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박달나무도 알고 있을까

 

 

                                                                                    이정희

후일에 이곳을 찾는 이가 있어, 이 나무가 “달이 밝던 밤에 나에게 잔을 권하던 노인은 어디 갔소?” 묻는다면, “이 방그러니 계곡을 그지없이 사랑하던 그 노인, 흙으로 돌아간 지 오래요”라고 일러줄 사람이라도 있을까.

 

가을이 농익어가던 10월 말의 한낮, 몰려 찾아든 스물 댓 명의 문우들 앞에서 돼지갈비를 곁들인 백세주 몇 잔에 얼큰해진 그는 오랜만에 권커니 잣거니 하는 부산한 사람들의 활기가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 기분으로 잠깐 귀 좀 빌리자며 낭송했던 자작 수필 ‘나도박달나무’의 맨 끝 구절이 아직도 가슴에 찡하다. 14년 전 일흔의 나이로 입산했던 무렵에 유난히 화려한 단풍무더기에 끌려 잡목 숲을 헤집고 들어가 운명처럼 만난 나무 나도박달. 산골 사람들이 ‘복자기’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는 단풍나뭇과에 딸린 낙엽교목으로, 암수 딴 그루로 자라고 잎은 마주나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시과(翅果)로 9월에 영근다. 시과란 껍질이 자라서 날개처럼 되어 바람에 흩어지기 편리하게 된 열매를 이름이다.

 

중국문학 동아리에서 왕유가 망천輞川에 있는 자기 별장의 일경(一境)을 그린 짧은 시 한 수 감상하다가 그 길로 날짜를 잡고 서두르게 된 나들이였다. 그 시의 분위기에 버금갈 적막함과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면서 자신의 누옥(陋屋)으로 문우들을 오래 전에 초대한 글쟁이가 있다 했다. 나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동행하자는 선배들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엉겁결에 따라 나섰다. 뜬금없이 찾아온 좋은 기회를 어이 놓치랴.

 

수필가 초우草友 장돈식 옹의 백운산방(白雲山房)은 갑자기 수런거림에 휩싸였다.

치악산 아래 방그러니 계곡은 원주 시내를 벗어나 버스로 한 30분 가량을 더 가야 할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촐한 산막(山幕) 옆으로 어린 황소만한 진돗개가 늘어져 있는 뜨락을 사이에 두고 정자 하나가 반기는데, 산막 앞쪽으로는 좁고 얕은 개울이 졸졸거리고, 그 엷은 물 속을 예닐곱 마리의 오리가 노닐고 있는 모양이 참으로 한가롭고 정겨웠다. 오색 단풍의 나지막한 앞산은 그 개울을 건너 바로 이마가 닿아 있는데, 외로우면서도 고즈넉하게 큰키나무 한 그루 그 물가에 가을빛을 받아 유달리 선홍으로 활활 타고 있었다. 그의 거실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자리에.

그 나무가 그의 가장 사랑하는 산중의 벗 나도박달이다.

 

황해도가 고향으로 젊어서는 만주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해방의 열기 속에 미처 마치지 못하고 귀향했다. 30대에는 ‘가나안 농원’을 세워 농민운동을 활발하게 한 적이 있으며, 한때는 사업수완도 발휘하여 큰돈도 모았단다.

분방하고 활동적이었던 그가 어떤 계기로 그 모든 세상사를 등지고 이 쓸쓸한 산중에 붙박이가 되어 토끼, 딱새, 다람쥐와 진돗개를 벗하며 살게 되었는지 그 사연과 깊은 속내를 바로 헤아릴 길은 없었다.

다만 한 편의 수필이 주는 여운과 짧은 동안의 만남을 통해 그는 이제 다시 생명의 시원(始原)으로의 회귀를 소망하고 예비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생명의 근원과 자양이 된다는 자연 순환의 이치를 누구보다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정말 나도박달나무를 사랑하나 보다.

서녘으로 기우는 햇살에 눈부시게 고운 이 나무의 단풍을 보고 ‘호흡이 멎는 듯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주머니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음력 열나흗날, 장옹은 한밤중에 방에 든 환한 달빛에 깜짝 놀라 깨어 몽유병 환자처럼 뜨락에 내려 선 뒤, ‘어슴푸레한 실루엣의 산을 배경으로 부드러운 윤곽, 달빛 아래 보는 나도박달은 한 폭의 수묵화다. 낮과는 또 다른 신비로운 자태로 거기에 서 있다. 밝게 찍은 흑백영화의 한 컷처럼 환상적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박주(薄酒) 한 병, 나물 한 접시를 들고 나와 한 잔 따라 마시고 다시 잔을 채워서 개울 건너 나도박달에게 권한다. 그리곤 스스로 그 나무가 되어 고맙다고 답하고는 다시 잔을 들이킨다. 그 순간 나무와 장옹 간에는 아무런 거리가 없다. 그가 곧 나도박달이요 나도박달이 바로 그가 아닌가.

예순다섯의 나이에 시작했다는 그의 글쓰기는 일흔에 등단의 열매를 맺고, 이제 작품집도 한 권 출간했다. 자연의 순환을 굳게 믿는 그는 죽으면 벌거벗은 육신을 그대로 수장(樹葬)해 줄 것을 이미 유언했고, 그 자리까지 보아두었단다. 매일같이 낮 동안엔 덤불 숲속을 헤치고 다니면서 굶주리는 산짐승과 산새들의 먹이를 나르고 나무들의 가지를 잘라주며 얼마 되지 않는 소채를 가꾸고 진돗개와 이야기를 나눈 후, 밤중엔 책을 읽고 명상을 하다가 더러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줌 흙으로 돌아가기를 꿈꾸며 글을 쓴다는 장옹.

그에게서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인생의 가을을 본다.

깊어가는 가을 숲에 그 어느 나무보다도 선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나도박달나무, 그도 생의 가을을 그리 곱게 물들이고자 굽이굽이 헤쳐온 행로를 거기 백운산방에서 멈추고 고독과 그리움을 견디며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후일에 다시 그곳을 찾는다면 나도 한 마디 증언하리라,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이미 한 그루 큰키 나무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그에게는 오직 자족(自足)과 평안만 보이더라고.

 

비우자 비우자고, 날마다 다짐하면서도 오히려 점점 더 어리석은 일로 마음의 쑥대밭을 만들어가는 우리네 삶. 아직도 가지가지 인연의 고리와 자잘한 욕망, 집착의 끄나풀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쳇바퀴처럼 뻔한 일상을 돌고 도는 나 같은 속인에게 방그러니 계곡의 장옹은 놀라움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수필>로 등단(2003년).

한국수필가협회, 에세이포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