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 델 문도

 

 

                                                                                                최 운

땅 끝에 와 있습니다.

혹 지구의를 갖고 계시면 우리나라 반대편을 앞으로 돌리시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리십시오. 남아메리카 대륙이 남극점을 향하여 쭉 뻗어 내려가다가 점점 가늘어지면서 오른편으로 살짝 꼬리를 사리는 부분에 점 하나가 보일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맨 남쪽 주 띠에라 델 푸에고의 주도요 지구 최남단의 항구 도시인 우수아이아입니다.

그런데 이곳엔 이 이름보다 생판 다른 별호가 장을 치고 있었습니다.

‘핀 델 문도(Fin Del Mundo).’

‘세상의 끝’이라는 스페인 말입니다. 이 별호 하나로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을 도착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땅끝 마을인 해남 토말의 확대판을 상상하시면 짐작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시지요? 반세기 전쯤의 여학교 졸업식장, 이민 떠나던 날의 공항 대합실. 마지막이라는 이별 감정이 눈물바다를 만들어냈던 장면들 말입니다. 이렇듯 ‘끝’에 여려지는 사람의 마음을 사물에다 끌어대어도 쉽게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상업주의자들의 아이디어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관광객들은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닙니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겨냥한 뻔뻔스러운 음모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유인당하는 고삐를 끊을 길이 없습니다. 거리, 공원, 호텔, 상점, 식당, 박물관, 등대, 버스, 택시, 배… 심지어 구멍가게까지 ‘핀 델 문도’ 간판을 내걸었으니까요. 상술에 눌려 땅끝 도시가 주저앉을 지경입니다. 아니 그보다 상술이 인간의 죽음까지 유혹할 날이 먼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선전과 광고 앞에서 고분고분 순종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까?

마음이 여려진 탓인지 싸한 속을 달래지 못하고 구경을 다닙니다. 등대를 보러 배를 타고 섬 가까이 갔더니 갈매기와 물개들이 잔뜩 화가 난 목청으로 국국 꽥꽥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사람들은 관광객을 자처하지만, 저 수국의 주인들 눈에는 무례한 침범자로만 보일 것입니다. 입장에 따라 생각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그것을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으니 갈등이 생기는 것이겠지요. 높이가 17층 건물과 맞먹는 백색 호화 유람선이 부두에 서 있는데,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마지막으로 세상 이곳저곳을 구경다니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 많이 탔답니다. 유람선은 내일 남극으로 떠난다는군요. 거금을 들여 끝으로 끝으로 저들은 갑니다. 남극, 그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죄수를 격리 수용하면서 도시가 개발되었다는 얘기도 마음을 편케 하는 내력은 아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당도해 보니 이 나라 3번 국도의 끝이었습니다. 가이드가 힘주어 말합니다. 여기가 정작 핀 델 문도라고. 발로는 더 갈 수 없는 국도의 남쪽 끝이요, 남미 대륙의 마지막이니 그럴 법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모두 안내판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사진을 찍느라 부산을 떱니다. 비 따위는 아랑곳도 없습니다. 지구 끝에 와서 찍은 사진, 기념이 될 것 같아 한 방 눌렀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3,063km, 알래스카 17,848km가 사진에 찍혀 나올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땅이니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의 거리를 안내판에 명시해 놓은 것은 수긍이 되는데, 북미 저 꼭대기 알래스카까지는 왜 적어 놓았을까요? 혹 이런 관심을 유도하려는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후에 서양 사람들로부터 인디오란 이름을 얻게 된 종족이 아시아 동북 설원을 지나 알래스카를 거쳐 여기까지 내려와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소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에 들어온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인 이들을 마구 죽이는 끔찍스러운 일을 떡 먹듯이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제 땅에서 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죽임을 당하는 이유 아닌 이유였습니다. 살아 남은 극소수의 그들 후손들은 험준한 안데스 산맥 속에 갇히어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답니다. 역사는 이 사실을 무시하는 듯하고, 지성과 양심은 다른 데서만 인류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 당당한 인권주의자들이 이들의 대변자가 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은 아직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삶의 끝, 종족의 끝, 존재의 끝만 남았습니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 비를 맞고 있어서일까요? 온몸이 으스스 떨립니다.

여기저기 고사목이 있습니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아예 넘어진 것도 없지 않지만, 거의가 육탈골립(肉脫骨立), 서서 죽었습니다. 누군가 있다지요? 서서 죽은 불승. 정신이 얼마나 빳빳했으면 서서 죽었을까요? 그것까지는 바랄 수 없다 하더라도 남은 생애 욕심을 줄이고 올곧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쓰다가 망쳐버린 수필들이 떠오릅니다. 대부분 군살이 아까워 덜어내지 못하고 매만지기만 하던 것들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바짝 달라붙어 시(詩)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사목으로 해서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들이 더욱 근엄해 보입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경치도 마음을 붙듭니다. 죽어서도 다른 개체들과 이질감 없이 어울려 있는 모습에서 왜 살아 있는 인간들의 부조화가 내비칠까요? 자연은 역시 무언의 교사입니다.

바다를 봅니다. 하늘을 봅니다. 이제 길은 더 없습니다. 길이 없기에 바다엔 배, 하늘엔 비행기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비로소 시야도 트이고 더 넓은 세계도 얻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끝은 있는 것인가요, 없는 것인가요?

여기에 한 번 와 보시길 권합니다. 질문이든 답이든 하나는 얻어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동행을 걱정하시겠군요.

핀 델 문도엔 혼자가 좋습니다.

 

 

<수필공원>으로 등단(97년). 아르헨티나 한인문인협회, 수필산책문학회 회원.

수필집 『까까보보의 참나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