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벽

 

                                                                                 鄭木日

사방으로 노을이 눈앞에서 타오르고 있다. 이런 걷잡을 수 없는 자연 광경을 대할 때는 경탄 외에 달리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언어로선 신이 펼치는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없어 망연자실한 채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대낮인데도 갑자기 노을 속으로 함몰해 들어간다. 땅 밑으로부터 하늘 높이 거대하고 장엄한 벽이 치솟아 있다. 짜릿하고 황홀한 노을의 벽이다. 태고의 침묵과 명상 속에 노을은 화석이 돼버린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때를 맞춰 숨을 정지시키고 눈을 감아버린 것일까. 바위들이 붉은 빛을 토해내 만든 노을을 본다. 신이 돌기둥들에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그려놓은 것일까.

나는 언덕 위에서 눈 아래로 펼쳐지는 거대하고 신묘한 노을의 벽을 바라보고 있다. 노을이란 저녁이 오기 전 태양의 마지막 정열이 남겨놓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루의 신화이며 수채화 한 폭이다. 노을은 아름다운 고별사 같다.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공허와 적막이 사방을 채우게 된다.

노을을 바라보고 탄성을 자아내지만, 그 속엔 비감과 허무가 깃들어 있다. 아름다움은 순간에 불과하다. 꽃이 지지 않고 미인이 늙지 않고 노을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생명이 내는 광채요 향기일 것이다. 보석이 아무리 아름답고 값지다 해도 흔한 풀꽃과 비교할 수 없다.

노을에 끌리며 감탄하는 것은 이별의 미학이 아닐까 한다. 사라지는 것들의 영혼과 진실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 집착, 그리움을 접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다. 노을처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잠시 사라질 노을을 애석하게 여긴 하늘이 거대한 협곡에 돌기둥을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 세우고 사라지지 않는 노을을 그려놓은 것일까. 영원의 화폭에 그려진 노을을 그랜드 캐년이라 부르고 있다.

나는 이곳에 온 것은 두 번째다. 10여 년 전 경비행기를 타고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을 때는 마치 거대한 도끼로 계곡을 찍어내어 속살을 보여주는 듯했다. 계곡은 신의 도끼날에 파여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처절하고 짜릿한 아름다움이었다. 땅에 내려가 위로 올려다보니, 거대한 돌기둥들이 하늘 높이 치오르며 불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기가 나지 않는 불꽃 속에 갇혀버린 듯한 아찔함을 느끼던 기억이 있다.

2천1백 미터 고원에 있는 전망대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그랜드 캐년의 모습을 다시 본다. 모든 게 보는 각도와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기후와 날씨, 보는 이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랜드 캐년은 미국 서부지역의 최대의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1919년 미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연 그대로 놓아두자’고 해서, 자연 상태대로 보호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알게 해 주려는 배려였다. 땅이 품은 태고의 침묵과 침식에 의해 변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랜드 캐년은 땅의 깊이만이 아닌 하늘과 세월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골짜기 밑으로 물길이 보이고 풍우와 침식으로 움직이는 땅의 모습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붉은 빛 노을을 뿜어내고 있지만 지층마다 적(赤), 흑(黑), 갈(葛), 홍(紅)색을 띄고 있다. 노을 빛깔 같기도 하며 불의 빛깔 같기도 하다. 또한 단풍잎의 빛깔 같기도 하다.

한 지층의 빛깔은 몇천 년, 아니 몇만 년에 걸려 이뤄진 것이다. 몇만 년의 빗방울과 햇빛과 바람과 풀벌레 소리와 노을빛이 잠겨 있으리라. 나무의 목리문(木理紋)처럼 땅도 몇천 년, 아니 몇만 년을 한 지층으로 세월을 응축시켜 아름다운 빛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지질학자들은 이 지층을 보고서 땅의 나이를 알게 된다고 한다. 지층이 안고 있는 시·공간의 숨소리와 체온이 간직돼 있는 그랜드 캐년, 그 노을의 벽을 바라보며 눈물이 솟구쳐오름을 느낀다. 몇만 년 간의 체험을 뭉뚱그려 사라지지 않는 장엄하고 황홀한 노을을 그려놓은 것은 아닐까. 땅의 신성과 영감이 우러나오고 있다. 땅이 가진 신비만이 아닌 듯하다. 하늘과 대화하며 얻은 영감과 느낌을 빛깔로 완성시켜 놓은 것이다.

그랜드 캐년에서 땅이 완성해낸 빛깔의 오묘하고도 무한한 감흥에 취한다. 눈을 감은 채 몇만 년씩의 지층들이 서로 노을빛 대화를 하는 게 아닐까. 그랜드 캐년의 아름다움은 몇만 년씩의 지층들이 뿜어내는 생기(生氣)의 빛깔, 그 빛깔들의 앙상블이 아닐 수 없다. 돌기둥의 온갖 형상은 노을빛 속에서 기기묘묘하며 땅에서 보면 돌출이지만,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깊이로 존재한다. 퇴적층의 붉은 나이테를 보면서 장엄의 벽, 황홀의 벽, 깊이의 벽을 내려다본다. 10억 년의 연륜을 가진 지층이라고 한다. 나는 10억 년의 세월과 대면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태고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물과 바람의 흔적을 본다. 사람의 길과 짐승이 다닌 길이 보인다. 바위 사이로 간간이 향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랜드 캐년은 노을의 벽이다. 폐쇄의 벽이 아니라 영원 속에 열려 있는 움직이는 벽이다. 순간 속에 사라지는 노을을 영원 속에 간직해 둘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것들은 순간 속에 퇴색되어 사라지는 것이지만, 영원 속에 노을의 벽을 만들어놓은 것을 본다.

노을의 벽은 순간의 벽이 아닌 영원의 벽으로 황홀한 숨을 내쉬고 있다. 나도 잠시 노을의 벽이 되어 긴 숨을 내쉬어본다. 순간을 살며 사라질 것이지만 뒷모습은 노을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