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씨네 다방

 

                                                                             배채진

‘이장님’이라고 불렀더니 자기는 이장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동네 사람들이 자기 보고 자꾸 이장하라고 하는데 한사코 수락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차선생님’ 했더니 더 펄쩍 뛴다. 자기는 선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배움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냥 ‘차씨’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래이니 말을 놓아 달라고 했다. 그래도 ‘이장’, ‘차선생’ 하고 불렀는데 본인의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눈에 보여 그냥 편하게 ‘차씨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차씨 아저씨는 이번 악양 나들이에서 알게 된 악양골 토박이다. 그는 차 농사, 논 벼농사, 밭 보리농사 그리고 매실, 대봉감 등 과일농사를 크게 짓는다. 농사 규모가 크다고 했더니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살아온 과정을 말해 주었다. 물론 농사짓는 일의 어려움도 함께. 이른바 머슴이라고 부르는 남의 집 품팔이로부터 시작된 그의 농민으로서의 삶이 소장수를 거쳐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그의 다방에서 그가 생산한 차를 얻어 마시면서 듣게 된 진한 인생 이야기였다. 착실히 일한 결과가 지금의 농사 규모이지만 근심 걱정도 많다고 했다. 농사짓고 살기 너무 어렵다고 했다.

하동 악양 출입 여러 해 만에 이리 깊숙이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번에 악양골 맨 위인 회남재, 그 아래 동네인 매계리, 동매리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지리산 시루봉 남쪽 줄기에 자리한 마을들이었다. 다 차씨 아저씨 안내 덕분이다. 박경리의 『토지』 무대인 평사리에서 보는 악양 벌판과 섬진강 모래사장 풍경만으로도 감탄하곤 했는데, 동매리서 내려보는 풍경은 평사리서 보는 풍경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늘 만남은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따라서 그의 다방 출입도 다섯 번째다. 그는 차를 연신 다렸고 따랐다. 그 사이 나는 면사무소에 신고할 주 재배 작물은 차나무고 그 다음으로는 대봉감나무 또 매화나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잘 생각했다고, 야생차, 매화 매실 그리고 대봉감 하면 악양 아니냐고 맞장구친다. 차밭을 하나 가꾸고 싶은 소원을 이번에 나는 차씨 아저씨를 통해 이루게 되었다. 그의 소개로 마련하게 된 차밭에는 어린 차나무 순이 막 올라오고 있다.

지난 여름에 씨를 뿌렸으니 1년은 더 기다려야 완전 발아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소개해 준 차밭은 섬진강과 악양 벌판, 강 너머 광양의 백운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동매리 뒷산 기슭의 양지 바른 곳이었다. 돋아난 차나무 순이 신기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심지 않을 터이고, 이리저리 땅을 조잡하게 변형시키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가 그 땅에 동화될 터이지만, 그래도 구석에 자작나무 몇 그루 심고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밭 옆의 작은 웅덩이 언덕엔 수선화도 심겠다고 했더니 그는 알지 못할 웃음을 빙그레 웃는다.

그의 집 한구석에 별채로 지어져 있는 다방은 두서너 사람 마주 앉아 있기 좋은 크기였다. 다섯 명이 마주 앉았더니 무릎도 코도 닿을 판이다. 덮으라고 이불을 꺼낸다. 무릎을 덮었다. 그 아래 발들이 이리저리 닿는다. 차씨 아저씨는 방이 콧구멍하기로 비좁기 그지없다고 민망해 한다. 하지만 나는 작아서 더 가까이 얼굴을 맞댈 수 있고, 작아서 더 무릎을 밀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친화적 공간이냐고, 더 키울 생각은 아예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대화는 찻잔이 포개질수록 더 훈훈해졌고, 그의 살아온 이야기는 곁들어질수록 농도가 더해갔다.

아주머니가 곶감, 무, 당근을 국그릇에 담아 온다. 차는 뽕잎 차로 바뀌었다. “웬 곶감? 웬 무? 웬 당근?” 속으로는 좋으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먹으니 곶감은 달았고, 베어 무니 무는 물이 철철, 싱싱했다. 당근은 상큼했고 차는 담백했다.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 차밭 보러 서울서 내려온 큰 아이와 집사람 그리고 나는 차씨 아저씨네 다방의 이 해 마지막 고객인 셈이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 늦게까지 앉아 있었으니까. 우리는 곶감, 무, 당근 차를 실컷 먹고 마셨다. 으쓱으쓱 베어 먹고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그리고 홀짝홀짝 마셨다. 먹고 마셔도 안 질렸다.

아주머니는 “촌에는 내어 놓을 게 이런 거 뿐이라예. 그래도 농약 망구 안 뿌린 거니 묵어도 괜찮은 거라예” 한다. 망구라는 말은 ‘도통’이라는 말이다. 농약을 통 안 뿌린 말하자면 무공해 식품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농약을 영 안 뿌렸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했다. 최소한 뿌렸다는 의미라고 했다. 요담부터는 다방에 주인 없어도 들어와 차 우려 마시라고 두 사람 다 거듭 당부한다. 바쁜 농사철엔 사람 시중 못 든다고 했다. 다방 무상출입 허가증 준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종이로 달라고 했더니 말로 드린단다. 말로 받은 허가증, 믿어도 되는가?

차씨네 다방, 다방으로 보다는 그 옛날식 말로 ‘타방’으로 부르고 싶은 방이었다.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이제 나는 그 타방 단골손님이다. 내 손으로 따르는 차가 차씨 아저씨 손으로 따르는 차만큼 깊은 맛이 날까만 그래도 나는 무상출입증을 얻었기로 맛이 문제가 아니다. 다방 바로 앞에는 소 마구가 있었고, 그 마구에서는 소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코에서는 연신 수증기를 내뿜으면서.

 

 

<계간수필>로 등단(2004년).

부산가톨릭대 교수. 부산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