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없는 집

 

                                                                                      변해명

내게 있어 여행은 흔들리는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오름과 같다. 그래서일까 이국의 아름다운 풍토와 그곳의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바라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보다 오늘을 살고 있는 다양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지난 시간의 자취를 더듬어가는 여행에 더 흥미를 느낀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어제의 모든 것들이 지워져버린 자취를 찾아 여정에 오르면 나를 긴장시키는 것은 흔적조차 없는 폐허의 빈 터이다. 그곳에서 그림자를 찾으려는 내 추리와 상상력은 버려진 돌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원형의 그림자를 찾아 그날의 화려했던 모습들을 오늘에 되돌리고 싶은 아쉬움에도 있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과거가 아닌 현대를 살고 있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그들 모습 속에서 과거의 시간들이 서성이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은 안개 속처럼 다가가도 보이지 않는 벽들로 보이고, 그 벽에는 해독할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하고, 그 기호를 들여다보면 얼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내 옷깃을 흔든다. 그 세상 속의 풍경과 그림자와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폐허에 서면 더욱더 아우성처럼 많은 것들을 더듬어보게 한다.

세상에서 지워져 간 것들은 아름다운 그림자를 남긴다. 그림자조차 아름다울진데 그 존재는 얼마나 화려한 꿈의 보석이었을까?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노력했고, 차지하려 하고 사랑과 열정을 쏟으며 연연해하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숨기고 도전을 했을까? 폐허에 서면 그런 흔적들의 숨결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퍼즐을 맞추듯 기억에도 없는 조각들로 폐허의 여백을 지워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모든 것에 지우개를 들이대고 인위적으로 지우고 또 지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않는가. 새 것만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광기 속에서 처절하게 자취를 감추고 그림자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너무나 많은 것들, 인간들이 쉼없이 지워가는, 그래서 이제는 기억에도 없고 그림자조차 지니지 못하는 흔적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한 시대를 머물며 향유했던 시간들, 그 아름다운 빛의 가락들. 그러나 이제는 소리를 잃어버린 괘종시계처럼 모두의 기억 밖으로 밀려나 있다. 그것에 서린 신화는 지금도 나를 춤추게 하고, 눈뜨게 하고, 그리움에 젖게 한다. 빈 터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속삭임들처럼 내 여정을 잡히지 않는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다.

터키는 어느 여행지보다 그런 것들을 더 느끼게 한 곳이었다.

파묵깔레 온천지에는 지금도 노천으로 흘러가는 온천에 발을 담그려는 세계인들이 몰려와 성시를 이룬다. 그런데 그 곁에는 오늘처럼 발을 담그며 휴식을 즐기던 로마 귀족들의 석관들이 입을 벌린 채 하늘을 향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석관은 비어 있어도 그 주인공들의 상상을 초월한 영화의 흔적이 묻어나는데, 이끼 낀 석관을 바라보고 있으니 연민으로 가슴이 시려오기도 했다. 권력과 부와 사치와 고통도 육신과 함께 머문 시간이 그토록 짧았던 것을. 지하에 묻으며 슬퍼하며 잠재웠을 그 많은 영혼의 집들이 왜 지상으로 살아나와 허무의 빈 배로 바람 위에 떠 있게 된 것인지. 무심히 피어난 풀꽃 하나를 꺾어 이끼 낀 석관 위에 얹어본다.

거대한 도시 에베소는 폐허 속에 몇 개의 돌기둥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35만의 인구가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던 에베소는 온천을 즐기던 욕탕문화의 자취만으로도 귀족들의 삶이 얼마나 호화로웠는가를 짐작하게 했다.

분수를 감상하듯 앉는 둘레의 돌 의자는 공중 화장실 좌변기라는, 배설하는 공간조차 문화공간으로 품위를 지니던 모습이 남아 있다. 대리석 보도 위에는 넘실거리던 발자국들이 각인되어 진정 화려하고 아름답던 도시인의 물결을 상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학문의 전당으로 일컬어졌던 셀레시우스 도서관의 돌기둥 속에는 학문을 사랑하던 학자들의 모습들이 보이고, 2만 5천의 관객을 수용하던 원형극장에서는 지금도 성 바오로의 설교 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백 개의 계단 위에서도 무대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원형극장의 무대 뒤에서 죄수들을 위협하던 사자들의 포효하는 울부짖음이 들려오기도 하고.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대리석 보도에 새겨진 여자와 돈, 심장의 음각이었다. ‘돈만 내면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매춘 장소를 알리는 대리석 광고판은 아직도 호객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곳을 찾아가던 탕아들의 발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욕망의 사슬이 육감으로 다가오는데, 그 대리석 보도 위로 에게 해의 석양빛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스탄불은 페허가 되고도 남을 자취를 품에 품고도 페허가 아닌 현존하는 역사로 살아 있었다. 동서 문화가 비빔밥이 되어 한 그릇에 담겨 있는 이스탄불, 그 하늘을 바치는 미나레의 숲에서 기도하라고 독려하는 아잔이 들려왔다. 사람을 부르는 신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순명하듯 굴복하는 이슬람의 사람들,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맨 땅에서도 알라를 향해 경배하는 가족도 보았다. 권력의 교차와 문화의 교차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 특이한 동서의 융합으로 어우러진 곳의 시간이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맛볼 수 없는 무게로 나를 감쌌다.

불루모스크와 성 소피아 성당을 순례하며 두 종교의 성지로 순례자의 발길이 그치지 않음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신의 영지이기 때문이리라. 2000년 역사를 가슴에 묻고 초연한 이스탄불.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콘티탄티누스에 의해 325년 창건된 성 소피아 성당은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가톨릭에서 그리스정교로, 이슬람 사원으로, 터키공화국에 의해 1935년 박물관이 되기까지 8백여 년간 수난의 성지로 머물러왔다.

건축 당시 가톨릭의 성당으로 모든 벽은 모자이크로 성화의 벽이었으나 그 성당을 차지한 이슬람은 그 위에 희게 벽을 바르고 성당 밖에는 모스크를 세워 알라신의 터전으로 바꿔놓았다. 벽 뒤에 숨은 예수는 3백년 만에 얼굴을 내밀고, 벽을 지운 예수와 알라신은 한 지붕 아래서 사람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져주었을 것인데, 이제는 두 종교의 과거의 집으로 흔적만을 따라 마음을 헹구는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모자이크의 성모상과 지붕을 가리는 우뚝한 미나레가 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건물, 가톨릭은 가톨릭의 영지로, 이슬람은 이슬람의 영지로 영원히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을 소피아 성당.

결코 지우지 못한 터전이 그림자가 아닌 실체로, 오늘도 솟는 아침 해처럼 새로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보석인가? 과거의 시간이 온전히 살아 숨쉬는 건물의 벽을 어루만지며 나는 한없는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 인간이 망치를 들고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신의 영지, 뺏고 빼앗겨도 그 누구도 감히 지우려는 도전을 하지 못한 성전의 영원성 앞에 입을 맞췄다. 그림자 없는 집, 폐허에서 감돌던 바람도 이곳에서만은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