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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운(윤임)

1.

한 줄로 늘어선 모양이 기어가는 개미다.

 

어른들이 들에 나가고 나면, 혼자 남아 집을 보아야 하는 나는 심심해서 헛검불을 잡았다. 방바닥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햇살막대기와 장난을 쳐보지만 열 시쯤 되면 권태도 지루해졌다.

그런 나에게 눈을 반짝 뜨게 하는 것이 있었다. 옮겨 앉은 햇살을 깃발처럼 흔들며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는 것이, 그늘진 구석으로 고물거리며 가는 개미 행렬이다.

한참을 내려다본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저 겁 없이 내 앞을 지나간다. 넓은 방바닥을 가면서도 좁은 산길을 가듯 외줄로 서서 앞선 녀석을 따라 묵묵히 갈 뿐이다.

그들은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술 취해 비틀거리거나 꾀부리는 양반 하나 없고, 다리 아프다고 쉬는 패랭이도 없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세어보려 하지만 내 인내는 수명이 짧아서 어느 결에 셈을 놓쳐버린다.

손끝으로 슬쩍 건드렸다. 일대 혼잡이 일어나면서 질서가 망가진다. 누가 앞에 서고 누가 뒤에 서 있었는지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그들은 엄청 빨리 움직였다. 그러다 잠시 후면 언제 그랬을까 싶게 다시 질서 정연히 줄 서서 간다.

이번에는 입김을 후우 불었다. 개미들이 나뒹굴었다. 저쪽으로 날려간 갓쟁이는 한참을 헤맸다. 한참 뺑뺑이를 돌다 일행을 만나 휴우~ 한숨을 쉬고는 끊어질 듯한 허리를 잘록거리며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장난을 치노라면 나는 하느님이나 된 듯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이야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디로들 가고 있을까. 그저 꿈을 찾아 끝없는 유랑의 길을 가고 있을까? 그 광막한 사막일밖에 없는 방바닥에서 그들은 어찌 길을 찾을까?

 

2.

동네를 벗어나 숲으로 가는 개울에는 징검다리가 떠 있었다. 건너는 길손마저 없는 여름 한나절, 징검돌은 졸음에 겹다.

열 살 소녀는 소를 냇가에 풀어놓고 하릴없이 징검다리를 건너다녔다. 한가운데쯤에 있는 방석 같은 돌 한 개. 그 돌팍에 앉아 발을 톰방거리다가, 물 한 움큼을 공중으로 던져 올려 손바닥으로 받아친다. 물보라가 퍼지면서 무지개가 뜬다. 또 해본다. 이번에는 무지개가 없다. 또 해본다. 없다. 어디로 갔을까?

살냇물 밑을 들여다본다. 물이 하늘 위에 있다. 바람이 살랑살랑, 구름수제비를 풀고 있다. 조약돌이 아른아른 물 밑을 건너가고, 송사리 떼가 까맣다 흩어지다 한다.

나는 일어나서 활개를 폈다. 반짝이는 물비늘을 미끄러지며 날아오르고 싶었다. 정수리에 조약돌 하나 얹고 징검돌을 건너간다.

가다가 발이 미끄러지면 다시 시작한다. 한 발 두 발… 그러다가 도움닫기에 가속도가 붙으면 어느 새 내 발가락 사이에도 물갈퀴가 나온다. ㅊㅊㅊ……! 물수제비를 뜨며 수면을 박차오른다. 내 깡동치마는 바람을 저어 구름 속을 휘날고, 그러면 나는 혼자 창공을 날았다.

어느 날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지금 징검돌에 앉아 있다.

 

3.

비비비~ 비새들이 찔레덤불에서 올금볼금 울었다.

 

땅에서 뿜는 찜통 열기가 화닥증을 낸다. 그러다 한순간 재구름이 꺼멓게 뭉치다 희게 풀어지다 하며 마른 뇌성을 쿠르릉거렸다. 바람기라고는 없다. 마치 날아가는 새를 겨냥한 포수가 조준거리를 당기다 늦추다 으름장을 놓듯이 여름을 물쿠더니, 솔개가 병아리 덮치듯 순식간에 소나기가 한낮을 그었다. 마당에서 훅, 올라오는 더운 흙내에 입맛을 다시면서 나는 설핏 잠이 들었다.

한참을 따루었는지 어느 새 빗소리가 잦아든다. 낙숫물 소리가 사위면서 못이기는 척 처억적… 간간히 떨어지는 기스락 물 소리가 방문 틈에서 나를 불러낸다. 문을 열고 나왔다.

언제 그랬냐 싶게, 한꺼번에 쏘아대는 새 볕에 눈이 맵다. 흙먼지가 쓸려간 마당이 금방 씻겨놓은 아가의 젖살처럼 뽀얗다. 댓돌로 내려서니 처마 아래에 새 발자국이 나 있었다. 상형문자가 종종종… 외줄로 가고 있다. 비새다 비새~ 나는 환희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비새가 온 것이 틀림없다. 꿈을 더듬는다. 땅에 쓰인 편지의 흔적을 따라간다.

비새는 나보다 언제나 한 모랭이쯤 더 빨랐다. 어디까지 갔을까. 한 바퀴, 두 바퀴… 암호를 짚으며 온종일 조작거리며 따라가지만 아무래도 비새는 보이지 않는다.

찔레꽃이 하얗게 지고 있다.

 

 

<개천문학> 신인상 수필 당선(2002년).

진주 문인협회 , 진주 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