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書案)

 

 

                                                                                          정선모

아는 분에게서 책상을 선물받았다. 가구 만들 때 주로 사용되는 빛깔 고운 나왕을 잘 다듬어 아담하게 만든 것이다. 옛 선비들이 사용하던 서안書案과 흡사한데, 현대적 미감을 살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다. 책상 위는 직사각형의 평면이고, 양쪽 다리는 창덕궁 안의 금천교처럼 아치 형태다. 가느다란 다리가 아니라 통나무를 사다리꼴로 켠 후 가운데를 둥글게 파낸 것이어서 무게가 잡히고 안정감이 든다. 진갈색을 살짝 칠하였는데 나뭇결이 은은히 드러나 볼수록 아름답다.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다리에 경첩을 붙여 실용성을 더한 이 책상은 책 한 권과 노트를 펼치면 딱 알맞을 크기다. 책상 안쪽에 선물한 날짜와 만든 이의 호가 새겨져 있어 더욱 정감이 간다.

어쭙잖은 내 수필집을 읽고는 책상을 꼭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몇날 며칠 손수 만들어 직접 들고 온 것이다. 귀한 선물에 가슴이 찡하다. 받을 자격 운운은 잠시 접어두고 우선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악수를 하는데 손에 반창고가 붙어 있기에 까닭을 물어보니 다리의 둥근 형태를 파내다가 다쳤단다. 그러고 보니 다리 안쪽에 살짝 핏자국도 보인다.

이 책상을 처음 내 방에 놓았을 땐 그저 뿌듯하기만 하였다. 이런 책상을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던 참이라 반가움이 컸다. 글은 컴퓨터로 쓰기에 그분의 뜻대로 원고지를 펼칠 일은 없지만, 책을 읽거나 간단한 엽서를 쓰기엔 안성맞춤이다. 가끔 찻잔이 놓이기도 하고, 정다운 이가 오면 향초를 올려놓기도 한다.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니 자연히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깝게 다가앉게 된다. 그러고 보니 책상은 아무리 작아도 혼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뜻밖의 귀한 선물을 받은 후 한동안 마음의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인디언들의 선물에 대한 풍습이 떠올랐다. 남태평양에 있는 트로브리얀드 제도의 원주민들은 선물을 받으면 준 사람에게 답례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 선물하는 방식으로 답례한다고 한다. 그것을 받은 사람은 다시 또 다른 이웃에게 선물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선물이 계속 이어져서 그들이 속한 사회를 한 바퀴 돌아 결국은 맨 처음 선물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선물을 받고 또 주면서 살아가기에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받으면 그대로 되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우리에 비해 훨씬 아름답고 성숙한 문화가 아닌가 싶다.

그분의 기원처럼 좋은 글을 쓰지도 못하면서 덜렁 선물을 받아든 내가 갈수록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책상에 앉을 때마다 흐뭇하였는데 차츰 그게 아니었다. 글쓰기에 부지런한 편이 못되는 나는 책상을 볼 때마다 어디선가 준열한 꾸지람이 들려오는 듯하다. 좀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좀더 철저히 고민하지 않고 쓰는 글에 대해……. 그러고 보면 책상을 만들어준 이에 대한 답례는 한 줄을 쓰더라도 깨어 있는 정신으로 쓰는 것일 게다. 갈수록 책상이 죽비로 느껴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