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꽃, 꽃

 

                                                                               강철수

일본 열도의 최남단 가고시마 현, 일행들이 ‘사무라이 마을’을 관광하는 동안 나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특공 평화회관(特攻平和會館)’을 둘러보고 있다. 태평양전쟁 말기, 전투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적의 함정으로 돌진해서 자폭하는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 도코다이(神風特攻隊)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여겨져서다.

마당에 서 있는 특공 모자상(母子像)은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것 같다. 비행복 차림에 두 주먹을 부르쥔 건장한 체격의 아들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는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아무리 황국신민(皇國臣民)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한들 사랑하는 아들을 자살특공대로 죽게 하고 싶었겠는가. 단장(斷腸)의 아픔, 자신이 죽더라도 아들을 살려달라고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전시관 들머리에 이 회관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도리하마 부인의 등신대 사진이 걸려 있다. 군(軍) 지정 식당을 운영하면서 중국, 대만, 한국, 일본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특공대원들로부터 ‘어머니’로 불렸다는 부인의 눈매는 순하디 순하다. 전쟁이 끝나고 딸인 레이코 씨와 함께 가슴 찡했던 특공대원들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어, 온 일본 땅을 그들에 대한 추모 열기로 들끓게 했다고 한다. 그 덕으로 어렵지 않게 회관을 건립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벽면을 가득 메운 천 명이 넘는 특공전사자 사진 속에서 한국 출신인 박동훈 소위의 앳된 얼굴을 찾았다. 비행사가 꿈이었다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다. 솜털이 보송한 저 얼굴, 같은 나이의 손자녀석은 아직도 나와 볼을 맞대 비비곤 하는데…….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는 탁경현 소위는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찬 얼굴이다. 그는 마당 입구에 세워진 ‘조선반도 출신 특공대 위령가비(慰靈歌碑)’의 주인공이다. 출격 전날 밤에 평소 가족처럼 자신을 돌봐주던 도리하마 부인 모녀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노래 부르기를 자청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니 고향 노래를 부를게요.”

그는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5월의 밤하늘 속으로 멀리 멀리 퍼져나가던 아리랑의 애잔한 가락은 탁 소위가 군모(軍帽)로 자신의 눈을 덮으면서 끊어지고 말았다. 모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눈물, 모녀도 함께 울었다. 이 눈물의 아리랑이 뒷날 이곳에 가비를 세우는 단초였다는데 그 노랫말이 애달프기 그지없다.

‘아리랑 노랫소리 멀리 / 어머니 나라 그리워하며 / 부서진 꽃, 꽃…….’

탁 소위의 마음 속에 자신을 위해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있을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을까. 친구들과 뛰놀던 고향산천과 동구 밖까지 나와서 자신의 유학 장도를 격려해 주던 일가 친척들과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도 생각났을 것이다. 그를 가장 못 견디게 한 것은 자신의 전사 통지서 앞에서 망연자실할 부모님 모습이 아니었을까.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 “어머니, 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하세요.” 피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도리하마 부인의 책 제목인 『호타루 가에루(반딧불이 돌아오다)』의 주인공 미야카와 병사의 얼굴도 보고 싶다. 출격을 앞두고 그는 도리하마 부인에게 말했다.

“죽으면 어머니 곁에 돌아오고 싶어요.”

의아해하는 부인에게 “반딧불이가 되어서요”라며 고개를 떨궜다. 숙연해진 부인이 “네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겠다”라고 약속했다.

다음 날 밤 조금 열어둔 문틈 사이로 정말로 반딧불이가 한 마리 들어왔다.

“어머니! 미야카와 씨가 돌아왔어요!”

딸 레이코가 소리치며 울먹였다.

반딧불이가 되어서라도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던 소년, 그 여린 영혼은 지금 어느 하늘가를 헤매고 있을는지…….

박동훈, 탁경현 소위도 마지막 순간에 일본 특공대원들처럼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을까. 태평양 바다 위에서 산산조각이 나버린 젊은이들의 꿈,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을 것이다. 울적해진 기분을 달래느라 심호흡을 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격앙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특공대 출신 노병일까,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한 무리의 중학생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고 있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으로 보아 특공대원들의 애국심을 기리는 내용에다 자신의 무용담까지 보태는 모양이다. 학생들 얼굴에는 비장감이 감돌고 일부 학생들은 눈물까지 흘린다. 특공용사들의 명예롭고 영광스런 죽음을 본받겠다며 저마다 입술을 깨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특공대원들의 죽음은 명예나 영광이 아니라 남의 나라를 침략한 군국주의의 결과이자 비극이라는 사실을 아는 학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시장은 대 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특공대원들의 충성심을 이어받자는 열기만 가득할 뿐,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전사자들의 사진 앞에 눈물을 뿌리면서도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죽어가야 했는지를 캐묻지 않다니…….

이 회관은 ‘세계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 평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전시관 곳곳에도 ‘영원한 평화!’라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이곳에 들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평화의 염원이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것을 염원한다면 평화를 깨뜨린,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군국주의 전범자들의 잘못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2004년). <에세이 21>에 천료(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