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인가

 

 

                                                                                           나영균

전에는 일요일에도 신문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일요일에 신문이 없다. 공휴일에도 없다. 정초나 추석에는 연휴 동안 내내 신문이 없다. 신문에 나는 보도 내용에 짜증이 나는 일도 많고 어떤 기사는 보기 싫기도 하지만 그래도 신문이 안 오는 날은 어쩐지 허전하다. 아침 식탁에서 일단 신문을 펼쳐보아야 그 날이 시작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일요일마다 쉬기는커녕 특집 신문이 나온다. 분량이 얼마나 많은지 한 보따리나 된다. 여느 때와 같이 일반 뉴스와 국제 정세, 사회면 소식에 보태어 문학, 예술, 연예, 스포츠, 전시회, 극장가에 대한 특별 기사들이 푸짐하게 실려 나온다. 바쁜 주중에 못 보는 읽을거리를 주말에 즐겨 보라는 독자에 대한 친절이다.

개인주의 나라, 주말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다. 방대한 자료를 주중에 미리 편집해 두었다가 주말에 인쇄만 해서 내보내는 건지 아니면 정말 주말에도 대중을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뉴스는 분명 그 날 것이니 그 날 나와 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려가면서 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고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것일까.

신문이 주말에 안 나오는 이유가 만일 신문기자들도 주말에 쉬어야 하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소수의 신문기자의 편의를 위해 온 국민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 것은 대국적으로 균형이 안 맞기 때문이다.

신문은 날마다 새 소식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한다. 신문사에 들어간 이상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직업에 대한 직업의식과 자긍심으로 일해야 마땅하다.

이 사회에서 살고 있노라면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더러 있다. 즉 다수의 편의가 소수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는 경우다.

어느 날 아침 출근시간에 차를 타고 나가는데 늘 잘 통하던 길에 차들이 100미터나 밀려 있었다. 사고라도 났나, 왜 이럴까 의아해하면서 10분이나 걸려 서행해 가보니 길 복판에 작업 차를 세워놓고 두 사람이 중앙선에 노랑 칠을 하는 중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려면 통행량이 적은 새벽이나 심야에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꼭 바쁜 출근시간에 차들을 가로막고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가뜩이나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데 새벽이나 심야 작업은 안 되겠다는 것이라면 그들은 자기 편의를 위해 수백, 수천 명의 시간을 낭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에서 효자동에 있는 집까지 걸어갈 때가 있다. 빌딩에서 나와 좌로 돌면 자연 좌측 인도를 걷게 된다. 그러나 이 인도의 끝에서 길을 건너려면 우측 인도로 옮겨가야 건널목이 있다. 그 건널목은 내가 가려는 방향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다. 그러니까 공연히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야 하고, 또 한참 걸어가서 길을 건넌 다음에는 되돌아와야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건널목이 왜 이 모양일까 생각하면서 늘 걸어다닌다. 건널목이 십자로에서 가깝지 않는 곳에 있는 까닭은 그것이 어떤 건물 정문 앞에 나 있기 때문이다. 그 건물에 가는 사람 혹은 거기서 나오는 사람들 편의를 우선시키고 일반 통행인들은 여기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라는 식이다. 이것도 소수를 위해 다수의 불편을 불고하는 경우다.

이런 일을 보거나 겪을 때 이 사회는 사람들에게 매우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려운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일에서까지 사람들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불친절을 당하는 사람은 자연 심정이 사나워지고 그러면 서로 아옹다옹하기 쉽고, 대립과 불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조그만 배려와 친절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저서 『콘라드 연구』, 『전후 영미 소설의 이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