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종

 

                                                                                   박영자

지금 아이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나는 한평생 함께 할 반려자를 내 뜻에 의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 뜻에 따라 결혼을 했다. 요즈음 말하는 마마 걸이었는데 어머니 뜻을 거역하는 것은 푸른 세월 혼자 된 어머니의 삶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여겨 순종만이 효라고 생각했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여자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결혼해야 한다며 어머니는 사위 될 사람을 서둘러 보셨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던 집안은 갑자기 문턱이 닿도록 중매 할머니가 들고나고 집안에서는 내 신랑감 찾기에 비상이 걸렸다. 당신 딸이 클레오파트라라도 되는 양, 열 손가락이 모자라게 조건도 많았다. 맏아들은 제사를 지내야 하니 안 되고, 돈은 없어도 되지만 공짜를 바라는 정신이면 안 되고, 학벌은 중요하지 않으나 현실감이 없으면 안 되고……. 시집 갈 당사자는 말이 없는데 신랑감을 보고 오는 날이면 방안은 왁자하여 한여름 밤 매미 울음소리만큼 시끄러웠다. 얘기를 다 듣고 나면 어머니는 조건이 좋아도 제사를 지내야 하는 집안이면 사전에 거절하셨다. 어머니의 눈높이가 높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집안이 엄격하여 그 집 며느릿감으로는 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애비 없이 키운 자식 표 낸다며 방문을 열고 닫을 때는 뒷걸음으로 나가라시던 어머니도 아버지 없이 키운 빈자리가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5남매 중 셋째라는 자리가 있다는 이모의 말을 듣고 사윗감을 보기도 전에 어머니는 좋아하셨다. 만나보고 난 뒤에는 나보다 더 좋아하시더니 일사천리로 결혼 날짜가 잡히고 살 집이 얻어졌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정해진 결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신혼 초에는 깨가 쏟아진다는 결혼생활은 천만에 아니었다.

결혼을 하자 남편은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를 피하기 위해 까다롭게 달던 조건은 제 꾀에 제가 당한 꼴이 되었다. 아이를 업고 전을 붙이랴 산적을 꽂으랴 지푸라기 같은 도라지, 고사리를 담가두고 삼 일을 기다려도 불지 않아 쩔쩔 매었어도 어머니는 도와주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위에게 저 아이는 고집이 세니 애초에 잡아야 한다는 귀띔까지 주었다는 것이다. 결혼 전 그토록 조건을 달던 어머니가 여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무감각이셨다. 행여 무슨 일이 있어 내 집에 들르시면 사위 밥은 서서 먹고 아들 밥은 누워서 먹는다며 볼일을 끝내고 문전에서 뒤돌아가셨다.

‘아침마당’ 시간을 TV 화면에서 보았다. 나란히 부부가 앉아 지나온 삶을 이야기 하는데 혈기 있던 세월을 마음대로 보낸 남편의 표정은 기가 죽어 있다. 그 반대로 부인의 표정은 참아내기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이 한 시간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양, 전 국민이 보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미움과 원망을 부끄러움없이 토해낸다. 그럴 때면 나는 저 부부들은 연애 결혼이었을까, 중매로 한 결혼일까? 혼자 궁금해진다. 함박웃음을 머금고 여자 아나운서가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아내는 다시는 만나지 않겠노라 손사래를 친다. 그 질문을 내게 물어본다. 선뜻 대답은 나오지 않지만, 45년간 순종하며 지나온 세월이 헛되지 않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가 정년기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도 어머니처럼 내 뜻에 의해 사윗감을 선택하고 싶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해 보았다. 어느 날 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어미는 결혼할 나이가 들었을 때 어머니가 정해준 짝을 찾아 모성으로 살아 예까지 왔다. 너도 나처럼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색을 하고 반대할 줄 알았던 딸은 다소곳이 듣고, 어머니가 보시고 자신이 택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충안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 딸의 대답은 달랐다. 어머니의 세대는 모성으로 사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식 일에만 마음을 쏟았지만, 자신은 그런 삶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물질의 체계가 아니라 의식의 체계라고 주장한 윌리엄 제임스(W. James)의 학설에 공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가사와 자기 일 두 가지를 다할 수만 있다면 이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딸을 보며 나는 내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딸집 문전에서 돌아서는 어머니는 될 수 없었다. 네 살짜리 아이를 아침에 데려오고 저녁에 데려다주고, 돌을 지난 딸을 업고 시장을 봐주고, 오늘은 쉴까 하고 누워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어머니 아이가 열이 많아 병원을 가야 해요.”, “유치원 등록이 내일이 마감일 이래요.” 그러는 나를 보고 친구는 내가 손녀와 함께 춤을 추고 다닌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디 나만의 일이던가. 유치원에 가면 아이를 데리고 온 할머니가 엄마보다 더 많다. 아들 가진 부모는 길에서 죽고 딸 가진 어미는 부엌에서 죽는다는 우스개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하여 입가에 웃음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