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

 

                                                                               金奎鍊

그대는 나와 목숨을 함께 할 단 한 분의 친구입니다.

내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대는 내 곁에 있어 줬습니다. 내가 폐를 앓으며 생피를 토해 낼 때도 나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내가 꽃비 흩날리는 환희의 거리를 지나갈 때는 나를 반기며 따라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팔순의 어귀까지 흘러왔습니다. 그간에 그대는 세상풍파에 흔들리고 부대끼고 씻겨져서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여물고 안팎이 환히 트여졌으리라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금이 간 것 같습니다. 때때로 그대의 마음과 말과 몸짓이 서로 어긋나서 따로따로 놀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늙어감에 따라 그대는 더욱 노회하고 교묘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진실과 거짓이 엇비슷해졌습니다.

그대는 요즘 글에서 한 소식 얻은 도인처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연 따라 무심히 이승에 왔으니 자연 따라 살다가 자연 따라 무심히 가 버리면 됐지,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다. 걸핏하면 병원 가고 수시로 건강식품 찾아 먹으면서 말입니다. 삶과 소멸, 사랑과 미움, 부귀와 빈천…, 이런 것들에 걸리지 않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흘러가리라. 이것이 그대의 참모습입니까, 아니면 희망일 뿐입니까.

그대는 오늘 산책길에서 하늘에 나부끼는 그대 삶의 명세표를 봤습니다. 남루하고 부끄럽고 슬펐던 지난날의 발자취가 불도장 흔적으로 아프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대는 하동 섬진강변, 쇠락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데다가 비범한 재주도 없고 책가방 끈도 짧아서 어릴 적 꿈이라야 고향 초등학교 훈장이 돼서 들풀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는 나이 들자 일자리를 얻으려고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 교원 자격을 따냈습니다. 바람에 풀씨 날려가듯 그대는 고향을 떠나 대구 땅에 와 정착했습니다. 이십 여 년간 중등학교 훈장 노릇도 즐겁게 잘 해냈습니다.

그대는 불혹의 유역을 지나갈 무렵 가슴 밑바닥에서 욕심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장학사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법보다 권위가 더 힘쓰던 유신 시절에는 장학사가 교사의 꽃이었습니다. 그대는 마침내 애씀과 요행으로 연구사와 교감을 거쳐 그 꽃으로 변신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대는 꽃이 된 그날부터 공차, 공술, 공밥을 즐기는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그 버릇은 강렬한 최음제와도 같았습니다. 대구 시내 중등학교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건네주는 촌지 봉투를 사양하듯 슬며시 받아들었습니다. 그러고도 청백리의 탈을 쓰고 얼마나 깨끗한 척했습니까. 그대는 악취 풍기는 독초 꽃이었습니다. 그대가 학교장으로 돌아와서는 누가 봐도 감복하도록 연극 또한 얼마나 잘했습니까. 혁신의 깃발을 흔들며 학교를 명문대학 입학 선수 만드는 공장으로 바꿔놨습니다. 학생과 교사들을 드글드글 볶아서 세뇌시켰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외침이 절로 튀어나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한 속깊은 뜻은 그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대는 두 고을 교육장을 지내면서 기껏 한 일이라곤 혈세 축내는 일뿐이었습니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책이나 뒤적이고 잡문이나 끼적거렸습니다. 그러다 싫증나면 관내 여기저기 풍광이나 즐기며 돌아다녔습니다. 그것도 출장이라고 여비도 타내지 않았습니다. 명절이 되면 세찬이란 이름의 뇌물을 챙기며 시류라고 자위했습니다. 그대는 가긍한 위선자였습니다.

이제 그대는 태생의 살갗처럼 돼버린 가식의 꺼풀을 피가 묻어나도록 벗겨내야 할 것입니다. 그대는 젊은이들에게 여색을 탐하지 말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대의 젊은 날은 어떠했습니까. 한 마리 나비가 돼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꽃잎에 묻혀 쾌락의 밤을 새운 일이 없습니까.

그대의 마음 한 자락에는 아직도 그리움의 정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다 교양 있고 자태 고운 여인이 나들이 가자고 손을 내밀면 주저주저 따라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대가 교원연수기관의 책임자가 되자 갑자기 겨레의 스승으로 둔갑했습니다. 오가다 보고 듣고 배운, 모래 알갱이 하나도 못되는 앎을 부풀리고 튕겨서 교원들의 귀를 어지럽혔습니다. 도내 교원들을 번갈아 불러들여 횡설수설 하다 보니 말재주는 늘어가고 그대 이름에 거품이 생겨났습니다.

그 거품 덕으로 한국교원대학에 여러 해 동안 출강하게 됐습니다. 그대는 팔도에서 모여든 선량한 교육자의 머릿속을 허튼소리로 꽤나 많이 오염시켰습니다. 되잖은 책도 숱하게 팔아 먹고. 그대는 영락 없는 속물이었습니다.

그대는 비단 같은 언어로 수필 쓰는 까닭을 늘어놓고 있지만 실은 그대의 헛된 이름 띄우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제대로 된 수필 한 편인들 남길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교육자 상을 사양하지도 않고 받았습니다. 상금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경북 교육자 상은 상금이 몇 푼 되지 않아 회식비로 다 써버렸습니다. 중앙의 H신문사 교육자 상금은 남에게 뭣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산골 학교에 피아노를 사 줬습니다. S 티브이의 교육자 대상은 상금이 큰 돈이었습니다. 평소 보시보다 더 큰 공덕이 없다고 주장하던 그대는 그 상금을 그대 아들 딸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대의 이름이 거품을 타고 교육부에 흘러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교육부에서 얘기 좀 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대는 부른다고 겁없이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중앙청 강당에 교육부 수장을 위시해서 전 직원이 모였습니다. 그대는 우국지사의 가면을 덮어쓰고 온갖 잡설을 뇌까렸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은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의 삼무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핏대를 올렸습니다. 자신은 한 가지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늙었다고 용도 폐기된 그대는 용케도 교육위원으로 뽑혔습니다. 그대 교육위원은 멀쩡한 몸에 달라붙은 물혹이요 허수아비요 각설이꾼에 불과했습니다.

날라리 불며 재주를 팔고 다니는 남사당처럼 그대는 근년까지도 각처를 떠돌며 말재주를 방매해 왔습니다.

그대는 나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림자의 실체는 나입니다. 나는 잠시 잠깐 거쳐가는 이승의 꿈길에 넋 잃고 너무 매달려 왔나 봅니다. 이젠 죄다 고백하려 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은 그릇된 삶의 지우개요 탈출이요 구원이 될지도 모릅니다.

석양 노을 붉게 타오르는 저 광야로 들풀 사랑의 초심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