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 크로스

 

 

                                                                                         이정하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소매 끝을 당겨 손에 잡고 차창을 닦는다. 흐릿하던 정신이 선연 눈을 뜬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과 야산에 하얀 설탕가루를 뿌려놓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갈망인지 모른다.

처음엔 무슨 관광이라도 가는 기분으로 차에 올랐다. 서울 도매상가에서 물건을 사다가 지방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였다. 한 달이면 서너 번 서울을 오르내려야 하는 사람들, 차 안 사람들은 그다지 밝지도 즐겁지도 않은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를 비스듬히 누이고 잠 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동대문시장에 첫발을 내딛던 날, 시끄러운 음악이 귀청을 때렸다. 휘황한 불빛에 조롱박처럼 매달린 상가들, 건물의 이국적인 이름들을 속으로 또박거리며 읽어보았다. 디자이너, 누존, 밀레오레…….

양 팔을 벌리면 내 팔 안에 들어올 것 같은 작은 상가에 눈높이보다 높게 쌓인 별의별 물건들, 두 사람이 비켜 서기도 좁은 통로에 짐을 진 지게꾼이 “짐이요” 외친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보퉁이만 곡예를 하듯 걸어간다.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당당히 상가를 누비는 아가씨들. 무리지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떠들어대는 이웃 나라 아이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 모든 것이 생경하고 어지러웠다. 핸드 봉을 들고 상가 앞을 오가는 청년들의 딱 벌어진 체격, 짧은 머리, 버티고 서 있는 그들의 폼새가 내 걸음을 조잔거리게 했다. 파수꾼인가?

가끔 TV에서 본 것 같은 정경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이 그야말로 삶의 현장인가? 겁이 났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망대해에 버려진 갈매기였다. 끼룩거리며 심호흡을 해봐도 숨은 안에서 멎어버리고 목이 말랐다. 같이 동행한 김여사는 나를 재촉하지만 발이 쉬이 놓이지 않았다.

어떻게 따라다니는지도 모르게 돌아치면서 한밤 내내 나는 나의 선택이 잘못되어 있음을 곱씹고 있었다. 주위에서 다들 만류할 때 못이기는 척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자 비 오는 날 해질녘처럼 외로움에 젖으면서 어머니 얼굴이 생각났다.

김여사는 내가 측은한지 아니면 걸리적거리는지 어느 상가 앞에서 물건 가방을 지키라고 하고선, 대신 물건을 사 준다며 휑하니 가버렸다. 작은 간이의자에 앉았다. 씩씩하고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저만치 눈길이 가다가 돌아오기를 몇 번인가. 아까 보았던 지게꾼과 흡사한 사람이 손님을 기다리는지 벽에 지게를 기대놓고, 내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지겟일을 할 사람 같지 않다. 나는 곁눈질로 그 사람을 살피고 있었다. 내가 그의 손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김여사는 오자마자 잽싸게 택시를 불러 나를 짐과 한꺼번에 뒷좌석에 밀어 넣고 앞좌석에 타면서 “남대문 시장으로 갑시더” 하고는 힘차게 문을 닫아버린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 바깥일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이를 키우고 남편 바라보면서 주부로 안주해 이십 년하고도 몇 년을 보냈다. 두 아이가 객지로 대학을 갔다.

어느 날 남편에게 내 일을 가져보겠다고 했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했다. 몇 번 언쟁이 벌어졌다. 구체적인 계획안을 내놨다. 자금은 저축으로 모자라니까 집을 담보로 융자를, 아니면 조기 퇴직금을 신청하자는 제의에 남편은 눈이 둥그레지며 입까지 벌어지는 것이었다. ‘당신 어떻게 된 거 아냐?’ 남편의 표정이 묻고 있었다. 집안 살림밖에 모르는 소심한 여자가 이만한 제의를 했을 때는 만만치 않은 생각을 했으리라 짐작을 하면서도 많이 놀란 눈치였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건 매운 황사 바람이었다. 숨이 막히고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세상이 오고 있었다. 이 이상한 황색 태풍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견뎌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만 온 신경이 쏟아지던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불어닥칠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남편이 바람에 휩싸일 때 아내가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단순한 논리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꾸만 불을 지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밤마다 얼마나 헤매었던가. 주위에선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깡통을 많이도 두들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식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 하고자 하면 끝까지 해내던 내가 아니던가. 가게 문을 열지도 않고, 손님을 맞아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채링 크로스. 간판을 내걸고 네 평짜리 옷가게를 열었다. 어색한 무대에 올려진 내 포즈가 거울에 비친다. 관중이 보기에 안타까운 모양이다.

내 안부가 궁금한 사람은 가끔씩 들른다. 종이 찻잔을 마주 들고, 재미있을 것 같다고 덕담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글쓰는 데에 도움이 될 거란다. 하긴, 가게 안에 쌓이는 이야기가 어디 한두 줌인가.

내 일을 가진다면 잡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는 얄팍한 지론이 또 다른 굴레에 발을 묶인다.

삶은 감옥인 것 같다. 탈옥수처럼 나는 늘 끝없는 탈옥을 꿈꾼다.

탈출을 시도하면서 가보면 안에서 갇히기 마련이지만, 내 안에는 작은 번데기가 한 마리 꿈틀거린다.

 

 

개천문학 신인상 수상(2000년).

진주 문인협회 회원. 하누헤 회원. 진주 그림내 시 낭송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