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과 DMZ

 

                                                                                金菊子

바보는 고민하고 천재는 여행한다.

이제 고민하는 바보에서 여행하는 천재가 되자.

드디어 낮 1시 30분 비행기의 발이 인천 공항을 구르며 공중으로 비상했다. KAL 승무원 아가씨가 미소를 담은 음료수를 권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속이 비어 있는 상태이다. 이삿짐 속에서 빠져나오느라 챙겨 먹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마음이 착찹하다. 오늘 집수리를 하기 위해서 임시 이사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스물여덟 덩어리의 박스(box)와 잠깐 살 수 있는 살림살이를 가지고 남편은 오피스텔로 갔고, 나는 잠시 지낼 수 있는 옷 보따리를 싸가지고 동부 유럽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비행기 속 점심 메뉴는 비빔밥과 국수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다. 당연히 비빔밥이다. 오늘 밥을 얻어먹지 못하면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바로 앞에서 비빔밥이 떨어졌다. 단체 예약으로 내 좌석이 뒤쪽으로 밀리다 보니 앞사람들이 먼저 비빔밥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많이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이 국수를 받았다. 뚜껑을 여는 순간 울컥하고 욕지기가 나왔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신경 쓰고 굶었기 때문에 속을 살살 달래가며 국수 가닥을 넘겨보았다. 하지만 몇 가닥 못 넘겼다.

내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공중에 올라와 보니 더 확실함을 알았다. 나는 순수 신토불이 식성을 지니고 있다. 물 말아서 오이 한쪽이면 한 끼 식사가 되는 사람이다. 비행기는 계속 날아가고, 하루 종일 굶은 천재가 그 속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비행기가 12시간을 날아 우리 시간으로 밤 1시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닿았다. 현지 시간은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서 스카이라인(skyline)이라는 기차를 타고 B`지구로 이동했다. 밖은 대낮같이 밝았다. 이곳에서 베를린은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가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베를린은 13세기에 성립된 도시로 서울 면적의 3배 정도 넓은데 비해 인구는 1/3 정도라고 한다. 현재 재독 동포가 5천 명 정도 살고 있다. 60년대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 유학생 그리고 외교관들이다.

길들이 널찍 널찍하고 길 중앙으로 꽃을 심은 화분, 아니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중앙선 대신 마련되어 있었다. 길가로는 키가 큰 가로수들이 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된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높은 건물은 드물고 5~6층 정도의 건물로 모래색, 밤색, 흰색 같은 점잖은 색으로 칠해져 도시 전체가 쾌적하고 잘 정돈되어 보였다. 특히 도시의 1/3이 숲이나 호수, 강으로 되어 있고, 파리보다 많은 숲과 베니스보다 많은 다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도시를 동서로 가로질러 30km 이상을 슈프레 강이 흐르고 있어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집에서 15분 거리에 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를린은 기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로 알고 있지 않은가!

세계 2차대전 후 독일의 몰락으로 이 도시는 동독의 한가운데에 있는 섬으로 동베를린, 서베를린으로 나뉘어졌다.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 1961년 120km 되는 서베를린 지역을 콘크리트 벽으로 싸버렸다. 그것이 바로 베를린 장벽이 된 것이다. 1989년 이 장벽이 철거되면서 베를린 시민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했는지는 텔레비전에서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독일은 드디어 역사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현재는 이 장벽을 1.3km 정도 남겨서 세계인들에게 관광지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안내자의 인도로 베를린 장벽 앞에 섰다. 벽에는 각양 각색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림들이 혐오스럽고 흉하게 보였다. 물론 그 벽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로 보아 이해는 갔다. 이름 있는 예술가들의 그림도 있었지만 그들 역시 삶과 죽음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장벽에 의해서 억눌렸던 욕망 그리고 정치적인 권력에 의해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원한과 분노, 슬픔을 생각하면서 벽화를 그렸을 것이기에 내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도시의 다른 곳에서도 벽에 낙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하면서 거리의 벽에 낙서를 즐긴다고 한다.

소련의 브레즈네프(Brezhnev)와 동독의 호네커(Honecker) 수상이 키스하는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조심스럽게 길을 건너갔다. 자동차들은 역사적인 이 현장의 의미를 모르는 체 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발길을 돌리는 내 마음은 왠지 씁쓸했다. 아마 아직도 남아 있는 우리의 분단 현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비무장지대.’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 포성과 총성이 멈춘 1953년 7월 27일 DMZ(De-Militarized Zone)가 한반도의 허리를 잘라버렸다. 정전 협정에 따라 동서로 249.4km(155마일)의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2km는 남방한계선이고, 북쪽으로 2km는 북방한계선이다. 그 사이의 면적이 3억 평(10만 ha)이라니…….

인간의 간섭과 발길이 끊기면서 새로운 녹색지대로 변했고, 야생동식물의 서식지가 되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은 오히려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드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1천여 종의 식물 분포와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 그리고 산양, 고라니, 멧돼지, 수달, 노루, 살쾡이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극의 현장이 오히려 동식물들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바뀐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을 우리는 그린 월(Green Wall)로 표기하고 있다. 혐오스러운 베를린 장벽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푸른 장벽인가!

이제 뜻밖에 얻은 이 녹색지대를 우리의 분단 현실로 보아 어떻게 해결하면서 조화 있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가 큰 문제이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금년이 우리 광복 60주년이다. 베를린 장벽 파편 몇 점을 가지고 우리 예술가들이 평화의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의 염원을 간절히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