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카데미 제7회 강좌 요지

 

 

3인칭 수필의 가능성

 

 

                                                                                          정진권

 

 

1-`1. 필자는 가끔 3인칭 시점으로 수필을 쓴다. 처음에 이런 시점으로 수필을 쓴 것은 자신이 써놓은 1인칭 수필들이 마치 빛도 움직임도 없는 깊은 바닷속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변화를 갈구하는 심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 그러면서 자신의 체험과 다른 분들의 글(고전 수필을 포함하여)을 통하여 1인칭 시점이 하기 어려운 일을 3인칭 시점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글[강좌]은 그 알게 된 바를 여러분에게 보고하고 3인칭 수필의 가능성을 함께 탐색해 보려는 데 목적이 있다.

 

2-`1. 필자가 알게 된 그 하나는 자기가 자기의 이야기를 쓸 경우에 관한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는 자기의 모습을 발가벗겨 보이기가 어렵다(가령 창피하다든지 해서). 그러나 글 속의 ‘나’를 ‘그’로 바꾸면 이런 약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다음은 그런 예다.

 

은자(隱者)는 어려서 이미 천리(天理)를 아는 듯했으나, 취학(就學)을 해서는 한 구석에 집착하지 않고 겨우 그 뜻이나 알았으니, 하나도 졸업한 것이 없다. 이는 널리 볼 뿐 깊이 탐구하지 않은 까닭이다. 차차 커가면서 개연(慨然)히 공명(功名)에 뜻을 세웠으나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그 성미가 윗사람에게 문후(問候)할 줄을 모르고, 술을 즐기되 두어 잔이면 남의 선악(善惡)을 말하기 좋아하며, 무릇 귀에 들어온 것을 입이 지키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이 애중(愛重)하는 바가 되지 못한 까닭이다. `─ 최해(崔瀣)의 『예산은자전(猊山隱者傳)』

 

바로 이때 “참 아까 50원 가져왔습니다” 한다. 귀야, 믿어라! 이 어인 하늘의 음성이냐? “무어? 50원을 가져와? 50원을?”이런 때 아니 휘둥그레지면 그의 눈이 아니다. 자, 기적이다. 기적을 믿어라.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래도 기적이 없다는 놈에겐 자자손손 앙화가 내려야 한다. 오, 고마우신 기적의 50원! `─ 김상용(金尙鎔)의 『그믐날』

 

최해의 글은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그리고 김상용의 글은 자신의 삶의 애환을 말한 것이다. 앞의 글은 좀 신랄하고 뒤의 글은 다분히 희화적(戱畵的)이지만 자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것은 다 같아 보인다. 1인칭 시점으로는 자기를 이렇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2-`2. 필자가 알게 된 또 하나는 자기가 남의 이야기를 쓸 경우에 관한 것이다. 1인칭 시점으로는 글 속의 ‘그(남)’에게 접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또 접근한다 하더라도 그의 외면밖에 관찰하지 못한다. 그러나 글 속에서 ‘나’가 빠져나오면(그래서 전지적 작가시점이 되면)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다음은 그런 예다.

 

관동(館洞) 한 계집이 나이 사십칠(四十七)이나 무자(無子)하더니, 복자(卜者)더러 물은대 다 가로되 평생에 무자하리라 하니, 계집이 자못 믿었더니 금년 사월부터 배가 크게 창(漲)하여 배 가운데 움직이는 것이 있는 듯한지라, 의원(醫員)더러 물은대 다 가로되 버러지 독(毒)이라 하여 여의(女醫)로 하여금 약(藥)하라 한대 여의 그 자식(子息) 밴가 무서워 약을 아니 하더니, 한 의원이 침(針)을 잘 주는지라 자尺만한 큰 침을 가지고 그 움직이는 데를 따라 침주어 얻지 못하고 이르되

“사귀(蛇龜) 뱃속에 있다가 침 끝을 피한다.”

하여, 드디어 난자(亂刺)하여 침을 다 들여보내니 침이 다 굽어지는지라, 그 계집이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일야(日夜)에 부르짖어

“배를 가르고 버러지를 내면 죽어도 한이 없어라.”

하더니, 이윽고 피 흘러 옷에 가득하며 남자(男子)이 땅에 떨어져 고고(呱呱)히 우나 온몸이 상한 데 없으니, 희(噫)라, 복술(卜術)과 의원(醫員)을 가히 믿지 못할 것이 이렇듯 하도다. ─ 유몽인(柳夢寅)의 제목 없음

 

아버지는 아들(중학생`-`필자)을 데리고 설악산 등반을 나섰다.(중략)

아들은 명산의 신비를 기대하며 한발 한발 올라갔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자니 땀이 비 오듯 하고 다리가 아파온다. 목도 마르고 숨도 가쁘다.(중략) 아버지는 조금만 올라가면 설악폭포가 있다고 말했다. 아들은 빨리 물가로 가고 싶어 사람들을 헤치고 걸음을 빨리 한다. 폭포에 먼저 가서 아버지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다.

한참 올라가던 아버지는 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걸음을 재촉하면서 지나가는 젊은이들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 염정임(廉貞任)의 『아버지와 아들』

 

유몽인이 ‘나’가 되어 글 속으로 들어가면 한 여인의 아기 낳는 장면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허구적인 ‘나’로서도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염정임이 ‘나’가 되어 글 속으로 들어가면 아버지와 아들의 내면을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짐작하는 말은 하겠지만).

 

3-`1. 수필쓰기에 있어서의 3인칭 시점이 드러내는 효과는 이밖에도 더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런 효과가 있다면, 3인칭 수필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더구나 고전 수필에 이미 전례가 있음에랴.) 관심 있는 수필가 여러분의 실험을 기대한다.

3-`2. 끝으로 사족 하나. 3인칭 수필에 관한 논의는 수필의 허구(虛構) 문제와 관련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이 보고는 3인칭 수필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자는 것이지 결코 필자의 허구론(虛構論)을 강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