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뜨는 말

 

 

                                                                                      전윤미

바람을 쐬러 근처 초막골까지 걸었다. 농장을 지나 손맛낚시터를 돌고 내려오다, 한 무리의 학생들과 마주쳤다. 특별활동을 나왔는지 선생님은 뭔가를 지시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저마다 백태만상이었다. 영락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들 속에서 선생님의 말씀은 공중에 흩어지는 분수와도 같았다.

그들을 바라보다 큰길 쪽으로 가는데 웬 고함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어떤 학생이 버스를 잘못 내려서 낭패였는지, 전화기에 대고 흥분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학생에게 길 안내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대번에 욕설을 하며,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다. 나는 큰길의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뛰다시피 건널목을 건넜다.

온순치 않은 눈빛, 불량한 태도, 거침없는 말. 섬뜩할 정도의 그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남의 집 아이뿐일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위기감이 돌았다. 순둥이라는 별명, 코알라 애칭이 잘 어울렸던 내 아이도 교복 입은 학생이건만, 무슨 일에나 건성이다. 여러 번 벼르다 야단을 치려면, 되레 내가 먼저 지쳐버린다. 키도 덩치도 나보다 훨씬 커버린 아이가 내 앞에 골리앗이 되어, 더 이상 야단을 맞아주지 않는 것이다.

상처라 할까, 상심, 아니 배신감이랄까…….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 걷고 또 걷는다. 마치 숨쉬기 운동하듯, 들숨 날숨을 조절하다 걷다 보면 포르르 새 소리에 내 처량한 한숨도 묻혀지는 듯하다. 발걸음이 어느 새 초막골에 닿는다. 수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우리 동네에 유일한 바람의 통로가 된다는 초막골에서, 나는 바람을 쐬며 벤치에 누워 나비잠을 자기도 한다.

집에 오는 길,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더듬어 손전화기를 꺼냈다. 습관처럼 아이에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삭제’ 버튼을 누를까, ‘발신’ 버튼을 누를까 잠시 망설인다. 가끔씩 아이와 대화가 끊기면 나는 말실수 없고 군더더기도 없는 문자로 고인 마음을 퍼낸다.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손가락으로 해결되는 공간 이동의 대화. 나는 망설이다 ‘발신’ 버튼을 눌렀다. 어미의 문자를 건성으로 확인할 아이의 태도가 떠올려지다 그 위에 내 모습도 겹쳐진다.

특별활동을 나온 학생들, 큰길에서 만난 학생, 지금은 옛말이 되어버린 코알라 내 아이. 그들을 보고 위기감을 느끼던 나 역시, 남의 말을 건성으로 들을 때가 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그것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의 7·7 런던 테러와 몇 해 전의 9·11 테러도 예고된 정보가 있었다고 한다. 항해중인 타이타닉 호에게 타전했던 빙산의 경고도, 예루살렘이 폐허가 될 것이라는 선지자의 예언도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더 이상 말해 뭐하랴. 한 사회와 그 시대를 움직이는 굵직한 예고조차 무시당할진대, 한낱 졸모(拙母)의 한숨이야 허공으로 흩어진들 어찌하리.

현관 앞의 단추를 누르기 전,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한다. 초막골에서 따라온 바람 한 줌이 주머니 속에서 전화기와 함께 잡힌다.

 

 

<계간수필>로 등단(2003년). 계수회 회원.

저서 『월요일 그 낯선 외출』과 공저 『빈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