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서 피는 꽃

 

                                                                                    권민정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집 가까운 공원을 지나다가 나는 그만 ‘아!’ 하고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큰 느티나무와 소나무 밑, 그 어두운 곳에 자주빛깔 꽃들이 수백 수천 송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그늘에?”

신음과도 같은 것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난초 잎같이 생긴 이파리에 꽃대가 쑥 올라와 있고 그 위에 작은 꽃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그 꽃들은 햇빛 밝은 곳에서 피는 화려한 색깔의 꽃과는 다른, 참 이상하게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거기 맥문동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 꽃은 음지식물이며 키 큰 나무 밑 어두운 곳에서 아주 조금씩 들어오는 햇빛으로 사는 식물이라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공원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 맥문동이 아파트 단지 안 그늘진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많이 퍼졌다.

내가 나가는 상담실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 오고 가는 길에 맥문동이 유난히 많이 있다. 그 꽃들 보는 즐거움에 나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걸어다닌다. 오늘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활짝 피어 있는 수많은 자색 꽃들을 보며 나는 방금 헤어진 아이들을 생각했다.

사회에서 이른바 비행소년이라고 부르는 청소년을 위한 상담실에 나가면서 나는 좋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아이들의 집은 무척 가난하고 부모들은 일에 지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또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이 집을 나가버려 한 부모 자녀가 된 경우도 많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중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사는 아이들도 있다. 내가 처음 상담한 아이는 엄마와 아빠 둘 다 가출한 소녀 가장인 고등학생이었다. 경제난 때문에 싸움이 잦다가 엄마가 먼저 집을 나가고 그 몇 달 후 아빠까지 집을 나가버려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경우였다. 음지에서 사는 아이들, 나는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오늘, 최근에 새로 맡은 십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난타’ 공연을 보러 갔다. 극장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구경온 그 또래의 학생들이 많았다. 재미있는 공연을 보며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웃고 무척 신나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척 좋아할 줄 알았는데 잘 웃지도 않았다. 문화 체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였기에, 극장에서의 반응을 보며 나는 속이 좀 상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공연 재미 없었니?”

한 아이가 대답했다.

“아뇨, 재미있었어요.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였다. 평생 기억에 남다니? 그렇게 무덤덤하게 앉아서 보더니, 재미있었다니?

이번에는 아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얼마짜리 표예요?” “비싸.”

“얼만데요?” “5만 원.”

“그렇게 비싼 걸 극장에서 공짜로 보여줬어요?”

이 아이들은 유난히 돈에 민감하다. 거의 유일하게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돈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려서부터 돈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해서 그런지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비슷한 비행을 저지른 다른 아이들 중에서 벌을 받지 않은 경우도 있는지 ‘무전유죄’라는 말을 저희들끼리 심심찮게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사 주는 천 원짜리 김밥 한 줄에도 고마워했다. 그러니 그렇게 비싼 공연을, 좋은 좌석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그들은 극장 측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음지식물은 다른 꽃에 비해 호흡속도가 느리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이 부모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든지 자신들의 눈과 귀를 애써 닫고, 자신의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애쓰며, 어떠한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기로 한 것일까? 그것이 이 세상에서 그나마 스스로 터득한 생존 전략일까? 상담을 오래 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이 아이들을 너무 모르는 모양이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벽 같은 것을 오늘도 느꼈다.

이 아이들은 상담실 선생님들과 앞으로 2년간 만날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 아이들의 멘토가 되길 자원하였다. 선생님들은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또 귀중한 존재로 대해 줄 것이다. 생일 같은 좋은 날이나 혹은 슬픈 일이 있어 어쩌다 같이 먹는 밥 한 끼와 나누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이 아이들에게 나무 사이로 조금씩 비쳐주는 햇볕 같기를 바란다.

“그래 얘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추운지 그 마음을 어떻게 다 알겠니? 다만 그 외로움, 그 슬픔을 딛고 이겨낼 수만 있다면…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낸 사람이 더 아름답다고 했는데…….”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괜히 목이 메었다.

나는 이 아이들도 맥문동 꽃같이 깊은 감동을 주는 꽃으로 피어나길 진심으로 바라며, 활짝 핀 자색 꽃길을 걸었다.

 

 

〈계간 수필〉로 등단.(2004년)

파랑새 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