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카데미 제7회 강좌 요지

 

 

소재의 선택과 생략

 

 

                                                                                          이태동

서구에서의 ‘에세이’는 시, 소설, 희곡과 같은 뚜렷한 창작 형식 이외의 산문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 문단에서 ‘에세이’란 말은 수필이란 말로 번역되어 심변(心邊)적인 수상(隨想)으로 한정시켜 붓 가는 대로 쓰는 산문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수필가들이 쓰는 산문은 엄격한 의미의 에세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수상(familiar essay)’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수필이란 16세기 프랑스의 미셀 몽테뉴가 만들어 발전시켜온 장르이다. 그는 나이가 37세가 되었을 때 공직을 버리고 소위 몽테뉴의 성관(城館 )4층 서재로 들어가 『수상록』을 집필했다. 이 책의 서문에 씌어진 ‘나 자신이 나의 책의 재료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그의 글은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는 기본적인 태도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그는 인간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무한한 책임감, 자부심과 존엄성, 그리고 자연 가운데서 보다 근원적인 것을 탐색하고 거기에서 진실과 도덕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나 에세이는 앞에서 언급한 다른 창작의 장르처럼 유기적이 아니고 단편적이며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미의 직접성’을 갖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수필은 사물이나 특정한 대상(對象)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와 명상을 나타내는 단편적인 글이다. 그러나 그것은 흰빛에서 다양한 색채를 발견하듯 일상적인 삶이나 사소한 것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 내지는 도덕성을 찾아서 계시啓示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수필은 몽테뉴 경우처럼 ‘자기와의 대화’ 즉, 명상을 통한 철학적인 발견이나 혹은 사소한 경험에서 위대한 진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일상적인 신변잡기(身邊雜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도덕적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

영문학의 경우, 수필[개인적 에세이]의 대가(大家)인 찰스 램은 조용한 가운데서 회상한 어린 시절의 순수한 경험과 감정을 소재로 해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 ‘오래된 도자기’가 고전으로 평가되는 것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잃어버린 가난’의 소중한 경험을 시정(詩情)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것은 힘들지만, 그것은 힘겹게 성취한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가를 어린 시절의 경험과 풍요로운 어른이 느끼는 경험과 비교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유년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의 경험이 미숙한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세속에 때묻거나 시간에 녹슬지 않는 순수하고 진실된 경험이다. 또 램이 『꿈`-`어린이`:`몽상』이란 수필에서, 유년 시절에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젊은 시절에 탁월한 무희(舞姬)였던 할머니가 암(癌)이라는 가장 무서운 병에 걸려 고통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그 병은 강인한 그녀의 정신력을 끝까지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쓴 것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것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지나칠 수 있는 삶의 풍경에서 발견한 치열한 인간정신이 나타내는 위대한 도덕성 때문이다. 이렇게 수필이 문학작품으로 승화하려면 일상적인 담론이나 감상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앙드레 지드의 수상록 제목이 시사하듯이 ‘지상(地上)의 양식(糧食)’이 되어야만 한다.

물론 일상적인 삶이나 풍경 속에서 진주와도 같이 숨어 있는 진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수필을 쓰는 사람은 이러한 숨은 진실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수상집 『섬』을 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은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들에게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가 제공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수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쉽게 그리고 많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남다른 통찰력으로써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 수필을 쓰기 위한 소재의 선택이란 깊은 도덕적인 의미와 진실이 담겨 있는 숨은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값진 진실의 발견 없이 피상적인 사실이나 감상적인 느낌은 결코 아무런 지적인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소재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잘 끌질된 언어와 엄격한 절제 및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시각을 주관적으로 나타낸 단편적인 글인 수필이 훌륭한 문학작품이 되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쉽게 쓴 글이 되지 말아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아무런 비평적인 계획이 없어도 연필 끝에서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T.S. 엘리엇이 말하듯이 글을 쓰기 전에 명확한 소재의 선택과 치밀한 구성을 위한 계획이 없으면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수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을 소재로 하더라도 선택적이어야만 하고, 시적인 생략과 유기적인 구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문학작품은 무질서하고 혼돈된 현실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질서와 목적이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필은 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극적인 장치가 없는 산문(散文)이지만 그것은 상상력으로 만든 질서가 있어야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비전과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

문학작품은 교훈적인 글과는 거리가 멀지만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는 생활의 철학이나 도덕적인 진실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수필은 어디까지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또 그 문맥 속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추상적으로만 쓰여지지 않고 삶의 진실이 짙게 묻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현실을 왜곡해서도 안 되지만 진실이 없는 일상적인 경험을 나열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소중한 진실이 그 속에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인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그것이 묻혀버린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서 핵심적인 주제와 관계가 없는 경험은 과감하게 생략해야만 된다. 이것뿐만 아니라,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선택된 경험도 치밀한 질서 속에 절제된 언어로서 엮어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탁월한 구성과 다듬어진 언어로 표현된 경험 하나 하나는 주제를 반영시키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여기서 일상적인 경험을 사용하더라도 이를테면 ‘낯설게 하기’를 시도해야만 한다. ‘예술은 관습적인 기호 체계를 낯설게 만들고 파괴시켜서 언어의 물질적 과정 자체를 두드러지게 하여 우리의 지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