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 송로주 따라주네

 

 

                                                                                     구 활

오늘은 책 한 권 달랑 들고 산으로 간다. 물론 숲속에서 지내는 한나절의 청량한 상쾌함에 보탬이 될 대구의 명주 ‘불로不老’ 막걸리 한 병 꿰어 차고 산으로 간다. 정상과 능선 종주를 고집하며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하는 산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오늘은 그림자만 데리고 나 홀로 산으로 간다.

바람은 저 혼자일 때는 바람이 아니다. 구름을 밀고 가거나, 죽림의 댓잎을 건드리거나, 솔 숲속에 의연하게 서 있는 소나무 사이를 지나갈 때 이는 소리의 움직임이 바람인 것이다. 나는 오늘 바람을 찾아 소나무 숲으로 간다. 그 숲속에는 엊저녁 책에서 만난 학이 나의 빈 술잔에 송로주 한 잔을 따라줄지도 모른다. 허기야 학은 없어도 그만, 있다고 해도 제 볼일에 바빠 빈 잔을 본 체 만 체해도 그만이지만…….

 

‘푸른 산 나 혼자서 벗을 찾아와서는

가을 안개 소매 털고 돌이끼에 앉았네

막걸리에 함께 취해 달빛 아래 잠드니

학 퍼득여 솔 이슬이 빈 술잔에 떨어지네.’

─ 박순의 ‘방조운백(訪曺雲伯)’ 둘째 수

 

조선조 선조 때 재상을 지낸 박순(1523~1589)이 젊은 날 동인과 서인 사이의 알력이 심각해지자 잠시 영평 백운산에 머문 적이 있다. 이때 이웃 백운산 기슭에 살던 친구 조준룡의 초당을 찾아가 술도 마시고 시도 짓고 그리고 시국을 한탄하기도 한다.

이 날 박순은 푸른 산 속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 허적허적 산길을 오르니 이마에 묻은 산안개가 땀이 되어 옷소매를 적신다. 친구는 그 동안 정성스레 빚어둔 산열매 술을 항아리째 들고 와 조롱박 잔을 띄워둔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배어든 달빛 기운이 술 속으로 빠져들고, 그 기운은 마신 사람에게로 옮겨져 마침내 시인의 얼굴은 붉은 달빛을 잉태하게 된다.

술은 처음엔 술맛으로 먹다가, 다음엔 친구 맛으로 먹고 그리고 그 다음엔 작부 맛으로 마신다. 그러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엔 술이 사람까지 먹게 된다고 한다. 술 마시는 흥취가 짙어지면 웬만한 술항아리는 바닥 긁는 소리가 들리기 마련. 친구 찾아 숲이라는 이름의 푸른 낙원 속으로 들어간 박순도 일찍 술이 떨어져 여러 번 빈 독 긁는 소리를 냈나 보다.

소나무 둥지에서 잠을 청하던 학이 지조 곧은 선비의 술 떨어진 절실한 뜻을 얼른 알아차린다. 학이 날갯짓하며 박차고 일어나니 산안개가 빚어놓은 솔잎에 맺혀 있던 이슬이 후드득하며 빈 술잔 속으로 떨어진다. 신선들이 마신다는 송로주는 이렇게 학이 따라주는구나.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술이 떨어져 처량해진 경우를 당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학 일학년 여름인가. 친구 넷이 모여 호주머니를 다 뒤져봐도 돈은 백 원밖에 없었다. 당시 염매시장 돼지국물집의 막걸리 한 잔 값이 십 원이었던 시절이다.

우린 백 원을 내고 막걸리 열두 잔을 마시기로 흥정한 후 한 사람이 석 잔씩 마셨다. 혼자서 두 되는 마셔야 겨우 술 트림이 날 주량들인데, 낱잔 몇 잔으론 턱없이 부족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안주는 소금을 친 돼지국물뿐이었다.

썰다 남은 돼지고기 몇 모타리라도 국물 속에 넣어주면 우린 주인의 고맙고 이쁜 손을 향해 ‘한 이백 년 정도 사시라’고 축원해 줄 수 있었는데… 그 주인은 모르긴 해도 틀림없이 축원이 얹어주는 장수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실재로 황희 정승은 궁중에서 훔친 금잔을 잃어버린 자에게 돌려주어 목숨을 보전케 해준 음덕으로 20년을 더 살았다. 또 조선조 명종 때 상진 정승도 궁중의 수라간에서 금 밥그릇을 훔치다 들킨 별감에게 장물을 제자리에 갖다 두도록 하여 사형을 면하게 한 음덕을 베풀어 수명보다 15년을 더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 해 겨울엔 팔공산 등반을 하다가 유리병째로 들고 가던 ‘백화 수복’이란 청주병을 계곡 물 속에서 깨뜨린 적이 있다. 그러자 몇몇은 얼른 물 속으로 뛰어들어 청주가 흘러가고 있는 계류수를 벌컥벌컥 마셨는데 알코올 기운은 1%도 되지 않았다.

그 날 따라 안주는 벼르고 벼른 끝에 장만한 간 천엽과 어묵(오뎅) 등이었는데 술 없이 먹는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그때 이 시를 알았더라면 소나무 위의 학에게 부탁해서라도 송로주 한 잔씩을 얻어 마셨을 텐데…….

 

술꾼은 모름지기 취해서 잔 깔딱 잠에서 깨어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일이다. 술 마신 집이 타워 팰리스의 70평짜리 아파트이거나 고대광실 높은 한옥이라 해도 더 머물려고 쭈뼛거리지 말고 자신의 누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순도 친구의 초당 앞 이끼 낀 바위 옆에 차려둔 술상 옆에서 깜빡하고 잠이 들었나 보다. 아무리 둘러봐도 숲이 구름에 가린 선경일 뿐 여기가 어딘지 짐작하지 못한다.

친구도 접대하면서 마신 술이 과했는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자고 있다.

“친구야, 잘 먹고 가네. 깨우지 않고 그냥 가네. 다음에 또 보세.”

박순은 설핏설핏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미는 기운 달과 함께 아까 땀 훔치며 오르던 길을 더듬거리며 내려간다.

술기운을 지팡이에 의지하니 한결 걷기가 편하다. 지팡이 끝에 박아둔 징이 길 위의 돌을 치니 숲의 적막이 깨어진다. 술 떨어질 때 송로주를 따라주던 둥지 속의 학이 지팡이 소리에 놀라 부스스 일어나 새벽을 연다.

 

‘선가에서 취해 자다 깨고 보니 멍한데

 흰구름 골을 깔고 달도 잠겨 있는 때

 서둘러 숲 밖으로 홀로 나서려는데

 돌길의 지팡이 소리 자던 새가 알았네.’

  ─ 박순의 ‘방조운백’ 첫째 수

 

들고 간 시집 한 권 다 읽고 얼음같이 찬 계곡물에 담가뒀던 막걸리 병을 몇 번째 거꾸로 들고 쳐다본다. 이곳 소나무 숲속에 살고 있는 학은 끝내 송로주 한 잔 따라주지 않는다. 천 년을 산다는 학도 이렇게 조심(鳥心)이 야박한 걸 보니 돼지국물집 주인여자처럼 오래 살지 않으려고 작정했나 보다. 내일 다시 와봐야겠네.

 

 

수필가. 매일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 역임.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하안거 다음날』, 『고향집 앞에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