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카데미 제10회 강좌 요지>

 

 

영미 수필의 어제와 오늘

 

           (문학평론가·서강대학 명예교수)              이태동

편집자가 필자에게 준 제목은 프랑스 문학의 경우처럼 ‘영미 수필의 특성과 동향’에 대한 개괄적 접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이러한 제목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창작이란 이름으로 수필을 쓰고 있지만, 대학에서 소설과 시 그리고 비평만을 공부하고 강의해 왔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는 ‘빅토리아 시대 산문’(창작이지만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논문에 가까운 글)을 제외하면, 한국의 대학에서는 물론 영미의 대학에서도 수필 장르를 교과과목으로 설정하지 않을 만큼 대학에서 배우는 문학 텍스트에 정전正典이 된 수필이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 수필의 문학성을 높이기 위한 편집자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영미 수필의 특성과 경향을 밝혀보고자 한다.

지난 봄호에서 정명환 교수가 프랑스의 essai라는 장르를 우리나라의 수필로 번역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듯이, 같은 서양 문화권에 속하는 영국과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essay란 말도 ‘수필’로 직역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저쪽에서 쓰는 ‘에세이’라는 말은 ‘수필’이라기보다 훨씬 포괄적인 글쓰기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단에서 ‘수필’이라는 장르는 교양 있는 사람이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기성찰과 사물 및 자연현상에 대한 관조(觀照) 등을 높은 경지에까지 끌어올려 표현한 시적인 산문이다. 그러나 수필은 서구의 ‘에세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 수필 문학의 새로운 전통을 마련했던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이양하, 피천득 그리고 김진섭과 같이 한문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외국 문학, 특히 서양 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나무’와 ‘신록예찬’과 같은 탁월한 선구적인 수필을 쓴 이양하 선생은 동경대학에서 19세기 인상주의 비평가이자 탁월한 산문작가인 월터 페이터에 심취해서, ‘페이터의 산문’이란 글은 물론 ‘프루스트의 산문’을 써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 역시 19세기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에 대해서 글을 쓸 정도로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인연’이란 작품의 주제가 서머셋 모옴의 단편인 ‘빨강머리(Red)’의 주제와 크게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그의 수필이 얼마나 영문학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독문학자인 김진섭 선생의 글도 위에서 언급한 두 분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 문단에서 쓰고 있는 ‘수필’에 가장 가까운 영미의 문학 장르는 단순히 ‘essay’라기보다는 ‘familiar essay’(개인적 에세이 혹은 수상록)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들이 영미 수필가를 생각하면 보통 프란시스 베이컨과 찰스 램 그리고 펠프 에머슨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들이 글쓰기에서 사용한 장르는 16세기 미셸 몽테뉴가 만들어 발전시켜온 ‘개인적 에세이’ 형식이다. 그러나 베이컨은 개인적인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의 유일한 선임자인 몽테뉴를 모방할 의도는 없었다. 그는 법관이었기 때문에 그 자기 발견이나 미지의 사상을 탐색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세속적인 지혜를 나타내는 법복(法服) 아래 개인적인 ‘자아(self)’를 감추고, 마치 분별 있는 독단적인 행정관처럼 세상 이치와 분별 있는 실제 행동에 대한 생활철학을 잠언(箴言) 형식으로 나타내었다. 간단히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교활한 자는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자는 학문을 찬양하고, 현명한 자는 학문을 이용한다. 학문은 학문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의 용도를 가르쳐주는 것은 학문 이외의 지혜, 관찰에 의해 획득한 학문 이상의 지혜이다.’`─ 『학문에 대하여』

‘가장 저급한 미덕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중급의 미덕은 그들의 마음 속에 놀라움과 감탄을 일으킨다. 그러나 최고의 미덕에 대해서는 그것을 알아보는 감각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다.’`─` 『칭찬에 관하여』

 

에머슨 역시 몽테뉴의 영향을 받아 ‘경험’이란 에세이에서 “인간의 내면적인 전체가 참된 자아이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삶은 마치 ‘염주처럼 일연의 무드’이기 때문에 기질과 ‘성품(temperament)’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19세기의 찰스 램은 ‘몽테뉴 에세이’ 전통을 이어받아 개인적 에세이를 썼다. 그가 쓴 ‘엘리아의 에세이’의 대부분은 조용한 가운데 회상한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감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테면, ‘꿈 - 어린이`:`몽상’과 ‘오래 된 도자기’ 같은 유명한 작품들은 유년 시절 경험의 추억을 더듬는 형식으로 쓴 개인적인 에세이다.

이 글들은 비록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 쓴 글이지만, 발레리나였던 할머니가 모든 것을 파괴하고 허물어뜨리는 시간 속에서도 ‘암’과의 투병을 하면서 인간 정신과 위엄을 잃지 않고 장렬한 죽음을 하는 모습과 ‘잃어버린 가난’ 속에 담긴 낭만적인 추억 등은 그것이 지닌 도덕성(morality) 때문에 불멸의 고전(古典)으로 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20세기 초기인 모더니즘 시대까지 월터 페이터의 아름다운 스케치인 ‘집과 소년(The Child in the House)’과 함께 문학사에서 그 자리를 유지하면서 대학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쓰여진 ‘에세이’는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개인적인 내면세계나 혹은 신변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시적인 스케치나 혹은 우주에 숨어 있는 비밀과 존재의 모순된 구조 등을 우화(寓話)적으로 탐색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리고 이러한 글들의 대부분은 전업 수필가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나 D.H. 로렌스 그리고 G.K. 체스트턴 같은 작가와 시인들에 의해 쓰여졌다. 20세기 초기에 나타난 에세이의 변화된 형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체스트턴(1874~1936)의 에세이집 『대단히 사소한 일』에 실려 있는 ‘한 조각의 분필’을 살펴보자.

이 작품의 길이는 찰스 램의 작품처럼 비교적 짧지만 그 내용은 우주적인 차원에서의 경이로운 진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발견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형식은 물론 ‘에세이’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화자話者는 일인칭은 ‘나’로 되어 있고 개인적인 경험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신변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지 않고, 흰색의 스펙트럼이 지닌 신비로운 우주의 오묘한 구조를 환상적 시각과 우화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글의 화자는 하늘이 푸르고 햇빛 찬란한 일요일 아침, 창조적인 노역(勞役)의 황혼 빛인 나무색 갈색 종이 위에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여섯 개의 분필을 호주머니에 넣고 야외로 나간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주변의 풍경이 물결치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신이 그린 자연의 색채에 나타난 신비에 대해 놀라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흰색 분필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했지만,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나타나 있는 모든 색채가 흰색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가 위치한 영국 남쪽 전체가 ‘한 조각의 분필’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의 명상 속에서의 발견은 흰색이 담고 있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도덕적인 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즉, 그는 도덕이란 흰색처럼 악(惡)의 부재(不在)나 도덕인 위험을 피한 순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비 역시 잔인하지 않거나 복수나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존재 양상은 물론 모든 우주적인 현상 및 진실의 양면 구조를 확인한다.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사막에서 모래시계에 채울 모래를 찾는 것이나 바다 한가운데서 소금물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잠언에 가까운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적인 변천과 함께 인문학의 핵심인 문학도 개인의 정서적인 산책에 머물기보다 사회문제 등과 같은 ‘거대 담론’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자, ‘개인적인 에세이’ 형식은 퇴조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21세기인 지금에 와서 한국인인 우리가 수필로서 이해하고 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진 글은 대학 교재와 같은 문학사를 정리한 책이나 지면에서 완전히 사라져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아직도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인 에세이’는 필자가 80년대에 번역한 미국의 수필가 셀레스틴 시블리의 ‘작은 축복들’과 같이 쓰여지고 있겠지만,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비평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문학사에서 언급될 만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다. 비록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도 영미 문학계에서 적지 않은 ‘수필’ 내지 수상록이 쓰여졌을 것이지만, 그것들이 정전(正典)으로 평가되어 훌륭한 글로써 문학사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미셸 몽테뉴 ‘에세이’가 지닌 문학적인 무게로 보아,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포스트 모던 시대의 글들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거대 담론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 인간정신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자아의 경험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에세이’가 아무리 짧은 글이더라도 그것이 문학 작품이 되려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나타난 치열한 자기 성찰이나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말하지 못한 새롭게 발견한 삶의 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인간의 꿈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 즉, 도덕성을 격조 높은 필치로써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서구 문학사에서 미셸 몽테뉴가 셰익스피어와 비견할 수 있는 ‘위대한 에세이스트’로 확고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위의 사실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에세이’가 어떠한 문학적인 내용을 그 속에 담는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