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의 초현실

 

                                                                                   조재은

어른들은 젊은이를 보며 좋은 시절이라고 한다.

그 시절 나는 어른들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생활과 생각이 안정된 부모의 나이가 부러웠다. 이상은 언제나 키를 넘어 이상의 높이보다 더 깊게 좌절했고, 욕망은 끓어올라 사방으로 뻗어 있는 길에 한 발짝 내딛고는 놀라서 발을 빼곤 했다. 과연 좋은 시절인가를 수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사는 딸 친구가 있다.

그 아이는 그림과 영화에 심취하고 있었지만 딸 셋의 맏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무역학과를 갔다. 그 아이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꽃잎이 하르르 날아다니고 푸른 잎 하나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졸업 후 영화를 안 하고는 못 견디어 영화 제작현장에 뛰어들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찍으며 너무 힘들어 털썩털썩 주저앉을 즈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이 미친 짓이 아니라 안식처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지만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결혼에 안주하지 않았다.

낮과 밤, 두 곳에서 죽도록 일하며 유학비를 마련해 영국에 유학을 갔다. 머리로는 공부하고 몸은 아르바이트 하고,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 먹는 것과 모든 것을 아꼈다. 공연을 본 후에는 감동으로 눈물 흘리며 자취방에서 라면만 끓여 먹어도 행복해 했다. 생활은 힘들어 얼굴에 뼈만 남아서도 밤하늘 검푸른 색이 몇 가지로 변하는지, 런던의 안개 냄새가 얼마나 신비한지를 전했다. 귀국 후에 미래의 인생 계획을 세우다가 잠시 꿈을 접었다. 남편의 시나리오가 멋진 영화로 데뷔하기까지 영어 강사를 하며 돕기로 했다.

노희경의 드라마에서 ‘젊어서 힘들겠다’란 말을 들으며 그 아이 생각을 했다. 지금 그 아이는 꿈이 현실에 용해되는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 꿈이란 알맹이가 생활의 거친 물결 속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며 휩쓸려가고 있는 중이다. 모호한 미래 앞에서 꿈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미로찾기 퍼즐 속에 그 아이가 있다. 미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때로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며 피 흘리는 험한 산길이다.

그 아이가 귀국해서 살 집에 대해 메일을 보내왔다.

 

…저희 집, 3층은 무형의 강한 표현력을 가진 음악을 품고 사는 제 동생 부부, 2층은 눈으로 만져지는 존재론적 표현의 영화를 꿈꾸며 사는 저의 부부, 1층에는 손으로 생의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사돈 부부가 삽니다. 그 풍경은 르네 마그리트의 중절모를 쓴 비슷한 사람이 수없이 그려져 있는 그림처럼 각기 다른 빗방울의 모습으로 한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차분한 성격에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이 많은 남편 방은 안정적인 풀색 벽지와 달빛 화이트 벽지를 발라 눈부신 하늘과 들을 만들었습니다. 제 방은 그리스의 화이트와 화려한 블루의 느낌을 사랑하는 저의 취향을 따라 트왈블루 벽지로 완성되었습니다. 연푸른 벽지 안에 어셔의 끝이 없는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작은 구조물이 있어 더욱 흥분되었습니다. 3층 주인집은 남산의 산장을 구현시킨 목재 패널로 인해 따뜻함이 있고 넓게 트인 창이 있어 늘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입니다. …

 

메일에 그려진 방 모습은 아름답다. 그보다 더 빛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그 아이다. 벽지 값과 고르는 과정을 아는 나는 자기 집을 평화로운 유럽의 맨션으로 표현하는 그 아이의 목소리에 가슴이 찡하다.

함께 사는 사람들도 그 아이를 닮았다. 일찍 결혼을 한 동생도 음악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꿈을 접고 부모가 하는 요식업을 도우며 집을 마련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하고, 남산동에 있는 작은 집을 대출받아 마련했다. 어렵게 수리를 하고 1층은 시누이에게 주고, 언니가 귀국하자 아주 싼 값에 전세를 주고 자기들은 급히 개조한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그 아이가 그곳으로 집을 결정하며 가장 좋아한 것은 창가에서 보이는 그림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아이 방의 작은 창을 열면 신세계백화점 외벽에 그려진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Golconde, 겨울비)’가 보인다. 그림을 보는 순간 온몸에 기쁨의 전율이 흘렀다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많은 이미지가 들어 있어 그 아이가 좋아하는 화가다. 그러나 집을 고르는데 창문에서 보이는 그림 때문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이 완성되면 어떤 명품과 상품이 들어올까, 물건 값은 어떨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아이는 공해로 찌든 도심 한가운데 공사 중인 건물을 가려 놓은 그림을 보고 감동한다. 힘든 현실에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을 간직하고 세상에 반항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눈물겹다.

현실과 싸우는 전쟁에서 이 아이의 무기는 닦여진 감성과 열정을 잠시 접는 지혜다. 산보다 큰 컵에 구름을 담고, 다리 위에 깊은 눈빛의 사자와 날개 달린 남자를 한 화폭에 그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과 현실에 살며, 초현실적인 생각으로 생활과 꿈을 조화시키는 아이와 닮았다.

모든 것에 흔들리며 마침표를 하나씩 찍는 시기에 느낌과 물음으로 살고 있는 젊음 ― 그의 현실과 초현실의 푸름이 슬프게 아름답다.

 

 

<현대수필>로 등단.(98년) 현대수필 편집장, 월간문학 편집위원.

한국수필학회, 한국문인협회, 국제 펜클럽 회원.

저서 『하늘이 넓은 곳』, 『삶, 지금은 상영 중』, 『시선과 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