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시타(適時打)

 

 

                                                                                            최병호

가방을 내렸다. 잘못 붙들었는지 뭐가 뚝 떨어진다. 아직 뜯지 않은 미끈한 새 곽이다. 주머니의 조임줄이 풀린 듯.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걸 내가 왜 저렇게 보관하고 있는가? 할 수 없지. 그럴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는 조임줄을 손보고, 다른 준비물도 하나하나 챙겨 넣었다. 옛 대통령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유훈을 되새기면서.

마침 전화도 받은 터라 뭉그적댐 없이 고속버스 터미널로 직행했다. 공교롭게도 좌석이 내가 좋아하는, 운전기사와 대각선상의 앞자리, 평소 자주 차지하지 못했던 3번 석이다. 순풍에 돛을 달듯!

이미 분수령을 넘어선 문우의 투병을 격려하러 가는 길. 자리를 함께 할 몇몇 문우들의 그 반어적인 웃음보따리가 분위기를 한결 청랑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투병의 외로움을 딛고 서는 더없는 자양일 터이니 말이다. 그런 상념에 젖으면서 나는 줄곧 차창 밖의 푸르름을 완상하고 있었다.

얼마만큼 지났을까. 슬그머니 요의(尿意)가 곰지락거렸다. 주책없는 녀석, 시공을 가릴 줄 알아야지. 묵살, 묵살! 출발 전에 이미 닦달한 바도 있지만, 설사 그리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1시간 여의 거리쯤이야 ‘식전거리도 못 된다’는 것을 녀석 자신이 익히 알고 있을 터인데, 참으로 무엄한 놈이 아닌가.

이변이라면 이변이었다. 아무래도 이변이었다. 녀석이 아마도 시류에 맞춰 이마에 붉은 띠를 불끈 조여 매고 ‘결사 투쟁’을 외쳐대는 것 같다. 아니, 마셨으면 마신 만큼 정직하게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양식(良識)이 아니겠느냐고, 제법 점잖게 ‘준법 투쟁’을 선언한 것도 같다. 참 고얀 놈이다.

나는 일찍이 이 요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바 있었다. 그때 나는 눈을 감은 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숨을 깊게 몰아쉬면서 이마의 진땀을 의젓하게 닦아댔다. 그 인고의 전의(戰意)야……. 마침내 휴게소에 다다랐을 땐 피차 그로기 상태였다. 나는 얼른 의자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차를 내려서면서는 그대로 꼬꾸라지는 줄 알았다. 화장실까지는 기다시피 했다. 그래도 나의 배뇨기관(排尿器官)은 격을 잃지 않고 차분히 녀석을 주재했다.

세월 탓인가. 나의 이런 역사적 노하우에도 불고하고, ‘유비무환’에 대한 신념과 그 실천의지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결의를 꺾기엔 어쩐지 역불급일 것 같은 위기의식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마엔 줄곧 진땀이 멍울졌다. 이 또한 체내의 액체가 아니던가. 그려, 많이만 쏟아내라. 나는 긴급 피난의 돌파구나 찾은 것처럼 두 손을 꼭 모았다. 그러나 애꿎은 하품만 크고 길게 벌어질 뿐이었다.

에스 오 에스를 칠 수밖에 없다는 막바지 생각을 하기까지는 참고 또 참고 몸을 비트는 숱한 망설임이 있었다. 휴게소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녀석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의 의식은 깜박깜박했다. 저만큼 휴게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대각선 방향으로 허리를 굽혀 모기 소리만한 음성을 발했다.

“기사님, 저 휴게소에…….”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일언지하의 벽력이었다. 기사가 내 ‘유비무환’의 신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건 때때로 육신 앞에선 얼마든지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속절없는 몰골로 일전직하(一轉直下)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 주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허리를 세우고, 지나가면서 휴게소 입구를 슬쩍 보니 기사의 ‘벽력’은 ‘절대’ 무리가 아니었다. 입구부터 내 어디처럼 팽만해 있었다. 상황이 그리 된 데랴. 막바지를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이마에 응축되어 끈적이는 수분을 구원의 샘물이나 되는 것처럼 짜내고 있었다.

“잠깐 내려갔다 오세요.”

내 부실한 청력에 그 생생한 목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아련한 신! 그렇다. 그것은 신의 목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차가 갓길에 멈춰 서 있다. 나는 차가 그렇게 멈춘 줄도 몰랐다. 용수철처럼 마음은 튀는데 다리는 마비 환자처럼 휘청거렸다.

고속버스를 세워놓고 길가 방뇨라니, 이런 망나니 같은 범법이 있나? 명색이 평생 공덕심을 되뇌었던 교원 출신이, 삶 자체를 수필처럼 살아보자던 글쟁이가, 망령(妄靈)도 이쯤 되면……. 아, 어쩔 수 없는 그 자괴감(自壞感).

고개 숙여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는데도 녀석은 좀처럼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버스 속에서 기다리는, 피둥피둥한 그 승객들의 군시러운 소리가 스멀스멀해 왔다. 서둘 수밖에. 땅에 닿을 만치 고개를 숙인 채, 그 신에겐 말할 것도 없고, 아무데나 대고 굽실거리며 돌아와 의자에 묻혀버렸다.

이마의 진땀도 크고 긴 하품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무엇인가 기사에게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돈을 주자니 봉투가 없고, 또 승객 중에 그런 걸 대가성(代價性) 운운하고 침소봉대할 ‘소식 장사들’이 없으란 법도 없어서 난감하기만 했다. 퍼뜩 아침에 떨어졌던 그 물건이 생각났다. 그렇구나. 그게 좋겠군.

터미널 가까이서 신호를 기다릴 때, 나는 제 것도 아닌 그것을 제 것인 양 신에게 내놓으며 ‘이렇게라도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다’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사양하던 신도 이내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나는 일찍이 그렇게 티없이 흐뭇해 한 표정을 본 일이 없다. 역시 ‘신에겐 작은 것도 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뭐냐고? ‘타임’이란 궐련(卷煙). 금연을 선언한 몇몇 문우들이 가끔 어울리게 되면 고향의 샘물 그리워하듯 회고조(懷古調)로 한 개비씩 꼬나문다. 그 엑스터시를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비끽연가(非喫煙家)지만 그러기 때문에 그 간수가 내 몫으로 공모(共謀)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들과 상의 한 마디 없이 사사로이 처리했다. 그 ‘월권’이 나를 위한 행운의 적시타(適時打)가 될 줄이야!

입에 바른 말이 아니라 투병중인 문우는 날렵한 미인이 되어 나타났다. 그 감동 속에 준비해온 웃음보따리들이 다투어 섞이고 볼륨을 높여갔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왔다. 마지막 적시타의 쾌연(快煙)을 위한 ‘타임’을 사러. 그래야 환자도 병마를 그 연기에 싸서 보내고 이내 완쾌의 적시타를 날릴 것 같아서다.

원칙의 울타리엔 늘 비상구가 있어서 홀연 숨통이 트이는 것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