곧 ‘무심’의 경지에 이른 득도자의 미소를 이른다.

종적구성에 의해 내면세계를 천작해가는 수필의 본보기를 삼을 만하다.

 

다음으로 횡적구성의 묘책을 보여준 <무작정`-`허세욱>.

이 작품은 처음 대했을 때에는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전반부에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한 네 가지 이야기를 나열해 놓았다. 첫번째에는 경로우대 승차권을 받는 쑥스러움을, 두 번째에는 잡지 편집자가 느끼는 곤혹감을, 세 번째에는 뒤숭숭한 시국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네 번째에서는 제약과 금기에 순종해야 하는 쇠미한 노경의 속내를 내보이고 있다. 나열된 이야기에서 공통분모를 찾는 일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나아가 후반부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도 독자의 몫임을 암시한다.

후반부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상의 무게를 중국 서역 텐산(天山)산맥의 어느 구릉에 숨어 털어버리고도 싶고, 무작정 고향에 내려가 떨쳐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떠올린 것이 삼사십 년 전에 무작정 상경했던 시골 사람들이요, 우랄산맥에서 무작정 동진했던 우리의 조상들이다.

 

‘나도 이 나이에 그 격정을 나누어 갖고 싶다. 안개처럼 소나기처럼 자욱한 눈보라 속을 무작정 떠나고 싶다.’

 

결미의 이 단락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반듯하게 이어지면서 전반부에서 제시한 무력감을 후반부에서 극복하려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매우 정치(精緻)한 구성으로 현대수필에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형상화의 묘미

 

문학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형상화가 필수적이다. 문학은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며 언어로 공연하는 무용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생활 속에서 얻은 소재를 철학적 사유를 거쳐 구체적인 언어로 형상화해 내는 문학인 것이다.

 

환절기마다 기승을 부리는 질병을 <까탈쟁이`-`정부영>로 형상화한 작품이 눈에 띈다.

 

‘열기를 잠재우는 녹두색 같기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한 베이지색 같기도 한 바람이 불어오면 녹차 향기나 갈잎 같은 향기가 덩달아 묻어온다. 이럴 때 분위기를 못 맞추는 푼수가 내 안에 있다.’

 

초가을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알레르기성 비염을 때도 자리도 가리지 못하고 재채기에 눈물, 콧물까지 줄줄 흘리게 하는 ‘분위기 못 맞추는 푼수’로 형상화한 것은 절묘하다.

 

<고무신 한 켤레`-`김해남>에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몸소 얻은 생활철학이 용해되어 있다.

이 글에서 고무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촌부村婦의 심경을 비추어 내는 거울이다. 오랫동안 고되게 농사를 지어오다 보니 여자 고무신의 모양새보다는 남자 고무신의 푼더분하고 편안함을 더 좋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설움 총총했던 새댁 시절에는 고무신을 닦는 일로 위안을 삼으며 살았는데 중년 고개를 넘은 지금은,

 

‘말갛게 닦은 고무신을 댓돌 위에 갸웃이 세워놓고 방으로 들면 마치 선방에 들어 참선하는 스님의 마음처럼 경건해진다.’

 

참선하는 스님의 마음으로 성숙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생활철학을 일상적인 언어로 형상화한 가작이다.

 

<눈썹달`-`유경환>에서는 삭막한 현실에서 떠올린, 손에 잡힐 듯한 유년의 기억을 통해 날로 건조해가는 현대인의 정서를 그려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어릴 때 이야기라면 고개를 외로 트는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고립을 느끼는 화자. 그래서 겨울 논을 찾아 나서지만, 물을 담기 위해 아이들이 논둑을 터도 눈감아주는 논 주인이 살던 유년의 겨울 논을 찾을 수 없다.

 

‘물이 절반쯤 고인 겨울 논바닥을 만나 반색을 하다가도 체념의 달빛을 보게 될 때엔, 유년의 겨울이 보석처럼 그리워진다. 마음이 보석이라야 달빛도 보석이 됨을 어찌 모르랴.’

 

소박한 아름다움을 상실한 세상에 살고 있는 화자의 심리를 표출한 수작이다.

 

여기에 좋은 수필의 요건을 열거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대수필의 문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과 형상화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추는 일이 일차적이며, 아울러 보다 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수필을 쓰는 일은 부단한 자기수련에 의해 진실한 자기를 표출하는 고뇌에 찬 작업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 없이 다양한 기교로 자기를 덧칠해 내는 글은 아무리 다듬어도 좋은 수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