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심, 39세

 

                                                                             김희재

살다보면 아주 가까이 지냈던 사람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일도 있지만, 그저 이름밖에 몰랐던 사람이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병원 입원실이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 본 날부터 헤어질 때까지 늘 누워만 있었다. 팔이나 손에 있는 혈관은 이미 다 죽어버려서 목에 있는 대정맥을 뚫어 거기로 굵은 관을 심어놓고 모든 치료제를 주입하고 있었다. 이미 팔다리에 있던 근육들이 많이 빠져 나가서 날씬하다는 표현보다는 앙상하다고 해야 알맞은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그녀의 얼굴은 기억에 남을 만치 예뻤다. 특히 깊고 그윽한 그 눈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화장기라곤 전혀 없는 여자의 얼굴이 그렇게도 윤곽이 또렷하고 피부가 매끈하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만큼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장효심, 39세, F.’

그녀의 침대 발치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고 그녀의 이름과 나이를 알았다. 6인실의 문간에 놓인 침상에 누워 항상 열려 있는 문쪽을 향해 누워서 복도를 오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그녀는 말기 암 환자였다. 췌장암 수술을 하려고 개복을 해보니 암세포가 온 장기에 다 퍼져서 손도 대지 못하고 그저 만만한 자궁만 적출을 해내고 덮었다는 사실은 그 병동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공지사항이었다.

가만히 누워 지내지만 그녀는 병동의 뉴스메이커였다. 처음 입원한 사람이 병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속에 그녀의 이야기가 있었다. 주치의가 아예 포기를 했다느니, 그저 진통제나 맞지 뾰족한 수가 없다느니, 너무 아파하기 때문에 고통을 줄이기 위해 개복을 하고 온몸의 신경을 다 잘라 버렸다느니, 암만해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느니…….

 

그녀의 방에서 내 방까지 오려면 문을 10개도 더 지나야 했다. 나는 복도의 왼쪽 끝에서 두 번째 방이었고, 그녀는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방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얼마나 묘한지 암 환자들 사이에도 동료와 경쟁자가 있었다. 대개 대장암, 위암, 유방암, 직장암 등 같은 부위의 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회복기 환자들이 자기와 같은 부위를 수술한 환자들의 새끼 선생 노릇을 하며 누가 얼마나 회복이 빠른지 진단도 하고 평가도 하며 병동의 무료한 시간들을 메웠다.

정밀 조직검사 결과 초기로 판명이 되면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2기가 넘어가 항암 치료를 꼭 받아야 하면 위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병동의 심리였다. 같은 날 수술을 한 환자들끼리는 누가 빨리 상처가 아물고 있는지, 누가 빨리 거동을 할 수 있는지 보이지 않게 은근히 경쟁을 하였다. 몸에 주렁주렁 달아놓았던 호스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도 진도가 빠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환자들 마음이었다.

 

아침마다 우리 방에 마실 오는 영은씨는 아주 상태가 양호한 유방암 초기 환자였다. 유방에 있는 멍울만 제거하는 수술을 하러 들어간 그녀가 마취에서 깨어보니 한쪽 유방이 다 베어져 없더라는 이야기도 병동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주치의가 남편과 상의해서 병신을 만들어버렸는데, 다행히도 조직검사 결과가 좋아서 항암주사는 따로 맞지 않아도 된다고 어지간히 떠들고 다닌 덕이었다. 영은씨 덕분에 나도 병동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언니도 되고 동생도 되었다.

 

효심이는 내게 언니라고 불렀다. 6인실 문간에 누워서 그 방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말참견도 하고 환하게 웃음을 보내기도 하는 그녀랑 친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찾아갈 적마다 그녀는 혼자 누워 있었다. 간병인도 따로 두지 않고 딱히 임자가 되어 돌보는 가족도 없는 듯했다. 빨대를 박아서 먹는 곽에 든 두유만 마실 뿐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다. 그 방 사람들 말로는 남편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얼굴만 슬쩍 비치고 가고 낮 시간에 친정 동생이 와서 두유랑 휴지 등을 챙겨주고 간다고 했다. 문병 오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도 그녀는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밝았다.

어느 날, 우연히 그 방을 지나치는데 째지게 높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 여기 병원이야. 아니… 내가 아픈 게 아니구… 우리 언니 입원했잖아. 응. 응. 췌장암인데 열어보니까 다 번져서 수술도 못했어. 심란하지 뭐. 아마 오래 못 갈거야. 뭐? 정말? 킬킬킬킬… 그래. 알았어. 내가 이따가 전화할게. 끊어…….”

복도를 지나치던 내 귀에 또렷이 들린 그 목소리 주인은 효심이 동생이었다. 그녀는 효심이 면전에 선 채로 문간에서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소리를 저렇게 해도 되는 건지…….

 

며칠 후에 내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작별인사를 하러 효심이를 보러갔다. 그녀도 내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지 얼굴 가득 서운함과 부러움을 담고 있었다.

“언니는 좋겠다. 수술도 하고 퇴원도 하고… 나는 수술도 못했는데…….”

나는 도무지 그녀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효심아, 세상엔 기적이 많다는 거 알지?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거 아냐. 하느님이 고치시는 거지. 그러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꼭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가져. 알았지? 나는 당분간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병원에 올 때마다 너를 보러 올게. 어디 가지 말고 꼭 기다려야 해.”

내 궁색한 작별의 말에 그녀의 눈이 빛났다. 수없이 고맙다는 말을 되뇌이며 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죽어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려 했다. 그녀 앞에서는 내가 어떤 불평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내 발로 걸어다니기도 하고, 집에도 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게 남은 투병의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비하랴.

 

퇴원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나는 한동안 그녀를 보러 올라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기는 가도 입원실에 올라갈 마음이 선뜻 들지 않았다. 문병객이 되기엔 아직 내가 너무 환자 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퇴원하면서 해놓은 약속이 있어서 갔다가 그냥 올 때면 영 뒤가 켕기고 찝찝했다.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났다. 아무래도 빈말을 한 것 같아서 못내 편치 않은 내 속도 달랠 겸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서 올라갔더니, 그녀의 침대에는 이미 다른 사람의 명찰이 달려 있었다.

방을 옮겼나 싶어서 간호사 스테이션에 걸린 칠판에 적혀 있는 입원환자 명단을 샅샅이 훑어보아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병원을 옮겼거나 다 끝났거나 둘 중의 하나려니 생각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리는데 누가 내 어깨를 뒤에서 확~ 감싸안았다. 깜짝 놀라서 보니 영은씨였다. 약을 받으러 왔다가 입원실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는 그녀에게 효심이의 안부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효심이요? 버얼써 죽었어요. 아마 근 한 달이 다 되어 갈 거예요. 죽고 나서 병원이 한바탕 시끄러웠대요. 생전 코빼기도 안 보이던 남편이랑 친정식구들이 대판 싸웠다지 아마. 글세… 효심이가 들어놓은 보험금이 어마어마 하더래요. 그 돈을 서로 자기들 거라고… 초상은 칠 생각도 않고 그렇게 난리를 쳤다네. 그 놈의 돈이 뭔지…….”

그녀는 아무 감정도 섞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내 가슴은 예리한 날에 베이는 것같이 아렸다.

황급히 그녀와 헤어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우느냐고 물으면 딱히 한 마디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것은 단순히 죽은 이를 추모하는 눈물은 아니었다. 그 눈물을 타고 효심이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와 자리를 잡았나 보다. 이렇게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여전히 내 마음이 아픈 것을 보니…….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제1회 화랑문예전 수필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