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정진홍

가끔 고향에 다녀옵니다. 말이 고향이지 아무도 저를 반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반겨주기는커녕 저를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큰댁 뒷동산에 서있던 용트림하던 소나무도 죽은 지 벌써 열 해쯤 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능선들뿐인데 그것도 거의 중턱 가까이까지 새 길이 나서 산등성이를 가리면 낯설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고향에 가곤 합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한 시간 반쯤 가면 국도에 들어서고, 그 길을 따라 다시 반 시간을 달리면 읍내에 들어서는데, 멈추지 않고 나와 다시 강을 끼고 10분쯤 달리다 강과 헤어져 바른쪽 지방도로로 달리기를 20분쯤 더하면 고향 마을이 보입니다. 가서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룻길 나들이일 경우에는 이제는 물이 말라버린 동네 옆에 흐르던 개천가 나무 밑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 오기도 하고, 이틀 길이어서 하루를 묵을 때면 뒷산 등성이에 올라 제법 ‘산을 타다’ 오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피곤하던 일상이 다시 제자리를 잡고 힘을 얻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 고향 길을 가다 보면 강과 헤어진 지 얼마 되기 전에 급하게 오른쪽으로 길이 굽어지는 곳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굽이를 돌면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저 아득한 끝까지 들판이 활짝 펼쳐지는 곳에 이릅니다. 저는 거기에 이를 때마다 거의 관성(慣性)처럼 옛날 일을 회상하곤 합니다.

휴전이 되고 학교들이 다시 문을 열자 작은누님과 저는 읍내에 나가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빨랫감들을 싸들고 그 고향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차를 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정기적인 교통편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재수가 좋으면 시장 어귀에서 트럭을 얻어 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뒤 짐칸에 올라타고 달리는 기분이 얼마나 상쾌했었는지요.

어느 여름날, 누님과 저는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사연이 뚜렷하지 않은데, 각기 밀가루 한 포대씩을 이고 지고 그 길을 터벅거리면서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따라 차도 없었지만 누님은 운전하는 분이나 다른 남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하는 것이 싫다고 하면서 함께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새끼줄로 멜빵을 해서 지고 있었기 때문에 편했지만, 누님은 익숙하지 않은 터여서 목이 아파 몇 번이나 이고 가던 밀가루 자루를 내려놓고 쉬곤 했습니다. 그런데 들판이 트이는 그 굽이를 돌아서자마자 저 들판 끝에서부터 뽀얗게 소나기가 밀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길옆에는 논과 밭만 펼쳐졌을 뿐 나무 한 그루도 커다란 것이 없었습니다. 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를 돌아보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멀리 산 밑에 초가집 한 채가 논두렁으로 족히 10분은 달려야 도달할 만한 곳에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 집을 향해 뛰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소나기는 해안의 파도처럼 순식간에 우리가 있는 데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누님은 밀가루 포대를 안고 뛰었습니다. 저도 밀가루가 젖으면 큰일이다 싶어 포대를 가슴에 안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집에 다다른 것은 밀가루도 저희 남매도 비에 흠뻑 젖은 다음이었습니다. 비가 그치고, 저희는 다시 밀가루 포대를 이고 지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자루는 무게가 천근이었습니다. 속속들이 젖은 것은 아닐 거라고 하면서 누님과 저는 정말이지 타박거리며 긴 산길을 돌아 집으로 갔습니다. 그 밀가루를 어떻게 했었는지 생각이 잘 나질 않습니다. 별 탈 없이 잘 먹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그 집까지 달려가던 길이 왜 그리 멀고 힘들었는지 지금도 숨이 가쁘고 다리가 무거워집니다.

지금 그 길은 잘 닦인 콘크리트 도로가 되었습니다. 이전 길은 가느다란 실낱 같은 길로 옛날은 이랬었다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주변에는 무슨 무슨 가든도 보이고 이런저런 모텔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지날 때면 저는 비에 흠뻑 젖은 채 밀가루 포대를 안고 눈물을 머금고 있던 누님의 절망 어린 얼굴이 보입니다. 한 방울이라도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품에 포대를 안고 달리던 안타까운 사내녀석의 얼굴도 보입니다. 비는 들판 끝에서부터 무서운 기세로 달려옵니다. 누님과 저는 정신없이 뜁니다. 숨이 턱에 닿습니다. 그런데 길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집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지난번 고향에 다녀온 뒤 경찰이 보내온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교통법규 위반 통지서인데 과목은 과속이었습니다. 80km로 달려야 할 길을 저는 120km로 달린 것이었습니다. 장소가 바로 그 모롱이였습니다.``

 

한림대 특임교수(종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