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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야기

 

                                                                              李應百

내가 일곱살 때라고 기억이 된다. 고향집 사랑에서 선고(先考)께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시면서 피우시는 장죽 끝 대통목에서 보글보글 끓는 댓진 소리와 입과 코로 뿜어 나오는 연기가 하도 맛깔스러워 보여, 희연(囍煙) 봉지에서 담배를 슬쩍 덜어 신문지로 말아 안방 뒷꽁무니에서 불을 붙여 담배를 피워보았다. 그런데 맛이 얼마나 쓰던지 곧장 동당이치고 담배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을 때, 회의 같은 때 나누어주는 궐련(卷煙)을 호기심으로 뻐끔 담배로 피기도 했다. 특히 글을 쓸 때 입이 심심해 담배에 불을 붙여 피워보기도 했으나 인이 박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여느 때 안 피워도 전연 입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이 피우면 덩달아 피우려는 연동(連動) 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스스로는 담배 맛을 모르면서도 앞의 사람이 피워 펼쳐진 연기가 구수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선고께서 담배를 몹시 즐기시어, 일제 암흑기 나의 사범학교 시절 가끔 서울에 올라오시어 내 방에 드시면, 방은 금방 연막으로 뒤덮여 흡사 너구리 사냥굴을 방불케 돼버린다. 지금 같으면 통기(通氣) 구멍이라도 낼 것이련만 그때는 그러한 지혜도 없어 그냥 견뎠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벌써 20년은 되었나 보다. 교육 동지 남녀 20여 명이 남태평양 관광을 갔는데, 같은 방의 단짝이 지독한 애연가였다. 내가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담배를 필 때에는 나가서 피고 들어오곤 했다. 나 때문에 불편을 끼쳐 미안감이 들기도 했으나, 나보다 약간 연하인 그는 예절을 깍듯이 지켰다. 그런데 담배 피는 이들의 습관으로 식후의 한 대가 기가 막히듯, 잠자리 들기 전 한 대가 그것 못지않게 잠이 포근히 오게 하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침상에 들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피고 들어오기는 번거로운 듯, 이불에 들자 맛있는 한 대를 피는 것이다. 그러면 삽시간에 방 공기가 탁해지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 당사자도 분명 폐가 된다는 것을 잘 알겠지만 피고 싶은 욕망에 눈 딱 감고 결례를 하는 그 딱한 심정을 헤아리고, 내뿜는 담배 연기를 그냥 아무 소리 못하고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선고가 피우시어 방안이 고대 너구리 사냥 굴이 이룩됐던 일을 회상하면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 단짝이 40여 년 전 고교 제자의 오빠라는 것을 알고, 즐거운 추억으로 그것을 회고한 일이 있다.

70년대 전반 어느 여름방학에 안양 골짜기 공기 좋은 곳에 별장을 빌려 논문을 쓸 때 일이다. 나를 돕는 제자를 위해 골짜기 아래 가게로 가 담배를 살 때, 담뱃값을 모르는 나를 주인이 혹 간첩이 아닌가 수상히 여겨 아래위를 훑어보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나의 뻐끔 담배가 깨끗이 청산된 계기는 이러하다. 교수 시절 어느 기관 책임 보직을 맡았을 때, 중진들 가운데 담배를 피는 이가 없었다.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공초(公草)로 뻐끔거리던 그 타성(惰性)도 그들과의 보조를 맞추느라 아예 깨끗이 청산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 주머니 속은 그 전에도 그랬지만, 더욱 깨끗하게 되었다.

그런데 담배와의 인연을 끊은 뒤 찾아오는 손님에게 객초(客草)를 내는 것을 자칫 잊는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아예 재떨이를 치워버려 재떨이를 요구하는 손님에게는 그것을 갖다드리라고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하기도 했다. 손님 중에는 그러한 절차를 번거롭게 여겨 담배 피우는 것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는 듯했다.

담배와 폐암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뼈아픈 경험이 있다. 수필 문학의 중진으로 좋은 수필집을 몇 권씩 낸 김모 회장과 유(柳)모 교수의 경우다. 둘은 선후배이며 나와는 사제 관계로 수필계서 기대와 사랑을 받았었는데, 하루에 몇 갑씩 담뱃갑을 비우는 골초로 결국은 폐암으로 아쉽게 세상을 뜨는 허무를 저질렀다.

다른 면에서 산불의 많은 원인이 불을 완전히 끄지 않은 채 기분대로 아무데나 꽁초를 튀겨 던지는 나쁜 습관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술은 흔히 할아버지 앞에서 배우는 예가 많으므로 절차와 예절을 제대로 익힐 수 있지만, 담배는 몰래 배우므로 바른 절차와 금기(禁忌) 사항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하나의 도락(道樂)으로 삼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김모 교수는 희귀하게 생긴 곰방대를 눈에 띄는 대로 수집하고 쌈지며 휴대용 재떨이, 담뱃불을 누르는 기구, 댓진 후비개 등 부속 기구를 최고급으로 모아 보아란 듯이 자랑하기도 했다.

담배를 끊기가 몹시 어려운 모양으로 ‘연노설(煙奴說)’이라는 수필도 나왔다. 요새는 금연(禁煙)의 때와 장소가 늘어 금연 표지(標識)가 많이 붙어 애연가들의 입지立地에 제한이 가해졌다. 금연에 대한 강권(强勸) 실례가 있다. 얼마 전 미수(米壽)가 넘도록 건강에 자신하던 분이 아침 5시에 말없이 운명(殞命)했는데, 그분 생존 시에 담배 피는 이를 대하면 나도 한 대 달라고 청해 한 개를 뽑아드리면, 갑째 달라고 해 갑에 물을 부으면서 “앞으로 담배를 끊으시오”라 한 것은 유명한 일화(逸話)다. 상대는 90 가까운 분의 위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하고 멀쑥히 물러나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