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편지

 

                                                                              최원현

1. 봄날은 온다

 

사무실로 통하는 우렁이계단을 오르는데 목련나무의 가지가 손에 잡힐 듯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쌀쌀하기만 하여 온몸이 으스스하건만 3월을 맞는 목련나무 가지엔 어느새 봉긋봉긋 목련의 꽃봉이 앙증맞게 맺혀 있지 뭡니까.

 

날이 춥다고 해 봐야 이미 겨울은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것, 목련은 급한 마음으로 꽃봉을 맺혀 올렸나 봅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양복 위에 바바리를 걸쳐야 하나 그냥 가야 하나로 한참을 고심했는데 목련은 봄은 벌써 시작되었다고 자신 있게 꽃봉부터 밀어올린 것입니다. 사람은 일기예보만 듣고도 체감온도를 생각하며 불안해 하는데 질서에 대한 자연의 믿음은 그토록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도 한결같이 그들로부터 배우며 사는 존재입니다.

 

겨우내 죽은 듯 말라 있던 목련나무는 한겨울 내내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으며 봄이 되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워 올리는 열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목련 꽃봉을 보며 새삼 지난 겨울의 내 삶을 돌이켜 봅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생산적인 겨울을 맞았는가. 춥다는 핑계로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안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추운 겨울을 잘 보내게 하시고 따스한 새 봄을 맞게 하심에 대한 감사가 먼저 솟아납니다.

 

아직은 추운 날씨건만 목련나무의 맺힌 꽃봉을 통해 봄이 온 것을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목련의 꿈은 눈부시게 꽃을 피워내는 것이듯, 내게도 부시도록 찬란한 희망의 봄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새롭게 꽃봉을 먹음은 목련나무에 가장 따스한 햇살의 봄을 주시고, 나 또한 희망의 새 꽃봉을 어우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목련의 꿈처럼 그렇게 봄날이 오고 있습니다. 약동하는 우주의 리듬을 햇살로 받은 목련나무는 꽃봉 속의 시를 깨워 우주의 소리를 담을 노래로 꽃을 피워 낼 것입니다. 꽃샘바람 속에서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2. 개나리는 근심하지 않는다

 

봄의 전령인 개나리가 노오랗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내내 그리 떨다가도 어찌 피어날 때를 이리 알고 이때다싶게 피어나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마치 제각각 떨어져 살다가 명절 때면 다투어 찾아드는 자식들, 형제들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험악하다 해도,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으로 저희 설 땅이 금시 없어질 판인데도, 개나리는 근심하지 않고 올해도 여전히 피어날 때에 피어났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오직 때맞춰 꽃을 피워내는 것으로 제 할 일의 범위를 정하며 그 이상의 욕심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개나리꽃을 보고 싶다’라 하나 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 흔들어 깨우면 /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 너를 보면 눈부셔 /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의 ‘봄’ 중에서

 

그렇게 봄을 몰아오는 개나리입니다. 그러나 3월의 마지막, 개나리가 이리 활짝 피었는데도 오슬오슬 온몸이 떨리는 것은 강산이 얼고, 인심이 얼었다는 세상 말들 때문일까요? 하지만 개나리가 피면 천지는 한껏 봄꽃 잔치를 서두릅니다. 복숭아, 살구, 아기 진달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봄, 따스한 햇살이 내려도 가슴 속엔 여전히 냉기가 도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이기에 이렇게 봄이 더 그리워지는지 모릅니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가슴 힘껏 봄을 껴안아 봅니다. 아무런 근심 없이 피어야 할 때에 피어 봄을 여는 개나리처럼 나 또한 근심 없이 봄을 맞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