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월

 

                                                                                   김영만

흐르는 세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난 일을 생각할 때가 있다. 윤기 가신 조그마해진 손등, 친구의 흩날리는 백발, 동탕해진 아내의 뒷모습…….

나는 지금 주름진 두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중학교에 들어와 첫 여름방학을 맞은 다음날일 것이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둘째 동생을 데리고 인천에 있는 외숙에게 다녀오기로 했다.

인천을 가려면 청주로 나가 수원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수원에서 다시 인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동이 틀 무렵 우리는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막내를 데리고 앞 개울까지 따라나와 개울을 건너간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눈물을 닦으셨다. 며칠만 있으면 돌아올 텐데 눈물까지 흘리시는 어머니가 맘에 걸려 나는 자꾸 돌아다봤지만 동생은 마냥 즐겁기 만한 표정이었다.

버스 안은 더웠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 몇 대로는 차 안의 더위를 내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이 앞가슴을 적시었다. 버스가 설 때마다 마실 것을 든 장사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조금 큰 정거장에서 쉴 때는 모두 내려 매점으로 달려갔다. 나도 동생을 데리고 나와 매점으로 갔다. 그러나 그때 생각이 주머니의 돈에 미쳤다. 빠듯한 왕복 여비. 만일 오늘 써준 주소대로 외숙댁을 바로 찾지 못한다면, 그래서 가외로 돈이 더 든다면 여비는 모자랄 것이다. 나는 등나무 아래 수돗가로 가 그 물을 잔뜩 들이마셨다. 동생은 그 물을 받아 얼굴까지 문지르며 시원하다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날 보고 웃었다. 버스 안의 일행 가운데는 방학이라서인지 부모들과 같이 나선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화장실에 잠시 들렸다 나와 보니, 동생은 저보다 조금 어린 듯한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빵과 사이다를 마시는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동생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 버스에 오르면서 아직도 그 개울가에 서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와 막내동생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2년 전 내가 5학년 때 돌아가셨다. 급격히 꺾인 가세에 맏이인 나 하나를 겨우 중학교에 보내고 난 뒤 동생은 집에서 잡일을 시키고 있었다.

외숙댁은 다행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해가 거의 넘어갈 무렵 찾아 들어간 우리를 외숙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소 쪽지 하나만을 들고 용케도 찾아온 우리 형제를 그리고 아버지 없이 이만큼 자란 우리를 더없이 대견해 하는 눈치였다. 이튿날은 의원인 아버지의 외사촌형님이 되는 어른을 찾아갔다. 그는 너희가 아무개 아들들이냐며 눈물부터 주루룩 흘리셨다. 그리고 네가 큰놈이구나 하시더니 날 끌어안고 손과 얼굴을 한참이나 쓰다듬으셨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찾아 구경을 하며 꿈인 양 닷새를 보냈다. 내일은 가야 할 날이다. 어머니가 닷새만 있다가 오라고 하셨다 하니 외숙도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외숙이 이끄는 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타고 갈 버스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 외숙은 대합실 한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동생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형만 내려가는 것이고 너는 여기 남는다.” 천만 뜻밖의 말이었다. 동생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내 손을 와락 잡았다. “안 돼! 형하고 같이 갈거야!”라며 소리를 쳤다. 외숙은 이미 동생의 한쪽 팔을 완강히 붙들고 있었고 나를 보고 어서 차에 오르라는 시늉을 하였다. 날 붙잡은 채 이젠 몸부림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표도 형 것밖에 없다. 너는 못 간다.” 외숙의 단호함에 눌려 나는 주춤주춤 차에 올랐다. “형!” 동생은 큰소리로 다시 나를 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버스는 출발을 했고 나는 뒷창으로 달려가 동생을 내다보았다. 외숙의 손을 빠져나온 것인지 아니면 외숙이 그냥 놓아준 것인지 동생은 형을 부르며 버스 뒤를 죽을 힘을 다해 따라오고 있었다. “형! 형!” 동생이 부르는 소리가 바로 귓전을 때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나는 모자를 벗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어찌 된 것인지 한쪽 발은 맨발이 되었고 윗옷도 벗겨져 있었다. 흙먼지 속에 동생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난 자신도 모르게 엉엉 큰소리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

동생은 그 뒤 어느 집 가게에 점원으로 있으면서 명절이 돼도 내려오질 못했다. 어느 해 봄, 손에 심한 동상이 걸려 그걸 치료하느라 일주일쯤 내려와 있던 것 말고는 어머니와 우리들이 전처럼 함께 지낸 일도 없었던 것 같다.

엊그제는 어머니의 기일, 영정 앞에 3형제가 둘러앉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때의 막내는 회갑도 넘긴 허연 노인으로, 둘째동생의 얼음이 박혀 검게 부풀어올랐던 손은 쭈굴쭈굴 늙은 조그마한 표주박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과연 그간의 세월을 무엇을 얼마나 얻고, 또 무엇을 얼마나 이루며 살아왔는가.

 

세월은 정녕 물처럼 흘러가는 것인가. 그러나 세월의 물살에도 씻겨가지 않는 것이 있는 걸 보면 인생이란 꼭 그렇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그 세월을 건너가는 것일게다. 씻겨가지 않는 그 기억들을 징검다리삼아 얻고 이룬 것, 그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한낱 남루를 가린 옷가지에 불과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