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카데미 제9회 강좌 요지]

 

프랑스 현대수필

─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

 

                                                                                  김화영

프랑스의 현대문학 속에서 우리의 ‘수필’에 해당되는 글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몽테뉴로부터 이어 내려온 이른바 ‘에세essai’는 그래도 우리의 ‘수필’에 가장 가까운 글의 형식이라고 하겠지만, 양식과 어조와 길이가 다양하고 자유로운 산문을 지칭하는 ‘에세’의 특징을 간단히 몇 마디로 정의하거나 문화적 감성적 환경이 판이한 속에서 생겨난 우리네 ‘수필’과의 차이나 닮은 점을 밝혀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다만 에세나 수필은 다같이 글을 쓰는 사람의 겸손한 태도로 인하여 시나 소설과 쉽게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은 흔히 문인, 작가로서의 직업적 전문성을 사양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초보적 아마추어가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듯한 이 겸손한 글은 우연히 뮤즈의 정원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일개 범부의 목적 없는 산책의 인상을 준다. 따라서 그는 언어의 불가피한 논리성과 통일성의 구속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산책자 특유의 자유와 우연과 가벼운 일탈, 그리고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요구한다. 박식함, 진지함의 정신, 체계 등에 대한 거부는 에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수필 혹은 에세를 쓰는 사람의 이 겸허함 속에는 흔히 그의 문학의 출발점 혹은 미래의 본질적인 싹이 감추어져 있기 쉽다.

 

20세기 프랑스 문학 속에서 가장 빛나는 산문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의 『섬』, 그리고 알베르 카뮈의 『안과 겉』, 『결혼, 여름』을 꼽겠다. 공교롭게도 지드와 그르니에는 둘 다 카뮈에게 문학의 세계에 눈뜨게 한 스승들이다. 이 점은 『섬』에 붙인 카뮈의 서문에 잘 드러나 있다.

“알제리에서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내가 그 책에서 받은 충격, 그 책이 내게, 그리고 나의 많은 친구들에게 끼친 영향으로 말한다면 오직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 이외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에세의 작자들은 한결같이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친 문학인들이다. 좀 과장하여 말한다면 그때 이후 프랑스 문학에서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은 성격의 에세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 미문의 비극적 경험은 한가한 ‘산책’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한편 대학교육의 일반화와 산업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인문 사회과학의 체계성과 전문성에 대한 열정과 경직된 제도, 그리고 소비사회 특유의 속도와 쾌락의 추구가 우연과 느긋한 일탈에서 고유한 기쁨을 얻는 에세의 입지를 좁혀놓았다는데서 그 원인의 일단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 폭넓은 인문적 성찰과 멀고 가까운 곳으로 한가한 시선을 던지며 몽상에 잠기거나 산책하는 교양인의 시대는 끝나버린 것 같다.

 

카뮈는 후일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같은 분명한 주제와 체계를 갖춘 철학적 에세 들도 발표하게 되지만,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장르에 속하는 산문의 압권은 역시 『안과 겉』과 『결혼, 여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안과 겉』은 그가 알베르 카뮈라는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여 낸 최초의 책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문학에 입문한 것이다. 1935년, 즉 22세 때 쓰기 시작한 다섯 편의 글들을 묶은 이 책은 1937년 알제리의 신생 에드몽 샤를로 출판사가 펴낸 『지중해 총서』의 두 번째 책으로 초판 350부가 발행되었다. 이 책의 중요성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58년, 파리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재판을 내면서 카뮈가 마치 스스로의 문학적 생애를 결산하는 듯한(카뮈는 이 재판을 낸 지 2년 뒤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어조로 붙인 감동적 ‘서문’ 속에 충분히 강조되어 있다.

“예술가는 저마다 마음 속 깊이, 일생 동안 그의 됨됨이와 그가 말하는 것에 자양을 공급해 주는 유일한 원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원천이 『안과 겉』 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세계의 추억이 지금도 모든 예술가를 위협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위험, 즉 원한과 만족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가난은 나로 하여금 태양 아래서라면 그리고 역사 속에서라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태양은 나에게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특히 작가의 문학적 이력의 출발점에 놓인 이 책의 제목 『안과 겉』은 삶과 세계의 양면을 동시에 인식하고 함께 끌어안는 카뮈의 문학 전체의 성격과 지향성을 처음부터 뚜렷하게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위의 짤막한 인용문 속에 시각과 차원을 바꾸어가며 적시된 ‘가난과 빛’, ‘원한과 만족’, ‘태양과 역사’ 등은 그 양면, 대립, 대칭, 모순, 균형의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늙음, 병, 죽음, 고독, 침묵, 여행, 낯설게 하기, 그리고 찬란한 빛과 삶의 기쁨과 같은 카뮈 특유의 이미지나 주제를 중심으로 한 다섯 편의 산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1) ‘아이러니’는 젊은 딸과 그 친구들이 영화관에 가기 위하여 집에 혼자 버려둔 반신불수의 노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고독한 늙은이, 독선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할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인 늙음과 죽음이 삶의 ‘안’이라면 할머니의 장례식 날 ‘젖은 입술처럼 빛을 받아 진동하는 항만 위로 투명하게 비치는’ 태양은 ‘겉’이다.

2) 제목부터 이미 또 하나의 안과 겉을 암시하는 ‘긍정과 부정의 사이’는 이 산문집 가운데서도 가장 감동적인 글이다. 그 글의 중심에는 어머니의 침묵이 있다. ‘불구여서 생각을 온전하게 하지 못하는’ 어머니, ‘사랑을 자식들에게 나타내 보인 적이 없는’ 어머니의 ‘동물적인 침묵’, ‘그 기이한 어머니의 무관심!’ 카뮈는 후일 이 책의 ‘서문’에서 “하나의 언어를 구축하고 신화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그토록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어느 날엔가 『안과 겉』을 다시 쓰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술회하면서 “한 어머니의 저 탄복할 말한 침묵, 그리고 그 침묵에 어울릴 수 있는 정의 혹은 사랑을 찾으려는 한 사나이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더 그 작품의 중심으로 삼아 보는 것을” 꿈꾼다.

카뮈의 문학은 어느 면에서 어머니의 ‘탄복할 만한 침묵’에 형식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의 문학이 주는 감동은 바로 그 침묵과 작가가 그 침묵으로부터 힘겹게 전취하는 ‘말’ 사이의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긴장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대표작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된다. 오늘 엄마의 영원한 ‘침묵’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견고한 침묵 앞에서의 돌연 느끼는 삶의 낯설음… 카뮈의 핵심적인 주제 ‘부조리’가 멀지 않았다.

3) 『영혼 속의 죽음』과 『삶에의 사랑』은 둘 다 젊은 시절의 ‘여행’ 경험이 주는 낯설음과 거기서 발견한 세계의 빛과 어둠에 관한 이야기다. 『영혼 속의 죽음』은 음울한 중부 유럽 프라하(어두운 체코 땅은 후일 희곡 ‘오해’의 무대가 된다)에서 혼자 체류하는 동안 맞닥뜨린 생의 부조리를 그린다. 당시 카뮈는 여행 중에 첫 결혼의 파국을 맞았다. 카뮈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부조리가 본질적으로 일종의 ‘이혼’이라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언어도 풍습도 생경한 도시에서 그는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돈을 지닌 채 혼자 버려진다. 거기서 발견한 죽음의 얼굴, 그러나 마침내 친구들이 찾아오고 여행은 빛 밝은 남쪽으로 계속된다. 낯익은 세계와 낯선 세계 사이의 강한 대조를 실감하게 하는 ‘여행’은 『이방인』 저자의 영원한 주제다. 그래서 카뮈는 “부조리함은 두 가지 항의 비교에서 생겨난다”고 말한 것이다.

4) 마찬가지로 여행의 이야기이면서도 『삶에의 사랑』은 그 무대가 음울한 중부 유럽과 대척적인 지중해의 발레아르 섬이다. 여기는 카뮈의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고요한 바다와 빛이 가득하다. 그래서 두 가지 여행은 그 제목에서부터 ‘죽음’이라는 안과 ‘삶’이라는 겉의 대조를 보인다. 희곡 『오해』의 여주인공 마르타는 어두운 중부 유럽을 떠나서 “햇빛이 사람의 영혼까지 파먹어 버리고는 번쩍번쩍 광채를 발하는 속이 텅 빈 육체만 남겨놓는” 고장으로 가기 위하여 살인을 한다. 태양이 항상 삶의 긍정을, 어둠이 항상 허무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의미의 역동적인 변화와 유동적인 상관관계를 포착하는데 그 묘미가 있다. 그래서 작자는 이 산문의 결론에 이르러 빛 밝은 이 지중해에서의 유별난 경험을 “태양에 짓눌린 풍경 앞에서가 아니고는 탄생할 수 없는 나다(허무)”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이것이 에세의 기조를 이루는 심각한 선언이다.

5) 마지막 에세 『안과 겉』은 책 전체의 표제와 같은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결론으로서의 기능을 분명히 한다. 카뮈는 작품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한다. “한 사람은 관조하고 또 한 사람은 자기의 무덤을 판다.” 유산 받은 돈으로 자신의 무덤이 될 지하 매장실을 구입하여 매주 일요일 그곳을 찾아가 무덤에 누워보는 늙은 여자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현재의 순간 속에서 명철한 시선으로 영원을 발견하는 ‘나’의 의식을 대립시킨 글인 것이다.

카뮈는 약관 22세에 이미 그의 문학적 생애를 관통하게 될 가장 근본적인 ‘태도’를 은연중에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세계의 이 안과 겉 중에서 나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고 또 남이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카뮈의 문학은 안과 겉이라는 생의 양면성을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양면의 어느 한쪽도 제외하지 않으려는 성실한 태도와 이렇게 지탱된 양극 사이의 영원한 긴장이 산출하는 미학이다.

그는 또 『안과 겉』에 이어진 에세 『결혼, 여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어려운 시간에 그 어느 것도 제쳐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흰 실과 검은 실로 끊어지려고 할 만큼 팽팽한 끈을 꼬는 방법을 배우는 일, 그것 말고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빛과 어둠의 흰 실과 검은 실로 팽팽하게 꼬아 힘껏 당긴 활줄이 ‘자유’라는 화살을 퉁기는 절정의 순간, 이것이 바로 카뮈의 문학이 꿈꾸는 ‘정오의 사상’인 것이다.

“팽팽하게 활을 당겨야 하는 이 시간……. 활이 휘고 활 등이 운다. 최고조의 긴장의 절정에 이르러 곧은 화살은 더없이 단단하고 더 없이 자유롭게 퉁겨져 날아갈 것이다.”(『반항하는 인간』의 마지막 문장.)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64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문과 교수(현).

저서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등.

역서 『알베르 카뮈 전집』 17권, 『섬』, 『마담 보바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