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최순우(崔淳雨)의

 

'부석사 무량수전'

 

일시:2005년 11월 19일

장소: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15명

사회: 유경환

정리: 이은경

 

 

<본문>

 

'부석사 무량수전'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 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서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 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리 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 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 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수필> 제43호, 2006년 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작품은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최순우 선생(1916~1984)의 수필 ‘부석사 무량수전’입니다. 평생을 박물관 인으로 사셨던 최순우 선생은 문학에 대한 열정 또한 놓지 않았던 분입니다. 이 수필은 길이는 길지 않지만 그 깊이가 깊게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토론자로는 정진권·홍혜랑·허창옥·김영만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먼저 홍혜랑 선생께 작가론을 부탁드립니다.

홍혜랑 : 저는 그동안 최순우 선생을 박물관장 정도로만 알았지 수필을 잘 쓰시는지는 몰랐습니다. 이번 기회에 알게 되어서 개인적인 소득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글들은 1992년 학고재에서 출간된 『최순우 전집』 전 5권 속에 다 들어 있는데, 수필은 그 중 5권에 들어 있습니다. 특히 4권에 수록된 인터뷰 기사에서 개인적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본명이 희순(熙淳)인 최순우 선생이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문학을 포기하고 한국미술사를 선택한 데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해요. 1935년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술사학자 고유섭(高裕燮)의 감화를 받아 문학의 꿈을 접고 한국미술사 연구로 방향을 바꿨다고 합니다. 졸업 뒤 잠시 호수돈 여고에서 교편을 잡지만, 문화재에 대한 향수를 못 잊어 1945년 29세에 국립개성박물관으로 옮기게 됩니다. 또한 이때부터 5년간 문학지 <순수>의 주간을 맡아 문학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냅니다.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하여 타계할 때까지 10년을 재직하여, 모두 40여 년간 박물관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유족으로는 딸 수정 씨가 있습니다.

 

사회 :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자료들인데 그 중에서 독특한 것은 <순수>라는 문학지를 5권 내면서 주간을 했다, 미술사학를 하기 전에 먼저 문학을 했다는 사실을 홍혜랑 선생이 꼬집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엔 정진권 선생께서 작품론을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정진권 :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은 국보 제18호,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면 소재 부석사의 본전입니다. 경상북도 안동의 봉정사(鳳停寺)의 극락전(極樂殿)과 함께 우리나라 현존 목조 건물들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글은 지은이가 부석사 무량수전을 가서 보고 그 아름다움을 예찬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은 감상을 저는 다만 순론(順論)의 편의를 위하여 그 언어 용법, 진술 방식, 그리고 이 글의 주제, 이런 차례로 말해 보겠습니다. 이 글에 사용된 언어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단어 또는 구의 용법이 퍽 참신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음은 그런 몇 예입니다.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 비례의 상쾌함, 눈 맛이 시원한’ 이 가운데 ‘필요미’, ‘눈 맛’ 같은 단어는 혹 지은이의 조어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눈 맛’이란 말을 사전에 보니까 없어요. 근데 이게 참 적절하거든요. 어떻든 퍽 산뜻합니다. 이 글은 또 예찬하는 글인 만큼 가령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무치는 그리움,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이처럼 흥분하는 언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흥분은 오히려 건조해지기 쉬운 글, 이것은 우리가 수필로 읽지마는 사실 이 글의 목적은 설명문입니다. 이것을 촉촉하게 축여주는 효과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노라면 무량수전이 그냥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옴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말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무량수전… 나를 반기고’ 또는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거드름이 없다’, ‘그리움에 지친’ 것은 물론 무량수전이 아니라 지은이 자신이겠지요. 어떻든 이 글은 사람 아닌 무량수전을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의인화시키고 있는데요, 이는 무량수전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 또는 친근감, 그런 것이 원인이 돼서 이런 글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음은 진술 방식입니다. 이 글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고자 해요. 따라서 이 글에 사용된 진술 방식은 설명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본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독자들은 이런 설명을 통하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 우리 조상들의 안목 등등, 그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설명은 원칙적으로 메마른 진술 방식입니다. 설명은 원칙적으로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말, 무슨 함축적인 언어라든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라든지 이런 것은 거부하는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건조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위에서 잠깐 말한 약간의 흥분, 정서적인 언어,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 이 글이 수필로 읽히는 까닭이겠지요.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와 ‘이 부석사 석축들을…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그 모습들이 환히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아주 시각적인 묘사가 탁월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은 주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글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사실은 이 글인데, 첫 문단에서 지은이는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라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그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움은 어디서 오는지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이런 뜻일 것 같아요.

이것을 잘 읽어보면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것을 두 가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건축물을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 사이의 조화입니다. 그것들은 불필요한 것은 다 배제하고 모두가 상쾌한 비례 속에 놓여 있습니다. 참 멋진 조화입니다.

둘째는 건축물과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건축물 속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양쪽이 다 서로 서로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그런 관계 속에 서 있습니다.

무량수전에 대한 지은이의 애정, 그리고 우리 조상에 대한 지은이의 찬탄이 제 가슴 속으로 전이되어 옴을 느꼈습니다.

 

사회 : 고맙습니다. 저는 정진권 선생이 일급 수필가이시니까 정이 송진처럼 점액질로 뚝뚝 떨어지는 정감으로 이해하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시네요. 국어 학자답게 차디 찬 시각으로 분석하셨습니다.

김병권 :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찰에 대한 해설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아까 정진권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수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서두가 약간 지루하고 호흡이 긴 것 같지만 아주 끈끈한 정감을 느끼게 하는 좋은 표현이었습니다. 역사 속의 우리 조상들의 ‘얼’이 어떻게 배어나오고, 그것을 후손들이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나름대로 생각했습니다.

김진식 : 부석사를 처음 창건한 역사적 배경을 조금 언급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은 의상대사가 문수보살의 성지인 중국의 오대산 청량사에 가서 거기의 ‘흘용석(일명 용번석)’을 모델로 해서 부석사를 만들었다는 그런 얘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불교적인 일화지만 조금 곁들여서 썼으면 독자들이 흥미를 갖지 않았겠느냐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수필로서도 몇 개의 문장에 서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무엇인가 조화랄까 그런 것이 별로 닿지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좋은 문학적 자질을 갖고서 조금 더 밀도 있게 썼으면 좋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허세욱 : 김진식 선생의 말씀에 이어서 저도 그런 느낌이 많은데, 이런 글의 형체를 보고 우리 한문 수필이나 옛날의 중국 수필은 기(記)라고 그래요. 기의 전형적인 서술 방식은 백묘(白描)지요.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 백묘라고 하는 건 멀리서부터 망원경적인 묘사로부터 점점 내려와서 현미경적인 묘사로 좁아지는 것이에요. 최순우 선생은 이 두 가지를 그대로 다 했습니다. 즉 거시에서 미시까지 다 그렸어요.

그런데 과거의 우리 기는 사실 자연 찬미나 자연 서술에 그치지 않고 기를 통해서 자기의 주제와 사상을 병행했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가령 구양수의 ‘취옹정기(醉翁亭記)’는 취옹정이라는 정자 하나를 그린 거예요. 거기서 이 사람은 뭘 토로했는가 하면, ‘…취옹지의(醉翁之意)는 부재주(不在酒)라…….’ 술 먹는 늙은이의 내 목적은 술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유명한 말을 만들어 낸거죠. 가령 범중엄의 ‘악양루기’ 같은 것은 악양루를 보고 쓴 것인데, 그것도 이렇게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백묘를 전부 끝내고 나서, ‘…선천하지우이우(先天下之憂而憂)하고, 후천하지낙이낙(後天下之樂而樂)여라…….’ 나는 온 세상 사람의 근심을 먼저 한 뒤에 내 개인의 근심을 하고, 온 천하 사람들이 다 즐긴 뒤에 내 개인을 즐긴다. 이런 유명한 말을 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주제적인 것이 보이지 않고, 자연 찬미에 그쳐서 퍽 유감스럽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자연 찬미치고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뭐냐 하면 처음에 들어갈 때 고즈넉한 분위기로 돌아가서 절의 사물들을 인격화시켰다는거죠. 대단히 높은 수법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제를 말한다면 천인(天人)의 조화, 즉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순희 : 저는 지난 봄에 무량수전에 다녀왔는데 워낙 최순우 선생의 글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분의 눈으로 보려고 애썼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느슨하고 허술하다’고 느껴지는 면이 사실 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고졸한 품격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또 사용하는 어휘가 지극한 애정에서 우러나온 것을 느끼게 돼요. 지난번에 합평을 한 김원용 선생의 경우 똑같이 박물관장을 했지만 성격이 열정적이고 뜨거운 것에 비해, 최선생의 글은 상당히 여리면서 분위기가 있고 서정적이고 나직나직합니다.

이 글도 굉장히 품격이 있어서 함부로 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과 매력이 있습니다. 이 글뿐만 아니라 다른 글도 이와 비슷하게 허술하고 느슨한 느낌이 있는데, 오히려 그런 게 여백의 미를 더 갖게 합니다.

변해명 : ‘멀찍이서 바라봐도… 거드름이 없다.’ 그리고는 바로 그 아래에 ‘…그 큰 이름은 의상대사이다’라고 했어요. 의상대사가 중심에 서고 나머지는 모두 배경이 되었으면, 우리가 절을 얘기할 때의 깊은 의미와 불교의 정신 같은 것이 드러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그런 것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라고 봤거든요.

또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짓고 싶다’라고 했는데, 그 시대에 살았던 한국인의 넋이라든가 아니면 불교를 통해서 한국적인 어떤 넋의 의미 같은 것이 좀더 드러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봉진 : 전 이 글이 수필로서는 충분한 작품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문적인 박물관장으로서 여러 가지 문화재에 대한 지식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은 나타나 있지만, 자기가 표현이 되어야 수필로서 하나의 완성품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내가 느낀 것을 만인에게 느끼게 하는 이러한 번득이는 혜안은 있으나, 자기 이야기가 없어서 이건 수필로서는 조금 모자랍니다.

가령 이런 것을 수필의 본보기로 생각한다면 저는 앞으로는 수필을 못 쓸 거 같습니다. 아까 정진권 선생도 말씀하셨지만 설명문으로는 격조가 있고 정감에도 호소하는 좋은 글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수필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수필로서는 길이도 너무 짧습니다. 요새 짧은 수필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아무리 길이에 상관없다고 해도 우선 ‘쓴 사람이 보이는 글’이 되어야 하는데, 들어가서 얘기만 하고 쓱 사라져버렸습니다. 완성된 수필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최순희 : 글을 쓴 분이 잘 안 드러나 있다고 하는데, 전 전체적으로 오히려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표현도 건조하다기보다는 이분의 마음이 많이 들어 있어요. 단청을 안 해서 퇴색한 것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이라고 묘사한 것은 기교를 부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유혜자 : 수필에 ‘나’가 너무 생략이 된 것 같아요. 언어 사용에 있어서는 참신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조금 전문적이고 품격 있게 쓰다보니까, 요즘 같은 천연색 세상에서는 시각적으로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할 것 같아요. 가령 위치 설명 같은 것도 부연했으면 합니다. 이분 글 솜씨는 대단한데,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많은 것을 짧은 글에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호소력이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문장 호흡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응백 : 최순우씨라면 이런 글 쓸 수 있습니다. 무량수전의 짜임새가 그 중심입니다. 무량수전의 앞에서 보이는 전경이 주主예요. 무량수전에 관계된 것을 박물관장으로서는 그 설명은 다한 거죠. 몇 번 가 보았는데 내가 느낀 것은, 무량수전 앞에 전개된 경치`―`산 너머 산이 아주 좋고 자리를 잘 잡았다고 감탄을 한 그 부분 묘사가 참 잘됐습니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쪽에서 퍼져나가는 동시에 그쪽에서 무량수전을 향해 온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단 말이죠. 그래서 이게 수필로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대로 묘사가 됐습니다. 아까 허세욱 선생이 기記로서 백묘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눈에 띄는 대로 그대로 백묘를 한 것은 잘 된 겁니다. 박물관장으로서 느낀 안목을 그대로 솔직하게 썼지, 수필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구비해서 쓰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쓴 겁니다.

 

사회 : 이분의 글에서 저는 이런 것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그것을 한 고고학자의 이 글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가. 느낌은 누구나 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요. 이분은 자기다운 방법론을 제시한 그런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혜랑 : 이분을 보니 한 사람의 생애라는 것이 참 역설적이고 아이러니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문학, 그것도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고유섭 선생의 영향을 받아 문학을 접고 미술사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한국미에 대한 독보적인 글을 쓸 수 있었지, 남들이 다 쓰는 소설을 썼다면 지금과 같은 최순우는 없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분이 한국의 미에 대해서 갖고 있는 안목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박물관장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수필 작품들을 토해낸 것이 수필작품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한국의 미를 퍼트리기 위해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분에게 더 이상의 문학 작품을 요구하기보다는 미술사가로서 한국미를 퍼트린 일종의 ‘문화계몽가’라고 본다면, 최순우라는 개인에 상당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앞에서 말한 부족함과 아쉬움이 커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회 : 정선생 표정이 한 말씀 더 하시려는 것 같은데…….

정진권 : 설명을 하려는 것과 감동을 주려는 것과는 서로 문체가 다릅니다. 이 글은 이 두 가지를 함께 하려다 보니까 수필가의 입장에서 보면 부족하다고 보여지고, 사찰연구 전문가로 보면 이게 설명문인가 수필이지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비전문 일반 독자에게는 ‘수필 같은 설명문’입니다. 오히려 훨씬 더 효과적인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 오늘 지정토론자로 대구에서 올라오신 허창옥 선생께서 배심원 자격으로 말씀해 주십시오.(웃음)

허창옥 : 이 작품은 답사기로 읽는 시각과 수필로 읽는 시각이 달랐어요. 유홍준씨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하나로 족하다. 더 이상 쓸 게 없다”라고 했는데, 아마 답사기로 충분하다는 뜻이겠지요. 또 혹자는 “이 글이 너무 감상적이다, 아카데믹 하지 못하다”라고 평을 했지만,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저도 거기에 동감합니다.

미술사학자의 미학적 관점으로 보면 아카데믹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수필로서는 오히려 그런 점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수필의 맛이 떨어지니까요.

제목을 살펴보면 답사기로 썼기에 ‘무석사 무량수전’이었고, 수필로서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답사기와 수필로 묘사한 부분을 두 가지로 나누어 봤습니다.

‘무량수전은 …이를 데가 없다’와 같은 부분은 답사기적인 묘사이지만, ‘무량수전 앞 …마련된 듯싶어진다’의 부분은 주관적 정서의 부분을 나타낸 것으로 수필적 묘사가 강합니다.

구성으로는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이 수필적이었고 나머지 두 단락은 설명 위주의 답사기였습니다. 한 편의 수필에 작가의 메시지, 삶, 생각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개에서 끝나고 결말 부분은 생략되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이분은 처음부터 수필로 쓸 의도가 없었다고 생각되는데요. 문장에 주관적 정서가 있어서 문학수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이나 ‘희한함’보다 더 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데, 표현이 아주 극적입니다.

 

사회 : 또 다른 분은?

김영만 : ‘바둑 이야기’가 저는 더 좋았습니다. 선생의 아주 순수한 작품과 비교할 때 이것은 전공에 관한 글입니다. 미술 산책의 한 섹터 같아요. 우리가 작품의 성격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전공에 관한 글은 후학들이 대들고, 지적하고, 논의를 거치게 되죠.

학고재에서 최순우 전집 5권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할 때, 선생의 대표 작품으로 유홍준씨가 이 작품을 택해서 읽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는 최선생에 대한 ‘비판적이고 다른 안목’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어요.

첫째로는 이분은 한국의 미를 감상하는데 양식 중심에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미술품을 애상조로 슬픔, 한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 선생을 멀리 하면서도 결국은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였습니다.

셋째는 이게 설명문이면 깊이 천착해 들어가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흡하다. 과학적 아카데미가 부족했다는 말이죠.

거기에 대해 유홍준씨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글이 이 글을 능가했느냐”는 항변조의 얘기를 편 그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론 주제도 이런 전공에 관한 수필은 어떻게 쓰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이분의 문장력을 살펴보면 참 문장가이십니다. 특히 수사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예를 들어, 형용사를 겹쳐 써도 천격이 아니고 품격이 있습니다. 명사의 의미 영역을 넓혀주고, 리듬을 맞추는 문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이 작품의 성격 자체가 순수 수필과는 성격을 달리 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김훈씨가 무량수전을 보고 쓴 것이 있어요. 최순우 선생은 안양문에 올랐을 때 경치로만 봤는데, 김훈은 말 달리는 것처럼 호국기상으로 봤어요. 다른 사람들의 글도 해석이 다 달라요. 아, 미술품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사회 : 최순우 선생의 다른 글이 많은데 이 무량수전을 고른 이유가 있습니다. 부석사가 남아 있는 현존 목조 건물로는 800년 이상이 된 가장 오래 된 건축물입니다. 13세기 본래의 모습을 지금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거기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오래 된 목조 건물이라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 글이 검토하기에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토론을 준비하고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