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문

 

 

                                                                                   金素耕

음력 섣달 열흘, 시아버님의 기일忌日을 맞이해서, 이번에는 과일을 좀 다르게 놓아드렸다. 한겨울에도 사계절 과일을 구할 수 있는 시절이라, 오렌지에 키위도 올리고 멀리 바다 건너에서 온 색다른 과일도 올렸다. 제사를 모시면서 영정을 뵈니 흡족해 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시어른의 제사를 모신 지 올해로 사십 년이 된다. 그 동안 시어머님이 이승을 뜨시고, 내 손으로는 이십여 년이 되는데, 세월만큼이나 달라진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선은 기후의 변화다. 거의 일년 중 제일 춥던 기일의 날씨가 해가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어느 해는 온난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실감이 날 정도의 날씨다.

또 하나는 가족의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그간에 이승을 뜬 사람도 있고, 자손들이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고, 그곳에서 정착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 해는 갑년을 넘긴 자손들만 모인 적도 있다. 어른들이 제물을 나르는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이질 않았다. 지난날처럼 통금이 있어서 자고 가는 일도 없고, 어린 손들이 모여 축제 같던 분위기는 글자대로 추억으로 남은 일이다.

사는 게 뭔지, 매년 그나마 부모님 기일이 되어야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상을 물리고 술잔을 들면서 회포를 푸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런 자리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핵가족에다 국적이 다른 곳에 살게 될 자식들에게 제사를 맡긴다는 것에 자신이 서질 않는다. 어찌 생각하면 생전에 생일을 챙겨주듯이, 내 기일에는 형제끼리 다과상이나 차려놓고 마음을 모아준다면 그로써 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십여 년 전부터였을까, 우리 집에서는 기일에 지방을 쓰는 대신 추도문을 읽는다. 한 해 동안 집안에서 있었던 경사를 알려드리고, 내년에는 더 좋은 소식을 드릴 수 있도록 잘 살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자손들이 부모님을 기리면서 다짐하는 자리가 되는데, 해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추도문을 쓸 때나 읽을 때나 우리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것 같은 마음가짐이다. 제사를 모시는 시간도 저녁 시간쯤으로 당겨서 하고, 매번 두 분의 영정을 나란히 모신다.

이번 시어른의 기일에는 제주를 올리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따로 드린 말씀이 있다.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를 일이나 그때부터는 제수 준비를 간단하게 하겠노라는 내용이었다. 외국에 있는 아들 내외에게 제기를 들려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대신 내 생전에는 정성을 다해서 모실 생각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뜻을 말씀드리면 기꺼이 받아주시지 않을까. 말하자면 시어른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빌미를 준비하는 것이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내외가 잘 생각해서 제사를 모시는 일에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웃에 같은 날 두 분의 제사를 모시는 집이 있다. 해가 다를 뿐 돌아가신 시時까지 같은 조상을 모시는데, 그 댁에서는 선대의 제사상을 모두 물리고 다시 상을 고인다고 한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 댁 며느리의 말을 들으면서, 이제는 좀 달리 해도 되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내 경우라면 두 분의 영정을 나란히 모시고 겸상으로 제주를 올릴 일이다. 부자지간은 생전에도 겸상을 하는데, 제사를 그렇게 모신다고 그것이 예에 어긋나지는 않아 보인다. 혼자 속으로 그 댁 부자지간은 참으로 각별한 분들이었지 싶었다. 남의 집 제사에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나, 그냥 지나는 말로 그 댁 며느리에게 내 생각을 말해 주었다. 어떤 일이든 하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해야 그 수고가 복福을 부르는 일이 아닐까.

해마다 돌아오는 부모님의 기일을 맞이하면, 그분들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이 제주를 고이는 마음이라 여겨진다. 내년 시어른의 기일에는 장안에서 소문난 제과점의 생크림 케이크를 후식으로 놓아드릴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