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를 보내고

 

                                                                                         吳景子

매서운 꽃샘추위가 들이닥친 날, 우리 집 마당식구인 여름이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 뜰에 나가 보니 어제 뜰 안팎을 정리하며 마른 풀을 잘라 쌓아놓은 덤불 무더기 위에 여름이가 네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죽은 게 확실했다. 그 주검을 보며 불쌍하다거나 슬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왠지 편안함을 느꼈다. 나 자신의 야멸치고 냉정한 성품에 몸이 떨렸다.

여름이는 열다섯 살인 늙은 개다. 태어나서 십오 년 동안을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아왔다. 개가 태어나서 첫 돌이 되면 사람 나이로는 18세, 청년기에 이른다고 한다. 그 다음 해부터는 학자에 따라 계산법이 다르긴 하지만 사람의 1년을 개는 4년에서 4년 반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그래서 개의 나이 열 살에 이르면 사람의 나이로는 환갑 나이가 된다. 예전에는 개가 열 살이 넘으면 집에서 기르지 않았다 한다. 여름이는 팔십 세의 노인이 되어 천명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주인 엄마인 내가 앓는 병은 다 따라 앓겠다는 듯 백내장으로 시력이 많이 나빠졌고, 관절염을 앓아 계단 오르내리기를 힘들어 했다. 그래도 나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밥그릇을 계단 위 현관문 옆에 놓아주었다. 내가 시중들고 보살펴주기 좋은 자리라는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는 토종 바둑이인 여름이 말고도 마당식구가 둘 더 있다. 황금색 긴 털이 멋진 자그마한 몸매의 다롱이가 있고, 삽살개 비슷하게 생긴 썰렁이가 있다. 둘이 다 수입해온 개의 혈통인 것 같다. 다롱이는 몸놀림이 재빠르고 눈치도 빠르다. 먹새도 좋다. 여름이를 향한 내 배려를 시샘하여 늘 나를 따라다니며 강중강중 뛴다. 그렇게 약아빠져도 허점은 있다. 배설 장소가 문제다. 다른 개들은 어디에 배설을 하는지 모르게 구석진 곳 흙에 누는데 다롱이는 장독대, 아니면 차고 바닥, 아니면 대문간에서 해결한다. 아무리 꾸짖고 가르쳐도 막무가내다. 여러 해 동안 다롱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꾸짖기만 하다가 이제는 내가 이해하게 되었다. 다롱이는 아파트에 살다가 주인네가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어 우리에게로 온 개다. 어릴 때부터 화장실의 일정한 장소에서 일을 보도록 훈련되어 흙바닥에 누라는 내 명령이 결코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썰렁이는 목청 좋고 순하고 착한데 식탐이 많아서 늘 골칫거리다. 과자건 고깃덩이건 던져주면 씹는 법 없이 꿀꺼덕 하고 삼키는 먹수이다.

이처럼 천방지축인 개들이 서로 위아래를 지켜 서열을 존중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다롱이는 대문 옆 개집에서 독방을 쓰고 있고, 여름이와 썰렁이는 현관으로 오르는 층계 밑 넓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안쪽 윗자리는 늘 여름이 차지였다. 지난 겨우내 여름이는 잘 먹지도 않았고 자주 밖에 나오지도 앉았다. 아침녘이나 저물녘에 잠깐 나와 테라스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허겁지겁 부엌으로 달려가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 밥그릇을 채워주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찾아먹지 못할까봐 이름을 부르며 애를 태운다. 여름이는 관심이 없다는 듯 딴전만 피운다. 이런 실랑이가 벌어질 동안 다른 개들은 제 집에서 꼼짝 하지 않는다. 내가 안으로 들어온 후, 여름이가 여전히 밥그릇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다롱이와 썰렁이는 테라스 위에는 얼씬도 않는다. 여름이가 다 먹고 물러나야 둘 중 하나 날쌘 쪽이 총알처럼 달려와서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시치미를 뗀다. 고깃덩이 한 조각이나 과자 한 개를 주려고 여름이를 불러도 나오지 않으면 개집 안에 여름이 곁에 던져놓는다. 그때 썰렁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다. 그 시치미를 뚝 떼는 꼴은 참 볼 만하다. 한참 후에 가 보아도 같은 사태다. 그것을 집어 썰렁이한테 던져주면 그제야 꿀떡 삼켜버리곤 했다.

여름이가 죽은 날, 뜰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 썰렁이는 저녁 늦게까지 제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들어앉아 있었다. 아침밥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해질 무렵에 종일 그대로 놓여 있던 밥그릇을 치우고 밥을 갈아주며 타일렀더니 슬그머니 나와서 먹었다. 언제나 둘이서 서로 무관심인 듯 등을 돌리고 앉아 있곤 해서 의가 안 좋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다롱이는 아침녘에는 집에 들어앉아 있더니 정오가 지나면서 섭섭함보다는 강적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듯 내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며, 줄 게 없으면 건빵이라도 서너 개 던져달라는 눈짓을 한다.

여름이는 햇빛이 잘 비치는 대추나무 아래 옥잠화 옆에 묻어주었다. 남편은 혹시 개들이 파헤칠까봐 벽돌 석 장을 무덤 위에 올려놓았다. 진달래와 자목련이 피면 꽃가지도 꺾어다 꽂아주고 꽃 모종도 심어주자고 했다.

우리 내외는 무덤 앞에 서서 여름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줄에 묶이기는커녕 개목걸이 한 번 목에 걸어보지 않고 앞뒤 마당을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참 이상해요. 왜 섭섭하질 않지? 오래 시난고난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마음이 나빠서 그런가, 그저 안도감만 느껴져요.”

“사람은 안 그런가? 사람도 마찬가지야, 나이 먹으면…….”

팔십을 향해 달리고 있는 남편은 곁눈질로 내 반응을 살폈다.

“거기 사람 이야기가 왜 들어가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돌아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맑고 모처럼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