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무덤

 

                                                                                이익섭

이렇게 작을 수가! 아니, 이게 그 위대한 대문호 톨스토이의 무덤이란 말인가! 꼭 내 주먹만하지 않은가! 조그만 풀 무덤. 내가 들어가 눕지도 못할 만큼 작고도 작은 풀더미.

모스크바 일정 중 중간 중간 한 이틀은 비어 있었다. 하루는 어디 교외로 좀 멀리 나가보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 나를 초대해 준 분이 추천한 곳이 바로 톨스토이 무덤이었다. 사실 그곳은 톨스토이 생가가 있는 그 유명한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여서 어떻게 달리 말할 수 있었을 법한데도 그분은 별스럽게도 톨스토이 무덤을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 무덤이 얼마나 작은지 꼭 한 평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그 “한 평밖에 안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 큰 울림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이번 러시아 여행은 두 번째이기도 하거니와 이번에 참석하는 행사가 행사인 만큼 사실 관광은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톨스토이 무덤을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은 며칠 내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리도 모스크바에서 거의 300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만만치 않은데다가 혼자 차를 대절해 가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또 그 며칠 허리까지 신통치 않아 거기를 추천했던 분까지 은근히 만류하는데도 무슨 큰 힘에라도 이끌린 듯 결국은 거기를 다녀왔다.

아침 여덟 시 호텔을 나서니 하늘은 티없이 맑고 이미 단풍이 한창인 거리는 싸늘하나 상쾌했다. 모스크바를 벗어나자 이내 길 양편으로 자작나무 숲이 끝도 없이 이어지더니 다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초원이 나타났다. 어쩌다 농가인 듯한 집들이 나타났으나 대부분은 무인지경. 광대무변廣大無邊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땅이 이렇게 넓을 수 있을까. 지난번 왔을 때 비행기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녀오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차로 달리며 보는 들판은 전혀 새삼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한 농부가 좀더 많은 땅을 갖기 위해 러시아 말도 안 통하는 먼 곳으로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곳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리는 땅은 얼마든지 있으니 당신이 원하는 만큼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들판이야말로 바로 땅은 얼마든지 있는 곳이 아닌가. 굳이 러시아 말이 통하지 않는 먼 고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땅은 얼마든지 있는 곳.

그렇게 그렇게 허허 벌판을 서너 시간이나 달렸을까. 러시아 운전수도 길을 몇 번이나 물어 꽤 멀리 왔다 싶을 즈음 톨스토이의 고향 툴라(Tula)라는 도로 표지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차츰 좁은 길로 접어들고 다시 마을도 나타나는 더 좁은 길을 지나니 드디어 야스나야 폴랴나가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황량하던 들판과는 달리 여기는 관광버스도 몇 대 와 있고 승용차도 꽤 와 있다. 일요일인데도 중학생 또래의 학생들도 단체로 와 있고, 외국인보다는 주로 러시아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붐비고 있었다.

톨스토이 생가, 아니 그 영지領地는 엄청나게 넓기도 하였지만 그 입구부터 운치가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왼쪽으로 조그만 호수가 거울처럼 맑게 반짝이고 있었고, 이어 약간 언덕진 곳으로 자작나무가 양쪽으로 빽빽이 늘어선 길이 나 있다. 그 왼쪽은 과수원, 그 오른쪽은 숲과 공원. 그 비탈길을 다 오르면 이쪽저쪽으로 드문드문 집이 몇 채 나타나고 안내 팻말도 나타난다. 그 중 Tolstoy House가 눈길을 끄나 나는 분연히(?) Tostoy’s Tomb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이 빽빽한 오솔길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무덤이 나타났다. 아니, 저게 무덤이란 말인가 싶은 풀더미가 하나 덩그마니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 언저리에 모여 있고 사진 찍는 사람도 있으니 그게 무덤인가 했지 거기 아무도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것은 너무나 상상 밖의 모습이었다. 어디 도툼하게 올라앉은 양지 바른 곳도 아니고, 그저 길가에 어떻게 보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듯한 곳에 그렇게 무덤이 있었다.

1911년에 찍은 사진을 보면 하얀 목책이라도 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쇠를 구부려 박아놓은 것들이 겨우 한쪽에 초라하게 쳐져 있을 뿐 울타리도 없고 비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톨스토이 여기 묻히다’라는 비문 하나쯤 있어도 좋으련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무덤은 그렇게도 작았다.

‘한 평밖에 안 된다’는 예비 학습으로 꽤 단단히 무장을 하고 왔건만 이건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숨이 멎는 듯 나는 한참을 넋을 놓고 멍하니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다시 떠올랐다. 주인공 바흠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바스키르라는 곳에서 촌장은 1천 루불만 내면 해가 뜰 때 출발하여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는 땅을 다 주겠다고 하였다. 바흠은 괭이를 들고 자기가 도는 땅에 표시를 하며 되도록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멀리 멀리 돌면서 욕심을 부리다가 지칠 대로 지쳐 출발점까지 돌아오기는 하나 끝내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촌장의 하인이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를 정확히 재어 바흠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그것이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의 전부였다.’

톨스토이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그는 말년에 부인에게 더 이상 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어디 조용한 곳에 가 외따로 말년을 보내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미명을 틈타 홀연히 60년이나 살던 집을 떠난다. 자기를 이해해 달라는, 그리고 찾으려 하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톨스토이는 수녀가 된 누이한테 가 거기서 기거하려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부인이 자기를 찾아나섰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길을 떠났는데 이미 깊은 병에 들어 있던 쇠약한 몸을 이기지 못해 곧 객사하고 만다. 그는 무엇을 예감하였는지 죽기 2년 전 자기를 나무 관에 넣어 지금 무덤이 있는 바로 이 자리, 특히 맏형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바로 이 자리에 묻어 주되 일체의 장례 행사를 하지 말라는 유서도 남겼다 한다.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평생을 부유한 자신의 처지를 죄스러워하며 철저히도 검소하게 살려고 한 톨스토이. 그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땅은 한 평이면 족하다는 것을,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모르겠어(I don‘t understand)’라고 한다. 그 많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기고 간 대문호의 말이 결국 ‘모르겠어’였다니. 그러나 괴테가 ‘좀더 빛을!’이라 한 것도 결국 같은 심정의 토로였을 것이다. 이 끝모를 세상, 이 티끌 같은 인생. 아주 아주 작게 묻히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무덤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날도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와 경배하고 갔는가. 측백나무 잎으로 무덤 가장자리를 곱게 둘러 덮고 작은 꽃다발들도 얹혀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얼마나 큰 울림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가. 호화로운 무덤이라면 결코 흉내도 낼 수 없는 진하고 진한 감동의 물결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톨스토이의 무덤, 계속 거기에 압도되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진정 그것은 크고도 큰 무덤. 위인은 또 그렇게 우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서울대 명예교수. 국어학회 회장.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역임.

저서 『국어학 개설』, 『국어표기법 연구』, 『한국의 언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