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류

 

                                                                                   최순희

햇볕이 좋은 남캘리포니아에는 유독 과실이 달고 맛있고 풍성했다. 어느 여름날 내 집주인인 일흔일곱 살 난 할머니 친구 루실과 망고와 체리를 먹다가, 이곳엔 모든 게 다 있는데 어째 석류만 없다고 불평을 했다.

울긋불긋 화려처연한 아버지의 꽃상여가 석류나무 기웃이 내다보는 옆집 장호네 담장을 돌아갈 때, 마을 어느 어린 각시는 숨넘어가는 소리로 철없이 탄복했다.

“세상에나, 저렇게 많은 만장은 처음 보요!”

모든 것이 어쩐지 몹시 무섭고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웠던 봄날, 석류는 슬프면서도 이상스레 화사한 내 유년의 뜰 한가운데 서 있었다.

루실은 석류가 없긴 왜 없느냐면서 내 손을 이끌고 나섰다. 베벌리 힐 끄트머리에 사는 아마추어 화가 할머니, 미스 엘리자벳의 정원에서 그렇게 내 어린 날의 석류꽃을 다시 보게 되었다. 햇볕을 아낌없이 받아서일까. 기억 속의 나무보다 더 크고, 꽃송이도 미당 시인의 ‘다홍치마 빛으로’ 더 풍염했다.

어느 늦가을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상냥한 미스 엘리자벳은 계단참에 소담스런 석류 바구니를 놓아두었다. 석류다! 탄성을 터뜨리며 바구니를 안아 올리는데, 크고 덩실한 어떤 환희의 덩어리 같은 것들을 품에 껴안은 듯했다.

새콤달콤한 석류를 아껴가며 까먹으면서, 루실과 나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간 하데스가 그녀에게 석류를 먹여 지하세계의 왕비로 삼았다는 신화를 떠올렸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발레리의 시집에서 ‘석류’를 찾아 낭송하고, 지금은 도무지 작가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단편소설 ‘석류’를 번갈아가며 서로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루실과 미스 엘리자벳이 차례차례 세상을 떠난 뒤로도, 해마다 11월이면 석류를 까면서 저 옛날 장호네 돌담 안팎 풍경이 내게 드리운 생의 음영들과 정다운 루실들과의 한 시절을 되짚어보는 것이 나의 내밀한 가을의식(儀式)이 되었다.

서울에 돌아오자 남캘리포니아에 두고 온 석류가 못내 그립고 아쉬웠다. 딱히 석류 자체라기보다는 석류로 표상된 지난 시간과 기억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터이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인사동쯤의 길거리 수레에 탐스런 이란산 석류가 나오기 시작했다. 반갑긴 하나 낱개에 수천 원씩이나 하여 기껏 두어 개쯤 반닫이 위에 모셔다놓고 눈으로만 즐겨온 것인데,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많다 하여 돌연 관심을 모으더니 요즈음에는 할인마트마다 상자째 쌓아놓고 싸게 팔게 되었다. 내겐 더없이 반가운 가을날의 호사다.

석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사(不死), 하나 속의 여럿, 풍요와 다산을 상징해 왔다. 기독교에서는 영원한 생명, 영적 풍요의 상징이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페르세포네 신화에서 보듯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주는 붉은 유혹이자 결혼의 상징이기도 하다. 익으면 절로 벌어지는 속성 때문에 석류는 미당의 시편들에서처럼 농익은 성적 상징물로도 자주 노래되어 왔지만, 이 가을 겨울 석류를 만끽하는 동안 내게 걸러진 이미지는 그보다는 발레리의 시에서 보는 그지없이 이지적이고 성숙된 내적 자아의 결정(結晶)이다.

 

넘치는 알맹이들에 못 이겨

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

자신의 발견물로 터질 듯한

최고의 이마들을 보는 것 같구나!

너희가 견뎌온 나날의 해가,

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다져진 너희로 하여금

루비 칸막이를 찢게 하였을 때,

껍질의 건조한 금빛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과즙의 빨간 보석들을 터뜨릴 때,

이 빛나는 파열은

내가 지녔던 영혼더러

자신의 은밀한 건축물을 꿈꾸게 한다.

 

경이롭게 알알이 박힌 루비를 들여다보노라면 한 생의 신비와 내적 희열, 우주의 충만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또는 ‘성숙’이나 ‘완성’, 혹은 ‘오연한 자부심’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시금 빈손으로 한해를 보내며 낙담하지만, 그래도 한결같은 나의 지향점은 언제나 저 석류처럼 스스로 충만하기, 다만 그것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