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은 죄밖에

 

 

                                                                                         박영자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 웃음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싶다. 웃음은 너무 헤퍼도 안 되고 너무 없어도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고달픈 인생을 살아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웃음의 역사도 세태(世態)를 타는 것인지 여자의 웃음이 담을 넘으면 안 된다느니, 여자가 웃으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여자가 웃어야 집안이 흥하고, 암탉이 울어야 번성한다는 말로 바뀌어 이제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호탕하게 웃는 여자를 보아도 그 모습이 밉지가 않다. 내가 남자라도 웃지 않는 여자와 산다면 얼마나 고달픈 인생일까 싶다. 하지만 백 가지 교태가 서린 여자의 웃음으로 가정이 파탄되고 나라가 망한 예는 얼마든지 있어 온 일이다.

중국 하왕조 시대의 유왕은 포사라는 애첩의 웃음을 보려다 최악의 임금으로 전락하였다. 유왕이 애첩 포사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 해야 웃겠느냐?”

“저는 비단 찢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찌 그 말을 진작 하지 않았느냐?”

매일 비단 백 필씩 찢으며 그녀가 웃기를 바랐으나 뺨 부근에 약간의 경련만을 일으켰을 뿐 웃지 않았다. 왕의 근심은 오직 포사의 웃는 얼굴뿐이었다. 어느 날 잘못 전달된 봉화가 오르자 문무백관이 달려와 허둥대며 뛰어다니는 광경을 본 포사가 단순호치(丹脣皓齒)의 웃음을 웃었다. 꿈에 그리던 포사의 웃음이 아니던가. 유왕은 포사의 웃음을 보고 싶을 때마다 봉화를 올리게 했다. 측천무, 양귀비, 장녹수, 장희빈 등 여자의 교태가 서린 웃음 뒤에 무너진 권자의 부귀영화가 얼마나 헛되었던가.

웃음이란 젖을 먹고 만족해졌을 때부터 의미가 부여되며, 사회적 미소는 타인으로부터 자극에 의해 웃게 되는 것이라 한다. 웃으면 혈액 내에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이 생산되고, 체내 백혈구의 하나인 T`임파구가 증대되어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상쾌한 기분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UCLA 메디컬센터 병원에서는 웃음을 가르쳐주는 라이프 센터가 있고, 지도자 자격시험에는 필수적으로 유머 수업이 따로 있다고 한다.

웃음도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되겠는데 일촉즉발의 죽음 앞에 우스갯소리를 하고 위기를 맞는 외국 영화 장면을 보면 만드는 것보다 국민성이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땅바닥에 두 다리를 뻗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아내의 주검 앞에 노래를 부르며 웃었던 장자의 모습을 범속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계절의 순환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빗대어 윤회의 과정으로 보아 삶이란 웃을 것도 울 것도 아니기에 차라리 웃음으로 노래한 것은 아니었을까.

50년대 얘기가 되나, 6·25 전쟁이 났을 때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온 죄수들은 꽹과리, 징, 북을 치며 미친 듯이 웃고 좋아하였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었더니 어머니는 나를 집안으로 불러들인 뒤 허파에 바람이 들었느냐는 것이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 웃음을 웃은 죄밖에…….

전란은 끝이 났어도 동네마다 혈육을 잃은 가족들이 웃음이 있을 리 없었다. 얼마나 국민이 웃음이 없었으면 우리들 앞가슴에 스마일이라는 표어를 게시판처럼 달고 다니게 하였을까.

그러나 마음 따로 표정 따로 웃는 웃음은 웃음이 아닐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환경에 따라 웃게 되는 웃음의 본질은 그래서 표현도 다양하다. 미소(微笑), 홍소(哄笑), 고소(苦笑), 냉소(冷笑), 조소(嘲笑), 담소(談笑), 실소(失笑), 건소(乾笑) 등 웃음의 동작은 같지만 웃음 속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는 일은 어렵다. 성난 마음은 알아도 웃는 얼굴은 알 수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남을 경멸하거나 얕잡아보는 조소와 냉소는 스스로 비하해 자신뿐 아니라 남까지 해쳐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이 되게 한다. GNP가 올라가면서 상혼은 친절을 으뜸으로 삼는다. 고개를 숙이며 미소는 짓고 있는데 감성의 꼬리를 이성으로 잘라버림인지, 몸 따로 마음 따로 표정이 모두 하나같이 기계적이다. 하지만 친절한 미소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다.

웃음의 내면적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돈과 결부되지 않은 것이 없다.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는 많은 일들을 보며 돈과 웃음은 필연으로 이어지는 관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옛 선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돈은 욕되게 함이 아니라 덕목이라고 말하였다. 깨끗이 벌어서 빛나게 쓰면 만인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즐거움이 되겠지만, 제 돈을 쓰고도 지탄을 받는 일이 있어 웃음거리가 된다. 그래서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모양이다. 권자에 앉아 걸핏하면 민생을 구한다고 하면서 물러난 뒷자리에 부정한 돈의 출처가 밝혀져 쌓아놓은 공적이 도루묵이 되는 일들……. 영욕(榮辱)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웃음과 부정한 물밑 거래가 이루어졌을까. 쇠고랑은 차지 않았지만, 화면을 받으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 미소 속에 가리워진 의미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세계적 명화로 각광받는 것은 그녀의 웃음이 웃고 난 뒤의 웃음인지 지금 막 웃으려는 웃음인지의 의혹이 명화에 한 몫을 한다고도 한다. 나는 그런 웃음을 어머니에게서 보았다. 푸른 세월 혼자 된 내 어머니는 두 남매만을 유산처럼 받아 어떻게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가 급선무였다. 아끼고 모은 돈을 혈육이라 믿고 동참했던 사업을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사라지는가 하면, 여자라는 이유로 오리발을 내밀며 주객이 바뀌었던 일들……. 반복되는 속임수를 당하면서도 교과서처럼 살아야 했던 어머니에게 어찌 웃음이 있었겠는가. 어찌 어찌해서 차린 운수업은 그 날 그 날 현찰이 들어왔다. 침을 발라가며 그 날의 수입금을 간추리며 한 장 한 장 넘길 때면 행복해 보이셨다. 우리가 곁에서 응석을 부리며 돈이 그렇게 좋으시냐고 물으면 모나리자의 웃음보다 더 신비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씀이 없었다. 그 웃음은 어머니를 위한 웃음이 아니라 자식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저축하는 안도의 기쁨이며 희망이었다.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누워 계시는 어머니께 오빠 내외가 뭉칫돈을 이불 밑에 넣어드리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돈입니다”라고 하면 웃음도 울음도 없는 목소리로 “치워! 이젠 종이야” 하신다는 것이다.

웃음을 잃었던 시절, 이제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내게 있는데 어머니는 의식 없이 태평양 건너에 누워 계신다. 어머니를 만나면 나는 어떤 웃음을 웃어야 하나 잠 못 이루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