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으로 피우다

 

                                                                                      정부영

끝없이 넓게 펼쳐진 하늘이다. 칠흙 색과 검푸른 색이 바탕색으로 칠해졌다. 거기에 색색의 물감으로 되쏘는 불빛, 한 점에서 수없이 많은 점으로 퍼져나가는 불꽃, 얇고 투명한 한지에 물감이 퍼지듯 순식간에 번져나가는 불의 원심을 본다.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이어지며 그 매듭을 기리는 축제의 한마당, 어김없이 가는 해를 전송하며 새로 맞이하는 순연한 마음을 불꽃으로 대신한다.

한반도가 아닌 인도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된 지 세 번째가 된다. 어쩌다 이곳에서 끝과 시작을 함께 하게 됐는지……. 차가운 바람과 백설 속에서 맞이하는 새해가 아니라 이글거리는 햇빛과 신록 속에서 맞게 되어 사계절이 아닌 세 계절을 사는 기분이다. 세월이 자꾸 겹쳐지니 이제 가는 것은 더욱 아쉽고 지는 것은 가슴에 여울을 만든다. 시간을 잡고 싶기도 늘이고 싶기도 하다. 새로운 한 해에 무겁고 버거운 것이 아닌 단순하고 순수한 염원을 담고 싶다. 이렇게 한 구비를 넘어갈 때는 지나갔던 크고 작은 일들이 다시 생각나고 가족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지와 친구가 더욱 그립다. 내게 정을 주고 내가 마음을 줄 수 있는 이가 많다는 게 거듭 축복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사랑의 정열을 불꽃의 정염으로 표현하는 불꽃놀이가 오늘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한껏 부풀어진 가슴을 불꽃처럼 펼쳐보려고 옥상으로 올라가 본다.

하늘 높은 곳으로 한 점 쏘아올린 불의 촉, 그 촉은 잠시 머물지도 않고 불의 화신으로 퍼져나간다. 그 무늬도 각양 각색이다. 부챗살처럼 퍼지기도 하고 도톰한 국화 꽃잎처럼 가닥지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꽃잎이 벌어져 꽃술이 보이는가 하면 가닥진 나무뿌리처럼 보인다. 별똥별처럼 떨어지기도 은하수처럼 띠를 이루기도 한다. 역시 불의 모습도 자연 형상을 닮는가 보다.

불꽃은 달이 아니라 태양의 모습이다. 환하게 빛나는 태양의 얼굴이다. 그 얼굴 중에서도 저녁 해라기보다는 강한 햇살을 내리꽂는 아침의 해이다. 물이 달과 야합을 한다면 불은 태양과 맞장을 친다. 달은 차고 기울 때마다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가고 태양은 뜨고 지면서 열기와 냉기를 남긴다.

그러나 이글거리는 태양과 달리 하늘에 쏘아올린 밤의 불꽃은 뜨거운 열기가 없다. 하늘 바탕에 여러 무늬의 정염을 보일 뿐 냉랭한 대기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흔적도 남기지 않는 불의 소멸, 사그라지는 불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순간의 황홀을 지키는 불꽃놀이는 그래서 화려한 찰나의 놀음인 것이다.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처음은 찰나의 순간이다. 시간의 매듭, 그 찰나의 순간에서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많은 생각이 뒤바뀐다. 은퇴 후 한 걸음 물러나버린 우리의 생활과 잡히지 않는 걱정과 염려로 자식을 바라보게 되면서 때론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고 마음도 가닥이 잡혀지질 않곤 한다. 남편은 자꾸 젊어져가는 마음과 조금씩 사그라지는 육신과의 부조화 사이에서 접전을 벌이는 듯하다. 나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불꽃같이 퍼지는 생리적인 증세와 타버린 재처럼 번져가는 우울의 계곡에서 나이의 굴곡을 느끼곤 한다. 하늘 높이 오색 영롱한 빛으로 퍼졌다가 잠시 머물지도 않고 떨어져 사그라지는 불꽃의 한 생이 한없이 짧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옆에 서 있는 딸에게서 한참 피어오르는 젊음의 열기가 전해온다. 나의 착잡한 심정을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해 본다.

불꽃놀이가 절정에 이르렀다. 주위가 형형한 색으로 빛난다. 내 기분도 고조되기 시작한다. 역시 불꽃은 그림자 없는 기쁨의 빛인가 보다. 불꽃축제는 인도 민족이 매우 즐기는 놀이 중의 하나다. 이들은 수많은 신들을 섬겨서인지 아니면 놀이 문화가 다양하질 않아서인지 축제의 날이 유난히 많다. 가족이나 친구, 이웃끼리 어울려 환담을 나누며 노래하고 춤추며 불놀이를 한다. 오늘도 흥에 겨워 시 전체가 흔들릴 만큼 여기저기서 불꽃을 쏘아올리며 시끌벅적하다. 불꽃이 정념을 토하며 와르르 쏟아진다. 불꽃의 껍질이 남긴 매캐한 연기가 대기 속으로 퍼지면서 뿌옇게 시야를 가로막는다. 불빛 너머로 사물들이 얼비친다. 그것조차 흥겨운 축제의 한마당으로 보인다.

쏘아올리는 소리와 모양 또한 만만치 않다. 천둥 소리와 번개라고나 할까. 음과 양의 자연의 소리가 공중에서 맞부딪칠 때 무서운 굉음을 내며 한순간 빛이 발생하듯이 불꽃 그 마력과 정염을 발산하는데 소리를 동반한다. 같은 빛이지만 자연의 빛은 빠르고 강렬하고 인위적 빛은 여리고 요염하다.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도 이를 즐기는 민족 중의 하나란다. 우리나라에서는 8월 중에 ‘세계 불꽃 축제’를 3년째 열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6·3빌딩을 배경으로 두고 강과 밤하늘이 무대가 되었다. 참가국으로는 한국, 일본, 호주, 중국 등 몇몇 나라다. 세계 대회인 만큼 여기보다 훨씬 다양하고 성대했다. 하늘 높이 꽃들의 향연을 벌이는가 하면 폭포수의 형상도 있고 별들의 닮은 꼴도 있다. 솔잎 같기도 침엽수의 섬세하고 올곧은 모양 같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꺼질듯 살아나는 형형한 반딧불이가 되는가 하면 날아다니는 도깨비불도 된다. 은하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가 하면 비행접시가 되어 신비롭게 떠다니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작품 중에는 원효대교 전체의 3분의 1쯤까지 나이아가라 폭포수를 닮은 불의 폭포를 만든 것이 많은 갈채를 받았다. 불과 물의 화합이라고나 할까. 물을 향한 우리의 희구나 염원도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강의 북쪽 둔덕에는 예술 사진을 찍으려는 카메라의 행렬이 둑을 이루었다. 찰나를 잘 포착하여 간직하려고 몇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우리도 때를 놓칠세라 한 공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끼리끼리 놀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뒤쪽 둔덕에 자리를 깔고 앉아 희희낙락거렸다. 저쪽으로 군락을 이룬 벌개미취가 불빛으로 더욱 푸르렀다. 불꽃이 하늘을 가를 때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손뼉을 치며 잠시나마 환상과 천상을 맛보는 듯했다.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두서너 번 갖는 불꽃 축제는 여름밤을 성대하게 꾸몄다.

우리는 환하게 피어난 불꽃을 순간 포착하여 인화하여서 액자에도 넣고 친척한테도 기쁨의 순간을 나누어드렸다.

우리의 전통놀이인 쥐불놀이도 희미해져가고 먼 산에서 기염을 토하며 타오르던 봉홧불도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러나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의 조명이 화려해지고 아름다워졌다. 다리마다 조명의 디자인도 다르고 불빛도 색달라서 한강은 새롭게 거듭난 것 같다. 이런 조명의 조화, 불의 조화에서 잠시 일상을 잊고 기쁨과 평화를 맛보곤 한다. 이것 또한 어두운 밤중 너른 한강 둔덕에 군락을 이룬 벌개미취의 자태, 별빛과 달빛에 반사되어 시리도록 푸른 빛을 내는 그 꽃이 주는 환상과 견줄 만하지 않을까.

폭죽 소리가 점점 잦아진다. 자욱한 연기와 매캐한 공기가 어둠을 감싼다. 집안으로 들어와 촛불을 켠다. 힌디신의 얼굴이 조각된 촛대에서 불꽃이 퍼져 집안을 아늑하게 만든다. 짧은 축제는 끝나고 긴 한 해가 조용히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