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사춘기

 

                                                                                   심규호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딸아이 방에 들어가 보니 아비를 바라보며 겸연쩍게 웃는 아이의 눈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다. 화창한 봄날, 그러나 여전히 썰렁한 방에서 노란 점퍼를 걸치고 책상머리에 앉은 아이는 뭐가 그리 서러워 눈물의 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 새 부쩍 커서 어미의 키를 훌쩍 넘어버린 아이는 긴 머리에 새침한 얼굴, 봉긋한 가슴에 발랄한 웃음으로 제법 숙녀 티가 나는 열다섯 귀여운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때로 풋머슴처럼 덜렁대는 것이나 걸음걸이며 말투가 여느 아이들처럼 제멋대로인 것을 보면, 그 옛날 나이 열다섯에 머리를 묶고 비녀를 꽂으며 혼사를 염두에 두었던 조신한 숙녀를 연상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건대, 어찌 그 옛날의 조숙한 여성들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학교란 울타리에서 제복으로 단속하고 주입식 교육으로 입시 훈련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달려가 시험문제지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고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의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심의 몫은 우리 부부 모두에게 있었다. 그러나 아비는 가장의 티를 내느라 바쁜 척하고 있으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울어주는 것은 언제나 어미였다. 그러니 매번 물어보는 수밖에. 안사람과 함께 출근하면서 내가 물었다.

“애가 사춘긴가?”

무심한 물음에 물끄러미 창밖을 쳐다보던 안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시답잖게 여기는 눈치였다. 사실 나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데, 당신이 알다시피 요즘 내가 조금 바쁘잖아.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영 자신이 없었다. 그래 사실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닌데, 아이와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하잖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금세 기가 죽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분명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는 했다. 그런데 대화 내용이란 것이 보통 이런 식이었다.

“학교생활 재밌니?”, “친구들이랑 잘 지내지?”, “학원은 어때?”, “오늘 저녁에 맛있는 것 사 줄까?”

아이의 대답은 당연히 이런 투였다.

“응”, “좋아요”, “그저 그래요.”

때로 아이가 길게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주로 학교생활에 관한 것이어서 내 대답이 반대로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이야기를 빗대 말하거나 교훈 섞인 말씀을 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내 마음 속에 아이는 여전히 열 살이거나 그 아래에서 맴돌 뿐이었던 것이다. 그 전처럼 껴안아주지도 못하면서. 안사람의 결론은 이러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자 하는 욕심도 많은데 오히려 그것이 아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싶은데, 며칠 동안 열심히 공부해도 마음먹은 대로 성적은 나오지 않고, 게다가 같은 반 어떤 친구는 그저 설렁설렁 공부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1등을 놓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심하게 자책하고 있다고. 결국 그런 자책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자신에 대한 실망이 덧붙여지면서 울음으로 표현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참, 별걸 다 가지고 고민을 하네. 이번에는 내가 시시껄렁하다는 듯한 얼굴로 안사람을 쳐다보았다.

“아이구야! 배부른 소리하네. 좀더 놀라구 해. 무슨 공부에 그리 목을 매다나? 그쯤 했으면 됐지! 난 또 사춘기가 되어 그럴듯한 고민을 하느라 그런 줄 알았지!”

사실 아이는 그다지 성적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반장을 한 것을 보면 학교생활도 그다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믿을 만한 친구들도 제법 있는 것 같고, 선생님들에게 밉상을 보인 것도 아닌 듯했다. 그런데 무슨 걱정이람?

그러나 안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이미 선행 학습으로 중학교 영어, 수학은 모두 떼놓고 시험 볼 때면 암기과목 위주로 공부를 하니 당연히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 집 아이는 선행 학습은커녕 학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으니 기본 실력이 영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영어는 잘하잖아? 내 물음에 안사람은 벌써 토익시험 보러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고 대꾸했다. 무슨 토익, 중학생이! 안사람은 한술 더 떠 중학 수학은 이미 다 떼고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제 술 한 잔 걸치고 늦게 집에 돌아오니, 거실 긴 책상 앞에서 안사람과 딸아이가 각자 책을 보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큰 소리로 딸에게 말했다.

“애, 너무 그렇게 공부하지 마라. 놀면서 해. 너는 어째 하루 종일 학교 책만 붙잡고 있니. 소설도 좀 읽고 영화도 보고 말이야.”

아이는 그저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고 싶었다.

“학교 성적에 너무 매달리지 마. 그까짓 것 모의고사 좀 못 보면 어떠냐. 영어랑 수학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아차, 뒤에 나온 말은 하지 말걸. 그런데 툭 튀어나온 것을 보면 나 또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신랑감에 연연해하는 속물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마치 만회라도 하려는 양 계속 말을 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눈물이나 흘리면 되겠니. 너 사춘기인가 보다.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누구는 사춘기 없는 줄 알아. 다 마찬가지야. 아빠도 그랬어. 한 번 볼래?”

나는 이렇게 말한 후 낡은 상자를 뒤적여 옛날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내 15~6살 때의 기록이었다. 그 속에는 무언가 답답하여 어디론가 떠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오고, 학교를 그만둔 후 캄캄한 앞날에 대한 걱정과 막연한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 있었으며, 부모에 대한 원망과 신세 한탄, 그럼에도 악착같이 출세해야 한다고 이를 악무는 장면도 나왔다. 담배 피우는 이야기, 대학생에 대한 부러움,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자탄 등등 그것은 전혀 알 수 없는 앞날과 빠져나오기 힘든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나만의 독백이었다.

사실 딸에게 난데없이 일기장을 건넨 것은 아빠가 너보다 훨씬 어려운 사춘기를 겪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춘기가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면 정말 제대로 사춘기를 경험해 보라고 말하고자 함이었다. 사내에게 군대가 마냥 시간만 때우면 되는 시기가 아닌 것처럼 사춘기 역시 그저 답답하다고 짜증이나 내고 우울증에 걸린 이처럼 웃다 울기를 반복하면서 지낸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바로 코앞에 닥친 시험과 공부 걱정 때문에 그 아름다운 유혹과 아픔의 시기를 모두 탕진한다면 정말 꽃다운 나이가 아깝지 않을까?

딸이 아빠의 일기장을 다 읽고 나면 이렇게 말해 줄 생각이다. 아빠의 사춘기는 절망에서 시작했어. 그때 아빠는 이렇게 생각했지.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나에게 도전을 한다면 나는 당연히 응전해야 한다고. 그리고 아빠의 사춘기는 그렇게 끝났어. 이후에 심기일전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또한 열심히 살려고 애썼던 것은 바로 아빠의 사춘기가 가져다 준 열매였어. 너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그때의 절망과 희망 때문이야.

아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이 말을 들었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빠 잘난 척.”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사춘기를 시작한 딸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딸 역시 사춘기를 통해 영어와 수학, 모의고사와 학교성적에 답답하게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입시전쟁에 허덕이는 아이를 보면서 답답한 것은 다른 부모들과 매한가지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우리 기성세대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엉터리 현실을 너끈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이민을 떠나리? 아니면 아예 학교를 때려치우게 하고 가학(家學)을 시작하리!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딸 역시도 그러 할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안주하는 것보다 더 옳지 않은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안사람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 영어와 수학을 보충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을 때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했다. 비록 그것이 절대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싸워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싸워야 하겠지!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현실 그대로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일일 것이니, 비록 세상의 고민을 모두 짊어진 것처럼 깊은 사색에 심취하고, 실존에 대해 거창하게 고민하는 위태위태하면서도 알콩달콩 재미있는 사춘기는 아닐지라도 딸이 맞부딪치고 있는 삶의 무게만큼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아이 나름의 사춘기를 제대로, 잘 지내는 것이 아닐까?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제주 포럼 대표.

제주산업정보대학교 중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