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가올 나날을 위하여

 

                                                                                       박현정

구약성서에서 왕위에 대한 불안감으로 두통에 시달리던 사울왕은 정적 다윗의 수금 연주로 위로받으며 잠시 두통에서 놓여난다. 그리스 신화 속의 오르페우스는 연주와 노래로 저승세계까지 감동시켜 음악의 힘을 보여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속성이 나타난 이야기로 이해하는데, 어떤 분야이든 예술에는 그것에 빠져든 이의 마음을 만져주는 기능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아직 대학생이던 때 서울 어느 작은 집에 살던 언니네를 방문하곤 했다. 언니네의 복도식 아파트 옆집에는 한 초등학생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첼로 연주를 잘했다. 그 집과 언니네가 친했는지 아이는 어린 조카들과 잘 어울렸고, 언젠가 내 가까운 친척의 결혼식 때는 축가를 연주해 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삶에 전전긍긍해 할 때 예전에 언니네 옆집 살던 그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어느새 관현악을 전공하는 대학 졸업반의 숙녀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녀를 통해 처음 첼로를 배우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교내 합창대회를 위해 연습하는데 선생님께 좀 심한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노래할 때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억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음악에 둔감한 나는 그 뒤로 음악에서 더 멀어진 것만 같다.

나이 들어 악기를 배우는 이들은 대개 오래 전부터 음악에 남다른 친화력이 있거나, 애틋한 추억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와 달리 내 경우에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랬으면서도 첼로를 시작한 것은 무엇이라도 심란한 마음을 덜어 줄 것이 필요했고, 마침 그때 음악과 함께 성장한 그 아이가 보인 것이다.

첼로를 배우기로 마음을 정한 그 해 1월의 어느 저녁에, 예술의 전당 앞 거리에 있는 여러 악기점을 돌아다닌 끝에 연습용 악기를 하나 샀다. 그 악기를 어깨에 메고 정말 무겁다고 느끼며, 이제라도 그만두면 되는데 어떡할까 생각하며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해보지 뭐, 안 되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첼로는 현을 긋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음악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거나, 내가 모르므로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나 관심을 기울이면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분야라는 받아들임이 왔다. 세상의 다른 여러 일들처럼 기악도 서두르지 말고, 비교하거나 중단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음악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임을 짐작하게도 되었다.

그런 이해와 함께 첼로를 배우는 시간이 쌓일수록 내 안에서 다른 욕구가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고, 빈 시간을 위로삼아 하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남들과 같이 어울려서 합주해야 하는 필요도 당연하게 다가온 것이다.

아마추어들이 모여 취미로 하는 합주반에 들어가서는 그런대로 적응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러다 전공하는 이들이 섞여 있고, 초견으로도 무리 없이 연주해야 하는 반에 들어가서는 좀 당황했다. 들어보지 못한 낯선 곡의 악보를 처음 보고 연주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전공자나 어린 날부터 악기 연주에 익숙한 이들과 나를 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과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가 소외감으로 확대되어 나를 괴롭혔다. 내가 꼭 물가를 떠나 산에서 토끼와 경주를 해야 하는 안쓰러운 거북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 연주 모임에서 세월을 돌고 돌아 초등학교 시절 나를 긴장시키던 바로 그 교실에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린 나를 괴롭히던 열등감에서 멀리 도망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노력하고 기대한 만큼 연주가 따라주지 않거나 합주 모임에서 내가 처진다는 생각에 속상할 때면, 생각지도 않은 첼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한탄스럽기도 하다. 지금쯤이면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느긋해 해야 할 시기에 그러지는 못할 망정 아직도 낯선 세상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이다.

적막한 생활을 위안하는 샘물이었다가, 어느 때는 나를 당황케 하는 함정이 되어 얽히기도 하는 첼로는 이 두 개의 사슬로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가. 애증이 함께 하지 않는 대상은 진짜가 될 수 없다는 듯이.

오래 전 언니네 집을 오가며 보았던 어린 첼로 연주자는 이야기 속의 복선처럼 내게 마음을 준비시키는 통고 같은 것이었을까. 지금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너도 저것이 필요할 때가 올 거라고. 그때 내게 음악이 필요하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완벽해져서 어른이 되면 자신과 주변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할 거라 생각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그 기대와 달리 나는 완벽이 아닌 모범적인 어른에도 미치지 못한 채 여기에 있다. 어떤 자라지 않는 아이가 내 안에 남아서 나를 이렇게 터덕거리게 하는가.

그럼에도 이제 지나치게 절망하지 않기로 나와 타협하는 마음의 여유는 시간이 베푸는 작은 선의인가 싶다. 세월과 경험이 내 마음을 둥글게 마모시켜 길 잃음 속에서도 빛나는 뭔가를 발견하고는, 그 속에서 잠시 위로를 받고서 헤매고 찾아가는 길 자체가 인생이라고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계간 수필>로 등단(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