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아름답다

 

                                                                                유영애

매월 동창들이 모임을 계속 하고 있다. 생활하다 보면 이런저런 성격의 모임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마음이 편하고 무관한 모임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아닌가 싶다.

너무 격의가 없다 보면 서로 갈등이나 알력도 없지 않으나 그것은 형제 간의 말다툼처럼 품은 마음 없이 곧 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가 너무 잘 알아 흉허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창들과의 모임은 어떤 만남보다도 부담이 없고 즐겁다.

대개는 시내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지내다 오지만 계절이 좋을 때는 자연을 찾기도 하고, 이름난 전시회가 있을 때는 그곳을 둘러보며 뜻깊은 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이번 모임엔 모처럼 연극을 보기로 하였다. 처음 연락을 하였을 때 친구들은 무슨 연극이냐고 궁금해 하였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이 말을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낄낄대며 신파조의 유치 캡이라고 한 마디씩 하면서, 그래도 구경삼아 한번 가 보자고 공연장으로 모였다. 연극이 공연되는 곳은 옛날 동양극장 자리인 지금의 문화일보 홀이었다. 이번 공연은 동양극장 개관 60주년 기념 행사였다.

동양극장은 암울했던 일제 통치 하에서 조선 최초로 민간인에 의해 설립된 민간 극장이다. 동양극장은 수많은 연예인들이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던 그 당시 문화의 산실이다.

그때의 연극인들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나라 잃은 민족의 한과 설음을 연극 무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의 감시도 삼엄했고 간섭도 심했다.

이렇듯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동양극장도 시대의 흐름에 밀려 쇠퇴 일로에 이르게 되자, 우여곡절 끝에 몇 해 전 마침내 재벌 그룹에 넘어가게 되었고, 지금은 신문사의 문화 홀로 이름이 바뀐 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건물도 시설도 현대식으로 좋아졌지만 옛날 동양극장에 정이 든 세대들에게는 아무래도 그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할 것이다.

세련된 파스텔 톤의 모자이크 장식 무대는 안정감 있고 아늑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공연은 시대를 뛰어넘어 가급적 삼사십 년대 당시의 모습을 재연하려는 의도 같았다. 잔잔한 해설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잘 융화된 고음과 저음으로 구성지게 연극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말솜씨가 관객들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시아버지의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진솔하고 호소력 있어 멋진 인상을 주었다. 또한 흘러간 노래를 부르는 원로가수의 해맑은 음성은 입으로 가슴으로 눈빛으로 관객들의 넋을 빼앗아 장내를 압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날의 히로인은 역시 주인공 홍도였다. 신세대 연기자의 뛰어난 연기 실력은 비련의 홍도 역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의 연기는 리얼하고도 치열해 관객과 무대를 하나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톡톡 튀는 대사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드는가 싶더니 연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느새 웃음은 사라지고 객석이 숙연해지면서 끝내는 여기저기서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홍도야 울지 마라.’

이것은 이야기로도 노래로도 너무나 많이 알려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너무나 통속적인 내용이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눈시울을 적신다. 점잖은 신사, 도도한 여인네들, 그리고 눈물이라고는 흘려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젊은 아이들까지 장내는 온통 눈물과 한숨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파조라고 깔깔대며 웃고 들어왔던 친구들의 얼굴도 너나없이 눈물로 젖어 있다.

막이 내렸건만 사람들은 일어설 줄 모르고 그 감동에 도취되어 있었다. 무엇이 현대인의 메마른 가슴을 흔들어 그처럼 오열하게 했을까. 여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이 슬픔을 일게 하고, 그 슬픔은 향수에 젖은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세상이 나날이 각박하여 웃음도 울음도 잃어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상가에서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곁에서 사람이 변을 당해도 그냥 지나친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살이가 점점 살벌해지는 것 같아 살맛을 잃는다.

그런데 오늘 눈물의 극장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세상에는 거짓 눈물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눈물은 순수하고 정직하다. 슬픔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측은지심이 사람들 가슴 속에 숨쉬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회가 거칠고 삶이 고단하여 정서가 삭막한 것 같아도 우리들 가슴 어느 한 구석에는 아직도 따뜻한 정감이 있고 샘물 같은 눈물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이라고 옛날 성현이 말씀하셨다. 너무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지 말자. 본성을 믿고 희망을 가져본다.

 

극장을 나선 친구들은 붉게 물든 눈자위를 손수건으로 훔치며 오랜만에 실컷 울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따라 친구들이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문학공간> 수필 부분 등단(97년). 현대시조, 시조세계에 시조 부분 등단(2000년).

한국 수필가협회 이사. 한국 시조협회 회원. 여류 시조협회 감사.

시조집 『어머니의 괴얄띠』, 『연꽃 같은 사람 그립네』. 수필집 『아름다운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