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천료>

 

닫힌 골목

 

 

                                                                                   김민숙

강좌시간에 늦어 연신 시계를 보며 헐레벌떡 백화점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 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타고 보니 안에 한 남자가 있었다. 내 뒤를 따라 들어오던 한 여자는 남자를 힐끗 보더니 황급히 도로 내렸다. 문이 닫히고 나는 버튼 11을 눌렀다. 약간의 진동이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만이 남아 있는 닫힌 공간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숫자가 움직이는 것을 주시했다. 3에서 4로 바뀌는데 한 시간이나 걸리는 듯했다. 나는 그 남자가 백화점의 시설을 수리하려는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시간은 더디 흐르고 밀폐된 네모상자에 시선을 둘 만한 곳도 없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남자의 남루한 운동화가 눈을 긴장시킨다. 신문에 무언가를 둘둘 말아서 옆구리에 낀 손이 바싹 야위어 날선 갈퀴 같다. 힐끔힐끔 거울 속으로 남자를 보았다. 깡마른 체구에 거무칙칙한 얼굴, 움푹 패인 눈, 신경질적인 듯 미간이 좁은 짙은 눈썹이 현상 수배 전단의 몽타주를 보는 듯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오고 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네모상자를 울렸다.

‘천의 손, 천의 눈으로 보시는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을 찾긴 했는데 기도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남자의 손에 말아 든 신문 사이로 날카로운 무언가가 삐죽이 나올 것만 같았다. 기어이 남자의 운동화 한쪽이 움직였다.

후다닥 가방 속의 양산을 꺼냈다. 적당히 접혔던 양산을 새삼 풀어서 다시 접는데 손가락이 자꾸 뒤엉켰다. 며칠 전에 앙증맞다며 구입한 삼단 양산인데 너무 약해 보여서 불안했다.

층수를 알리는 숫자는 겨우 5를 지났는데 지금이라도 열림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는 6층에서 설 것인가? 휴무일이라 엘리베이터는 문화센터가 있는 11층에만 열리도록 조작되어 있을 것이다. 문이 열린다 해도 아무도 없는 매장에 나 혼자 내린다면 더 위험해지겠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양산을 든 손에 새삼 힘을 주고 숫자판에 눈을 고정시켰다. 속도로 승부한다는 이 디지털 시대에 무슨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느릴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에 각인된 로고를 노려보았다.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런 느림보를 만들고도 세계적인 회사라니 배신감이 든다.

 

옛날 홀로 밤의 해변을 따라 자취집에 가던 날, 골목에서 나를 기다려주던 주인아주머니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그녀처럼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나를 구하는 기사가 나타나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의 밤바다는 먹물처럼 짙었다. 송선생 집에서 놀다가 11시쯤 나왔는데 돌아오는 골목길은 더 어두웠다. 자취집은 해변을 벗어나서 마을 안으로 10분 남짓 걸으면 되는 곳으로 평소에는 행인이 많은 길이었는데 막상 나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촌의 밤 11시는 괴괴한 적막이었다. 사위가 깜깜한 길을 걷는데 내 발소리에 내가 놀라 가슴이 뛰었다. 금방이라도 검은 손이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할수록 종아리에 경련이 오는지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교회를 지나 모퉁이만 돌아가면 현주네 집, 세 집 건너 태화네 집, 은영이네 집, 걸음보다 머리가 빨리 달렸다. 주절주절 아이들의 이름을 외며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앞에 시커먼 물체가 버티고 막아섰다. 속에서 쿵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나고 온몸에 힘이 스르르 풀렸다.

“선상님, 어데 갔다 인자 오능교?”

주인집 아주머니가 걱정이 되어 나와 보았다고 했다. 그 날 밤 그의 거친 손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밖과 철저히 유리된 닫힌 수직의 공간이 섬뜩하다. 형광등 빛도 암흑보다 더한 절망을 밝히지 못한다. 앞을 가로막아 줄 아무런 장치도 없다. 소리를 들어줄 사람도 없다. 문명은 빌딩으로 도시를 채워 닫힌 수직의 공간으로 인간을 몰아넣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한없이 작아져서 문명을 거역하지 못한 채 절망의 터널을 오르내린다. 이 거대한 속박에서 풀려나고 싶다. 머리와 가슴이 아우성이다.

“밖으로 나갈라마 우야능교?”

8층을 막 지나고 있을 때였다. 뜬금없는 남자의 질문에 하마터면 양산을 든 손이 튀어나갈 뻔했다.

“아까 1층에서 왜 안 내렸어요?”

따지듯 묻는 말에 애원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나갈 수가 없어에.”

11층에서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와서 돌아보니 그 남자는 나를 따라 내리지도 못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나무처럼 서서 두려운 몸짓으로 밖을 살핀다. 버튼 1을 누르고 내려가서 문이 저절로 열리면 밖으로 나가라고 일러주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1층에서 내리지 못하면 어쩌지.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지도 못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엘리베이터의 숫자만 지켜보았다.

 

 

<천료소감>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떡잎이 포장된 아스팔트를 터뜨리고 제 몸을 밀어올린 숭고한 노고를 감동으로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햇살 속으로 드디어 제 몸을 밀어올렸다는 환희심과 자동차와 바람의 길목에서 밀어올린 싹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의 염려가 교차합니다.

 

마음만 급해서 늘 야성의 밭으로 돌아가려는 제게 그렇게는 제대로 된 김치를 익힐 수 없다며 군데군데 소금을 뿌려 적당히 숨죽여 주신 선생님, 그리고 격려와 용기로 함께 동행한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을 햇살 속으로 밀어내 주신 심사위원님께 여린 싹을 튼실하게 키워나가겠다는 각오의 절을 올립니다.

 

                                                                                             김민숙

                                                                           대구 교육대학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