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당이 있던 자리

 

                                                                                 구민정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 도심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사방으로 전원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여느 때처럼 열람실 창가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겨울 초입이 되면서 이곳에도 개발이 시작되었다. 텃밭을 끼고 있던 소담스런 집 한 채 사라진 빈 터엔 아파트 신축 현장임을 알리는 공고문이 걸린 채, 기반공사가 한창이다.

나는 도서관 창가에서 건너편 연립주택 옥상에 있는 한 남자와 함께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 내 시선이 그에게 꽂힌 줄도 모르고 한겨울,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에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남자. 그가 혹시 보안당 젊은 주인이 아닐까 하여 자꾸 마음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그가 내 시선을 끌게 한 것은 몇 해 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독서실을 찾게 되면서부터다. 사무실 총무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부근에서 제일 부지런한 꽃집 주인이 가게 밖에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정리해 갈 즈음, 보안당 젊은 주인이 모습을 나타낸다. 짧은 스포츠 머리와 흰 와이셔츠의 어깨선에서 흘러내려온 주름이 검은 바지에까지 곧추선 것을 보면 그가 단정한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스토커처럼 쫓는 내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겅중겅중 내 앞을 지나 가게로 들어서곤 했다. 그리고 두어 평 되는 가게를 환기시키는 동안 도로변에 나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가 눈도장이라도 찍듯, 주변 건물을 훑기 시작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지나가는 자동차와 그의 시선 높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보안당 맞은편 2층 건물에서 내가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곳은 특이한 구조로 상가가 밀집해 있다. 산자락 아래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서 있고 그 중심에 거대한 상권이 조성되어 있는데, 상가 수가 천여 개가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특히 이곳에 있는 대형마트 한 곳은 전국 매출의 첫번째로 꼽힐 정도다. 주말이면 일대는 교통지옥을 불사할 정도로 많은 차들이 몰리는데 대형 마트는 많은 인파를 입 큰 개구리마냥 날름거리며 다 받아들인다.

겨울잠은 고사하고 연중무휴인 중심상가에선 현란한 불빛과 노랫소리가 길거리까지 나와 호객 행위를 한다. 이곳에는 입 크고 목청 좋은 개구리가 많다. 아침이 열리기 무섭게 예제서 제 잘났다고 법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십여 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던 이곳에서 목청 돋우지 못하는 개구리는 언젠가는 도태되고 마는 적자생존의 현장인 셈이다.

부근에만 해도 안경점만 줄잡아 세 곳이 있어 시설이나 규모 면에서 보안당은 동네 구멍가게 격이다. 어둑한 조명과 낡은 시설은 밤이 되어서도 어둠 속에 감추질 못한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내가 지켜본 수 년 동안, 그의 가게에 손님 드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보안당 젊은 남자는 그 낡고 좁은 가게를 충직하게 지키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독서실 정기권을 다시 끊었다. 그만 그를 보고 싶어도, 내가 휴게실에서 차를 마실 때마다 그는 늘 가게 앞에 나와 담배를 피우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피워내는 담배연기가 실성한 사람마냥 산발한다. 특히 해거름에 허공을 향해 직격포를 쏘아 댈 때면 보기가 민망스러워 얼른 자리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타들어가는 것이 어디 담배뿐이랴.

다시 겨울이다. 중심상가 주변을 일제 정비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고 차량 통제와 함께 대대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내년 봄까지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라 한다. 공사가 길어지다 보니 상인들이 중심상가 광장에 모여들었다. 겨울 혹한에도 불구하고 상업을 방해한다며 해당 관청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건 말건 도통 그 남자는 관심이 없다. 도심의 상가들은 새롭게 변모해 가는데 골동품가게를 방불케 하는 보안당 그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며칠이 멀다 하고 신장개업을 하는 가게들과 갖은 장사 수단을 내세워 많은 단골을 확보하려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생존경쟁이 치열한 이곳에서 의기양양 가게를 고수하는 그 남자의 의지가 자못 궁금하기만 했다.

상가 주변 도로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우연히 꽃집에 들렀다. 가게 옆을 확장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보안당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다시 그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그동안 그를 지켜보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집 건너 집안에 한 명씩 실업자가 난무하는 현실이 아니던가. 아직 한겨울이다. 나는 단지 그가 긴 동면에 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계간수필>로 등단(2003년). 군포여성문학회 동인. 시문회 회원.

『빈혈로 흘러내리는 달빛』 외 다수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