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을 떠났다가

 

                                                                                문향선

먼 길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를 보러 나섰던 길이었다. 떠날 땐 쉬이 돌아오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동자가 파랗게 물들 것 같던 바다도 실컷 보았다. 하얀 유람선에 실려 파도의 유희를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도 했다. 동경했던 마음 속의 바다보다 실제의 바다는 훨씬 흉포하여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남동풍이라고 선장은 흔연스럽게 말했다. 그 흔연스러움도 마음을 안심시켜주지는 못했다. 떠 있는 섬들은 갈매기를 거느리고 노련한 선장만큼이나 태연하게 한 장 잎사귀 같은 배의 유영遊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바다 위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조기 파시가 서는 곳으로 유명한 위도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작은 화물선에 살림과 가족을 싣고 육지를 떠났다. 그날은 바람이 거셌다. 새우 어장으로 알려진 전장포를 지날 때부터 배는 파도에 휘말렸다. 파도가 거세기로 이름난 바다였다. 심한 멀미에 의식을 잃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그때 “생전 처음으로 멀미를 했다”고 하셨다. 선원들은 갑판 위를 땅 위에서처럼 돌아다녔다. 거대한 파도에 전복되지 않고 섬에 발을 딛을 수 있었던 건 기적이었다. 그런 성난 바다도 기억에는 남아 있다.

떠났다 돌아온 집 역시 태연했다. 다만 적요만이 공기처럼 가볍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우편물 두 개, 작은 책자 한 권, 그리고 ‘집을 구합니다. ○○아파트에 살고 싶습니다. 전세, 월세, 매매 연락주세요’라는 쪽지가 휴대폰 번호와 함께 문기둥에 붙어 있었다. 나는 여행 중이었는데 누군가 존재의 집을 구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쓸쓸했다. 가을인데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람의 심정은 낙엽만큼이나 서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평화로운 시절이니 그렇게 낙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섬의 예전 포로수용소는 이제 공원이란 안락한 문패를 달고 있었다. 평화는 아득한 일만 같았던 사변 시절, 나는 다섯 살이었다. 신의주에서 임진강을 건너 피난민 대열에 섰을 때, 아버지의 등에 업혀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본능이었을까. 울음을 내면 임진강에 수장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었는지 모른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생존본능은 스스로 익히는 것이라는 것을.

끊어진 대동강 철교의 조형물 앞에서 나는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부서진 철교 위에서 초라한 피난민 보따리를 이고 지고 더러는 물에 떨어지거나 난간에 매달려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절하였다. 거기서 아버지 어머니의 환영을 보았다. 목이 메여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보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렸다. 돌아가면 전화부터 드려야지. 꼭 이런 상황 앞에서만 솟아나는 효심이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또 하나의 전쟁터였던 포로수용소가 이제는 테마 관광 상품으로, 유적공원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참 호시절이구나 하는 생각 저편으로 아직은 휴전 상태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언제 ‘종전’이라고 선언할 때가 올 것인지, 가을 하늘은 높기만 했다.

집에 돌아온 후, 허물을 하나 둘 벗기 시작하자 집은 비로소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화분에 물부터 주었다. 집에 돌아온 순간 내가 생기를 되찾듯 화초들도 파랗게 살아났다. 돌아오길 주저했던 마음은 간 데 없었다. 가방을 열어 조금은 스며들었을지도 모르는 바다 냄새를 토해냈다. 꺼내보지도 못한 소설 한 권도 제자리에 갖다 놓고 서재의 매캐한 냄새를 그립게 맡아보았다. 떠날 때의 그 모습으로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도하게 했다. 그리고 한 잔의 따끈한 커피.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도착했다가 택시까지 한 차례 더 타고 왔던 귀로, 내 나이에 만용에 가까운 호기였다. 그러나 때로 만용도 인생을 풍부하게 살찌운 법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려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어제의 풍랑은 잊은 듯 잔잔한 바다를 무연히 바라보는 일도 싫지는 않았다. 조바심치며 버스를 기다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의 풍광, 하얀 부표들을 갈매기 떼로 착각했을 때의 유쾌함, 다 알아듣기는 무리였지만 흐벅진 사투리 맛의 푸짐함까지, 내가 거기에다 추억처럼 두고 온 건 거제도였다.

 

 

<토방> 동인. 수필집 『오래된 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