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평>

 

천관우千寬宇의 ‘서부西部’

 

 

일시:2006년 3월 18일

장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인원:23명

사회:유경환

정리:이경은

 

 

(본문)

 

西 部

 

얼마 전에 서대문 밖, 고양군과 거의 접경되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지은 후생주택촌이다. 원체가 게을러 이런 집을 얻어드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마침 시골에서 이사를 해야 하는 R형이 이 마을로 가겠다기에 그러면 나도 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을 겨우 갖게 된 것이다.

멀다. 무악母岳재를 넘어 또 고개를 몇인가 넘어, 버스에서 내려서도 논가의 길을 7, 8분 걸어 들어간다. 바로 이웃이 된 R형네 꼬마가 ‘서울로 이사간다더니 여기도 시골 아닙니까’ 하고 불평을 늘어놓더라는 말을 듣고 그럴 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향의 이 마을을 둘러싼 산들이 그만하면 울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은 나무들이 들어섰고, 남쪽으로 탁 트인 들의 누런 물결이 탐스러웠다. 그리고 우선 마당에서 쳐다보는 하늘이 한두 평이나 될까 말까 하던 것이 여기서는 들 너머 머언 산까지 몇천 평은 될, 넓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것이 시원스러웠다.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는 좀 서글펐다. 그날로 방에 도배를 하고 부엌에 시멘트를 바르고 전등을 달고 수도꼭지를 끼워놓고 나니까, 그제서야 약간은 사람 사는 곳 같아졌지만 이제부터 손길이 가야 할 데가 얼른 헤아려보아도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을 알게 되자 ‘사람 살던 데를 들어야지 새 집은 힘이 들걸’ 하던 친구의 충고가 새삼스러웠다.

새 집에 들던 날 밤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뭐 대단한 집이라고 큰 걱정할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를 살아도 내 사는 집이라서 그랬던지 아주 걱정이 안 되는 도리는 없었다. 이튿날 아침, 옆산의 큰 암벽에 어제까지 없던 큰 폭포가 생긴 것이 신기로웠다. 고르지 못한 마당 여기저기에 물구덩이가 생겼다.

며칠 아침을 새겨 마당을 고르고 배추씨 무우씨를 뿌렸다. 철이 늦어 나오기나 할까 했더니 며칠 안에 파랗게 돋아나왔다. 아쉬운 대로 산 밑에 핀 코스모스도 몇 그루 옮겨다가 마당가에 심어놓았다.

그럭저럭 며칠이 지나니까 집집마다 마당이 그럴듯하게 꾸며져 갔다. 좀 일찍 이사 온 집에서는 화초의 덩굴이 벽을 기어 올라갔고 여기저기서 담을 쌓아 하나씩 둘씩 구획이 되어갔다. 담을 쌓고 대문을 달아야 문패를 붙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료품에 잡화를 겸한 가게가 하나 있더니 며칠 안 되어서 연탄가게가 생기고, 쌀가게가 생기고, 잡화가게가 또 하나 생겼다.

이렇게 마을이 짜여가는 동안에 답답한 일들도 생겼다. 쓰레기를 처치하는 일이라든가, 시민증을 고치는 일이라든가, 도대체 누구에게 말을 붙여야 좋을지 모를 일들이 생겼다. 미국 서부에 개척 당시에는 이럴 때 어떻게 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이 마을의 경우 하루는 통문이 돌았다. 며칠 날 저녁 몇 시에 어린이놀이터에서 통장을 뽑을 테니 나오라는 것이었다. 어린이놀이터는 이 마을을 설계할 때부터 만들어놓은 넓은 터다.

먼저 이사 온 집들은 대개 서로들 짐작을 하는 모양인지 그 중의 어떤 이가 통장으로 뽑혔다. 그러고 나서 마을이 몇 반으로 나뉘고 반마다 반장이 뽑힌 것은 불과 며칠 동안에 쾌속으로 진행이 되었다. 동적부洞籍簿 용지가 배부되고 곧 동세를 무는 떳떳한 동민의 한 사람이 된 것은 물론이다.

미국 서부라니 말인데, 이 마을은 아직까지는 보안관 같은 것이 필요가 없이 지내왔다. 도둑이 들어와봐야 가져 갈 것이나 있나 하고 웃었지만, 또 담이 없는 동안은 앞집이 뒷집이요, 뒷집이 옆집이라 도둑이 들어오기도 어려웠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집집마다 길 가까운 창에는 창살들이 늘어갔고, 우리가 동적洞籍에 오른 얼마 후 경관이 호구조사를 하러 왔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도 마을의 보안을 해 주는 수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이 좀 늦고 저녁도 좀 늦은 직장이라, 버스에서 내리면 호젓한 논가의 밤길을 걷게 되는 것도 일과다. 보안등이라 한다던가, 띄엄띄엄 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이 한 줄로 죽 서서 집집마다 환히 전등을 켠 마을까지 데려다준다. 군데군데 파란 전등을 켠 집도 멀리서부터 보인다.

밤하늘에 내가 제일 알아보기 쉬운 것은 북두칠성이다. 얼마 전까지도 나지막한 언덕 위에 누워 있더니, 요즘은 그것조차 반 넘어 가리우고 말았다. 김장철이 가까워온 것이다.

마당에 돋아났던 무 배추는 더러 어린 것을 솎아 먹기도 했지만 몇 포기를 남기고는 모두 제물에 시들어버렸다. 내년에는 거름도 하고 가꾸기도 해야 하겠다. 그때쯤 되면 이 마을이 좀더 훤해 보일 것도 같다. 이웃집에서는 줄장미를 심겠다 하고, 또 다른 이웃에서는 등나무를 심겠다 한다. 그렇게 되면 게으른 나도 무엇인가 심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멀디 멀다던 이 마을도 하루 한 번을 내왕하기 두 달 남짓에 그리 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도 되었다. 아침마다 문안을 향해 들어가는 길``─``차가 숨 가쁘게 무악재마루를 올라서면 문득 안하眼下에 독립문과 감영監營 앞으로 뚫리는 큰 길과 그 멀리 대개는 안개가 서리는 서울의 한구석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상쾌하기도 하고, 그 맛을 보자면 되도록 운전대 근처에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요령도 터득했다. 서울의 서부가 정이 들어간다는 것일까.

비가 쏟아지면 큰 폭포가 생기는 그 암벽 근처를 어느 날 아침에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 계곡의 조그만 물줄기를 따라 솥을 걸어서 꺼멓게 그을은 돌무더기가 보이고 철없는 친구들이 흔히 바위에 적어놓은 무명의 성명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었다. 북한산 서쪽 끝 줄기, 여기는 탑승객들이 찾아오는 골짜기였던 것이다.

그 마을에 내가 살고 있다. 아무리 먼 곳이 아니라고 마음을 먹어본들 별수가 없이 먼 서부인가보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44호, 2006년 여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천관우의 ‘西部’입니다. 이 작품의 정확한 발표 날짜는 없지만, 대략 1960년대 초로 보여집니다. 1950, 1960년대 우리나라 문단에서 수필은 대개 전문직 인사가 여적(벼루에 남은 먹물)으로 쓴 글이었고,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문학 작품으로서의 수필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1950, 1960년대 우리나라 지식사회에서 저명한 전문직 인사로는 변호사, 의사, 교수, 화가, 언론인들이 있는데, 천관우는 언론인으로 그 당시 필봉을 날렸던 대표적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경제는 6·25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정치는 이승만 정권이 4·19로 종식되고, 이어 군부 쿠데타 세력이 들어서서 ‘압력솥’과 같은 내부 압력에 힘겨워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언론인 천관우는 동아일보사의 편집국장·주필로서 그의 기개와 의지를 필봉으로 드러내어, 사회 민심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그의 ‘西部’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수필’로 보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1950, 1960년대 전문직 지식인의 여적 수필로서는 그가 끝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은 금성출판사에서 발간한 『한국 수상록』 제21권에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한 편입니다.

오늘 토론자로는 고봉진·정목일·유혜자·정선모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고봉진 선생께서 작가론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고봉진 : 천관우 선생(1921~1991)의 본관은 중국의 영양穎陽이며, 호는 후석後石입니다. 충북 제천 출생이고,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에서부터 원군으로 왔다가 정착 귀화한 명나라 장수 千萬里가 중시조입니다. 청주중학교를 거쳐, 194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6·25로 부산에 피난하였고,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일하게 되면서 언론계에 투신하였습니다.

1966년 동아일보의 주필이 되었으나, 1968년 <신동아> 필화사건으로 그만두었다가, 일 년여 뒤에 상근이사로 복직하여 언론계의 중추적 구실을 하였습니다. 그 뒤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계기로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적극적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신체제 아래 정부기관의 감시와 탄압으로 사회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자, 집에 칩거하면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뒤에야 10년 동안의 칩거에서 벗어나, 다시 민주화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다가 1991년 별세하였습니다. 언론에 관련된 저서로는 『밀물썰물』, 『言官史官』이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사학자로서 천관우 선생의 면모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논문 ‘반계 유형원 연구’로 이병도 선생이 ‘실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군계일학 같은 업적’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실학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아카데미 사학이 아닌 사론史論 위주의 민간 사학의 전통을 이으며, 한국사를 대중화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한국사에 관련된 저서로는 『인물로 본 한국고대사』, 『비교 고대 일본과 한국 문화』, 『근세조선사 연구』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에 대한 선생의 관점은 전근대적 의식에 대립되는 근대 지향의식, 沒민족의식에 대립되는 민족의식을 척도로 재구성한, 조선 후기에 일어난 ‘개신유학(改新儒學)’이라고 하겠습니다. 상고사에 대한 것은 종래의 부족국가``─``부족연맹``─``고대국가의 개념과 용어가 가지는 문제점을 들고, 성읍 국가설``─``영역 국가설을 토대로 삼환과 삼국의 국가형성 문제를 재검토했으며, 일련의 논문들을 임나일본부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천관우 선생은 언론인, 국사학자, 정치인(민주투사로서)의 세 방면에서 크게 활약한 업적을 남겼지만, 문학가 특히 수필인으로서는 의식적으로 활동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은 신문계에서 단평短評의 명인으로 손꼽히면서, 한국일보의 ‘메아리’와 조선일보의 ‘만물상’에서도 필명을 드날렸습니다. 그의 몇 안 되는 수필에서 그의 특장들이 잘 엿보이며, 오늘의 합평 작품인 ‘西部’의 문장에서도 물론 그런 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회 : 그러면 자유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강호형 선생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호형 : 문장 읽기가 편하고 격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정작 중요한 얘기는 다 못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당시에는 좋았지만, 요즘에도 좋은 평가를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병호 : 문단의 전환이 깔끔해서 잘 읽혔어요. 하지만 ‘아주 걱정이 안 되는 도리는 없었다’라는 문장은 좀 걸렸어요. 후생주택 촌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미국 서부라는 말로 연결했는데, 미국 서부의 직접적인 연결은 어색하나 ‘경찰관’ 같은 간접적인 표현은 좋았습니다. 거물의 생활 일면에 이런 순수한 정회가 있다는 점이 문학 작품으로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감동스럽습니다.

 

사회 : 암시적인 함의(후생주택)를 잘 얘기해 주셨습니다. 글 속에 나오는 후생주택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주택자금으로 건축된 십여 평짜리 공동설계 주택의 첫 케이스입니다. 강직하고 가난한 선비가 처음 집을 마련한 소박한 기쁨이 글의 행간에 잘 나타나 있지요. ‘양념 안한 순두부 맛’ 같은 글맛이 잘 드러납니다. 천관우 선생은 이 집에서 1991년에 별세했습니다. 살아 있었을 때의 명성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조용한 죽음과 장례였어요. 그래서 그의 인생은 글과 일치하는 생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최병호 : 직함이나 활동이 전혀 나오지 않고, 개인의 서정이 잘 드러나 있더군요.

김소경 : 제목이 좋습니다. ‘아침이 좀 늦고… 멀리서도 보인다’와 같은 일상의 표현들이 따뜻하고 좋게 느껴졌습니다.

정진권 : 환경이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반장이니 동적부니 하면서 사람이 사는 시스템으로 하나씩 갖춰가는 거지요. 다만 저는 이 글의 끝머리는 ‘멀디 멀다던 이 마을도… 서울의 서부가 정이 들어간다는 것일까’라는 문단으로 결론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 작품의 결론 ‘아무리 먼 곳이 아니라고 마음을 먹어본들 별수가 없이 먼 서부인가 보다’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따뜻하게 느껴지는 작품이긴 했어요. 그런데 저는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사회자께서 왜 이 ‘西部’를 ‘문학 작품으로서의 수필로 보기 어려운 한계’를 지녔다고 언급했는지 궁금합니다.

 

사회 : 오늘날 문학 작품으로 수필을 쓰는 그런 분들의 안목으로 볼 때 그렇게 해석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진권 : 글쎄요. 문학이냐 아니냐는 문장의 질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장르 문제일 텐데…….

구양근 : 초창기의 작품들은 대개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데, 이 작품은 현대 수준에 가까이 있는 좋은 문학적인 수필이라고 봅니다. 혼자 속으로 놀랐습니다. 다만 철학이나 사상과 같은 다른 것과 연결시켰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서부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사회 : 연신내에서 불광동 쪽으로, 지금 그곳에 가까이 사시는 오경자 선생께서 한 말씀해 주시지요.

오경자 : 글쎄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1952년과 1962년도에 살긴 살았지만…….

김진식 : 저는 제목을 왜 ‘西部’로 했을까, 서울의 서대문구, 서쪽이라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역사학자가 쓴 것치고는 너무 소시민적인 모습이 보이며 개인적인 습성을 나타내어서, 혹 유가적인 것을 표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어요. 언론인으로서의 경직성을 무장 해제하고, ‘인간 천관우’의 모습을 그려낸 여과된 글이죠. 메시지보다는 자기의 얼굴을 정직하게 그려내면서, ‘평범한 인간’을 그려낸 것에 의미를 두어 친근하게 느꼈습니다.

 

사회 : ‘西部’라는 제목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한 번 토론하기로 하겠습니다. 또 다른 의견은 없으신가요?

이태동 : 저는 이것이 문학이 아니고, 여적이나 편지글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문학이라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문학입니다. 역사학자의 잡문을 연구하러 온 것이 아니지요. 사실 이분을 존경하고 특히 붓글씨도 좋지만, 순수한 문학 가치가 있는 것을 토론해야 한국 문학 수필의 격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름이 없는 수필가라도 좋은 수필을 찾아야 합니다. 문학적으로 별로 가치가 없는 글을 가지고 자꾸 얘기하려니까 참 어렵네요.

신현복 : 수필적이지 않고 문학적인 문장이나 어휘가 아니며, 너무 평이하고 설명적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박하며 인간적 냄새가 나는 글이에요. 저도 주택으로 이사를 해서 그런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송규호 : 현재에는 모든 게 달라져서 실감이 안 날 겁니다. 이 작품이 수필이라고 했을 때에 외적인 생활, 환경 등등은 너무도 친절하게 잘 나타나 있어요. 사실 낱말의 선택과 조직은 요즈음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 더 순수성이 있다고 봐요. 그래도 작품 전체로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변해명 : 아마 천관우 선생에게는 이 집이 처음이자 끝일 거예요. 이 집에 후배들을 불러서 먹이기를 잘했다고 들었어요. 세상의 돈과는 거리가 먼 선비적 기질을 가지신 분이, 집을 하나 가져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나 봐요. 울타리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별도 쳐다보고 하면서 일상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맨 끝에 ‘북한산 서쪽 끝 줄기… 그 마을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마음을 자제하며 겸손하게 집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영자 : 저는 이 작품에 문학성이 없다고 하는데 약간 화가 나네요. 처음 부분에서는 자연을 아끼고 동경했던 마음을 쓴 것이고요, 맨 마지막 장에서 서울을 피하고 자연으로 가려고 해도, 또 서울이 침범이 된다는 결론을 딱 내렸는데, 작가의 의도는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봅니다. 다만 언론인이라서 그런지 문장의 흐름이 운율적으로는 맞아떨어지지만, 문법적으로는 잘 안 맞습니다.

고임순 : 제목에서 호기심이 생겼어요. 한국의 서부 개척은 어떻게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글을 읽고 있으니까, 마치 제가 그 시절 거기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 친구가 거기에 살았는데 당시 시어른을 모시고 한옥 문간방에 살던 저로서는, 그 후생주택이 행복한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여서 매우 부러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사실 당시의 후생주택은 크고 좋은 곳이었습니다. 집을 마련한 기쁨으로 쓴 것입니다.

김시헌 : 역사학자라 그런지 마치 인간이 걸어온 역사를 압축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한 西部는 아무것도 없는 무인지경의 땅과 비유되는 것이라고 보여요. 제목에 매력이 있습니다.

 

사회 :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에 접근하는 시각이 참으로 각각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각자 자기 눈에 맞는 도수의 안경을 쓰고 글을 읽는 게 아닌가 싶군요.

그러면 이제 나머지 세 분 지정 토론자께서 작품론을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우선 유혜자 선생께서 발표해 주시지요.

유혜자 : 저는 ‘西部’라는 제목에서 서부 영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시내에서 먼 교외에 새로 생긴 동네에 이사한 기록문 같아서 강한 감동이나 주제는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장에 안정감이 있고 실감나는 묘사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읽을수록 친근하고 잔잔한 감동이 생겨났어요.

처음엔 멀고 황야 같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집이 늘어 마을이 생기고 그 마을 사람들이 적응해가는 모습이 실감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긍정적인 품성과 인생관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과 집을 꾸며가는 과정이 점층적으로 묘사되어 독자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인생의 원숙한 경지에선 가난한 월급쟁이로서의 불평이 없습니다. ‘여기도 시골 아닙니까’로 불편한 점을 간접 표현한다든지,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조금 서글펐다’로 압축해 놓은데서 연민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이웃과 사회에 대한 비판도 없죠. 수식 없고 거리낌없이 쓴 글이기에 구수한 여운을 남겨도, 자기 개인 이야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없는 듯해요. 생활환경이 바뀐다고 의식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조그만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기개가 느껴집니다. 자연의 이해, 인생의 해석이 동양정신에 근간을 두고 있지 않은가 보여집니다.

어려운 어휘가 없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스럽고, 품격이 높은 좋은 수필입니다. 군림하지 않고 억지로 잘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없어서 더 멋집니다.

특히 전개가 자연스럽고 소탈한 가운데에 생활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맛보려는 심정을 그려, 수필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목일 : 언론인이 쓴 수필은 명쾌하며 군더더기가 없고 주제가 선명하고, 핵심을 짚는 특성이 있습니다. ‘西部’는 사람이 살던 마을이 아닌 미국 서부의 개척지처럼 새로 건설된 후생주택 마을로 이주 정착하는 단계와 모습을 기록한 이주기입니다. 주로 기록적 차원에 중점을 두어서 수필의 의미부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삶의 변화에 대해서 느낌이랄까, 새 출발에 대한 불편과 낯설음이라든지, 신설 마을에서의 모습에서 정듦, 적응, 익숙의 단계를 거쳐 길들임, 안정과 조화의 세계로 바뀌는 느낌이 짙습니다.

마을의 공동체적인 모습을 자신의 삶과 함께 그리고 있어요. 정리되어 가는 모습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린거죠. 작품 자체보다는 작가의 삶의 내부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소시민적인 취향을 보이는 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문체적 특성을 이 글의 ‘종결어미’를 통해 분석해 봤습니다. 앞부분의 문단에서 ‘생각을 겨우 갖게 된 것이다, 생각했다’ 등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쓴 것이고, ‘탐스러웠다, 시원스러웠다, 서글펐다, 새삼스러웠다’ 등은 주관적 느낌으로 피력한 겁니다.

중간 문단들에서 ‘생겼다, 놓았다, 돌았다, 터다’ 등은 새로운 삶의 환경과 상황 변화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느끼고 대처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고, ‘떳떳한 동민이 된 것은 물론이다,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수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에서는 공동체 삶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생겼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가까와 온 것이다, 안 될 것이다, 들어가는 것일까, 보이는 것이었다, 골짜기였던 것이다’와 같은 단정적이고 의문적인 종결어미에서는 삶의 발견과 지혜, 여유를 엿볼 수 있어요.

마지막 결미는 ‘먼 서부인가 보다’라는 의문적 긍정으로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부, 그 속에 속해 있음과 삶의 긍정을 나타낸 것이죠. 그 당시의 상황을 잘 그렸고, 수필로서도 잘 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선모 : 이 수필을 처음 읽을 때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읽어보았습니다. 누가 쓴 글인지 몰라도 글이 좋으면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서술과 묘사가 조화된 경수필이며 작가의 체험이 잘 드러난 수필입니다. 시내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 이사한 집을 소재로 삼아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중앙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소회를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까닭은 ‘멀다’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아무리 먼 곳이 아니라고 마음을 먹어본들 별수가 없이 먼 서부인가 보다’라는 탄식조의 문장에서 서글픈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니 지사 호걸풍의 작가가 난생 처음으로 내 집을 사서 이사한 기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글이었다니, 작가와 독자와의 간극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느낌이 같을 수는 없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글을 쓸 때마다 고심하게 됩니다.

문장이 비교적 쉽고 간결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적절히 이용하는 수법이 능란하고,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전원생활이 주는 작은 기쁨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마을 형성 과정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생생히 묘사하여 작가가 이사하여 정착하는 과정을 독자가 직접 본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문장 중에 ‘아주 걱정이 안 되는 도리는 없었다’, ‘아침을 새겨’와 같은 표현은 어색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자신이 잘 드러나 있으며,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담백한 문장은 읽을수록 맛이 납니다.

 

사회 : 세 분의 특색 있는 작품론을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마무리 토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이응백 선생님께서 한 마디 해 주십시오.

이응백 : 여유롭고 소박한 글이에요. ‘서울로 이사 간다더니 여기도 시골 아닙니까’, ‘몇천 평은 될, 넓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것이 시원스러웠다’, ‘솥을 걸어서 꺼멓게 그을은… 탑승객들이 찾아오는 골짜기였던 것이다’에서 보여지듯이 말이에요.

허세욱 : 작품 선정에 대하여 사실 저는 읽고 감동했습니다. 이 글은 여적도 아니고, 언론인의 수필도 아니고, 민족투사의 수필도 아닙니다. 상당히 좋은 점은 ‘현대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프리즘에 여러 가지 색깔이 비추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고통과 기쁨, 신선함이 한꺼번에 와요.

글의 구성을 보면, 양분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서부의 개척성에서 동부의 번화한 도시로 가는 겁니다. 여기에서 서부의 뜻이란 개척성과 공간적으로 멀다, 유배지적인 소외감을 말하는 것으로 보여요. 둘째는 ‘隱과 現’과 ‘野와 都’입니다. 이분은 역시 거기에 있으면서도 기회가 되면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을 비치는 거죠.

김태길 : 천관우 선생은 소년 시절 글을 잘 쓰고,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반가움을 느꼈습니다. 내가 본 인상으로는 기가 세고 자존심이 천정부지로 높은 분입니다. 그런데 수필을 쓸 때는 그런 점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좋더군요.

다만 아쉬운 것은 진심을 다해 쓰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좀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에요.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이런 분께도 이와 같은 일면이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사회 : 천관우 선생은 언론 현장의 중심이고 동시에 동아일보라는 격전지의 야전사령관 격이었으며, 그 체격 또한 야전사령관답게 큰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 체격에 맞지 않는 잔잔한 그의 미소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그가 풍기는 겉모습과는 달리 ‘인간 내면은 다 같다’는 생각을 갖도록 이 글이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언론인의 기개와 설득력이 있는 문장으로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끌려가는 정권을 질타하던 겉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인 인간 천관우의 내면을 잘 드러내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토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 오신 지정토론자 네 분과 열띤 토론으로 합평회를 이끌어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