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천료>

 

왕과 나

 

 

                                                                                     박태선

우리 동네 G`시립도서관에서 남부순환도로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도로 한편에 개봉(開峯)서점이란 자그마한 책방이 하나 있다. 여러 해 전부터 나는 그 집 단골인데, 때마침 대형 서점에서 과소비 추방정책의 ‘책표지 안 싸주기’ 캠페인을 벌이자 대부분의 서점에서 책을 싸주는 일이 사라졌다. 그래 나는 책표지를 싸주는 서점을 물색하던 중, 지금은 주로 개봉서점에서 책을 구입해 오던 터이다.

내가 책표지에 연연하는 것은 남달리 책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라기보다는 생리적인 몫이 더 크다. 나는 손이나 발에 땀이 많이 나는데 어려서 인삼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언제부턴가 내 손발은 계절을 타기 시작했다. 해토(解土)머리엔 손바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땀이 흥건해지고,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손이 건조해지며 메마른 사막이 된다. 그러니 그 사이에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적이 곤욕을 치른다. 요즘 책들이 겉딱지가 갑옷을 두른 것처럼 튼실하지만 문제는 유리처럼 매끈한 그 표지에 있다. 땀이 묻어난 책표지가 미끌미끌 땟구정물이 흐르면 나는 책을 읽다 말고 손등이나 팔뚝으로 책표지를 닦아가며 읽어야 한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책을 싼 경우는 그러한 수고를 덜게 한다. 다 읽고 나면 땀에 눅진해져 말라비틀어지고 이지러진 종이만 벗겨내면 새뜻한 책의 얼굴이 드러나고 책꽂이에 꽂아두면 되는 것이다.

서점 주인은 나랑 동갑인데 중키에 좀 마른 편이다. 광대뼈가 불거졌고 윗니 하나가 부러져 입을 벌릴 때마다 무료한 얼굴에 악센트를 준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는 대개 구석 한 켠 안락의자에 누워 책을 읽다가 “어, 왔어?” 하고는 한 손을 치켜들며 몸을 일으킨다.

우리의 관계는 좀 별쭝난 데가 있다. 그는 엄연히 고객인 나한테 반말을 하는 것이다. 내 말버릇도 원래 그런 터수인지라 나는 이 만만찮은 라이벌을 만나 전전긍긍하던 차에 아예 깍듯이 공대를 올려붙이기도 했다. 그래 놓고 보니 언필칭 ‘왕’인 나는 그의 신하가 되었고, 책방 주인이야말로 나의 왕인 셈이었다. 하기야 그는 새로 나온 웬만한 소설은 죄다 읽으므로 내가 책을 구입하는 데에도 요긴한 조언자일 뿐만 아니라 재즈나 클래식 음악 잡지에 부록으로 끼워주는 여벌 시디(CD)를 챙겨주곤 하니, 나는 신하로서 서운할 것도 없었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에서 내려오다 주문한 책을 가지러 서점엘 들렀다. 책표지를 싸는 동안 나는 여느 때처럼 서가를 죽 둘러보았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서가 어디 어디에 무슨 책이 꽂혀 있나 대강 알 수 있는 정도다. 그러다가 난 가끔 앙가슴을 바늘로 찔린 양 찔끔할 때가 있다. 내가 주문한 책들 가운데 일부는 철학이나 문학 관련 전문 도서류가 포함되는데, 가령 아우엘 바흐의 『미메시스』 같은 책은 학생들을 상대로 참고서나 잡지 나부랭이를 파는 이런 동네에서 읽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은 내가 어떤 책을 주문하면 꼭 두 권씩을 갖다가 한 권은 서가에 진열을 해놓는 것이다. 장식용이라기보다 혹 누가 와서 찾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인의 친절은 쉽사리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먼지가 쌓이고 색깔이 바래지도록 세월이 가도 찾아주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로 인해 갖다 놓게 된 그러한 책들을 마주할 때면 내 맘이 찐덥지가 않던 것이다.

나는 서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를 빼들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선배가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이다. 나는 요즘 소설에 대해 심드렁한 편이다. 책 사는 데는 인색하지 않은 나도 이제 소설책만은 돈 주고 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소설은 피하자는 게 요즘 나의 주의다. 웬만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이 책은 좀더 있어야 도서관 신착 도서 안내 게시판에 공고될 것이다.

“꼭 읽어보라고 하긴 했는데, 사 봤자 한 번 보고 나면 괜히 짐만 될 터인데, 읽겠다는 사람이나 있으면 다행이지만, 요즘 뭐 소설책 읽는 사람도 흔치 않으니……” 하고 구시렁대는 사이에 난 이미 그 책을 들고 카운터 앞으로 걸어 와 있었다. 이왕에 그리된 바에야 이것도 운명이다 싶어 울며 겨자 먹기로 나는 책을 카운터 위에 살짝 던지며 “제길, 이것도 싸주실래요?” 했다.

그가 주문한 책들을 정성스럽게 다 싸더니 내 쪽으로 밀어놓았다.

“얼마예요?”

“어~ 만 오백 원. 그리고 이 책은 깨끗이 읽고 갖다 줘.”

그가 사람 좋은 선머슴처럼 헤벌쭉 입을 벌리고 웃었다. 맨 위에는 표지를 싸지 않은 『미국의 송어낚시』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틀 후 책을 돌려주려고 서점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더 활기에 차 있었다. 그러한 목적 말고도 진작부터 별러왔던 말을 그에게 할 참이었다. 언제 술 한 잔 같이 하자는 것인데, 허심탄회하게 친구로서의 우정을 맺고 싶었던 것이다. ‘왕과 나’의 관계가 아닌 동류(同類)로서의 벗(朋)으로 말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서점의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그 이후로도 서너 차례 더 찾아가 보았지만 내 속마음은커녕 빌린 책마저 전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서점을 자주 비우며 그의 어머니가 대신 가게를 지키시던 일이 떠올랐다. 자세한 사정이야 알 길이 없지만 서점의 대형화 추세에 밀려 아예 다른 호구책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나의 왕은 내 곁을 훌쩍 떠나버렸고, 나는 그의 영원한 그리고 외로운 신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천료소감>

 

자식은 늘 부모를 배반하기 마련이다?

올해 소원(?)이 등단하는 것이었다.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올해 내 소원이 ‘결혼’이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면 뒤늦게나마 부모님의 나날이 늘어만 가는 주름살을 펴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부족한 제 글을 거두어주신 것은 심사위원님들의 넓으신 아량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좋은 글 쓰겠습니다.

 

                                                                                   박태선

                                                     서강대 영문과 졸업.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