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古宮)을 지키다

 

                                                                                     김 광

저녁 무렵 인사이동 발표가 있을 거라는 소식에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어 퇴근 후 주점에 앉아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는데 P시인이 인사이동 발표가 났는데 내 이름은 빠졌다고 전화로 알려온다. 굳이 이동을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인사철만 되면 술렁이는 관가의 풍속도에 출연하지 못한 게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뿐이고,

언제나 나를 받쳐주던 덕수궁을 떠나지 않아도 된단다. 하마비(下馬碑)를 지나서 길게 뚫린 벚꽃 터널에 다시 놀러와도 된단다. 중화전(中和殿) 품계석(品階石)의 말미에 서서, 두 손 합장한 채로 공손히 서 있어도 된단다. 화살나무 이파리에 눈살 꽂기도 하고, 미술관 계단에서 사진도 박다가 나무와 나무 사이 청량한 산책로를 바람 가슴에 품고 자박자박 걸으란다. 하늘이 내려와 담긴 담장 옆 연못에선 바위에 곱게 앉아 시 몇 줄 챙기란다.

요즘에 와선 사람이 참 간사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정동길의 운치와 덕수궁을 덮고 있는 코발트 색 하늘을 못내 떠나기 싫어 할 수만 있다면 이곳 지킴이로 계속 버티고 싶었는데, 이젠 다른 곳에 가더라도 나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가끔씩 든다. 젊은 날 떠돌아다니던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나 보다. 하긴 그 버릇 덕분에 얻는 것도 많다.

사무실 창가로 석양이 빨리 드는 겨울날, 고향 역 선로에 날리던 눈이라도 줄줄이 내리면 퇴근길에 발발거리는 강아지마냥 발심(拔心)을 이기지 못하고 핸들을 강원도로 돌려 대책 없는 여행길에 오른 게 얼마며, 그 덕분에 산골 마을의 초가지붕까지 내려와 파랗게 질려 있는 별들만 실컷 바라보다가 새벽이면 벼락처럼 달려 사무실로 돌아오고, 불쑥 떠났다 불쑥 돌아와서 가져온 글감을 정리하며 막 허물을 벗는 아침을 바라보던 게 어디 한두 번이며 사시사철 구분이 있었던가?

방랑 시인 김삿갓의 경계에야 근처에도 못가지만 싸돌아다닌 덕분에 글감은 적잖게 챙기는 편이니 그나마 수확이라면 수확인 셈이다.

뿐만 아니다. 퇴직 후 들어갈 전원 주택지를 구하러 다닌다며 매주 원정을 다니는 형편이니, 이만하면 나도 팔자에 역마살이 단단히 들은 모양이다. 이곳에 발령받아 온 지도 여러 해, 살살 엉덩짝이 들썩거릴 만도 하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어딜 가서 정동길 같은 곳을 걸어보며, 어느 곳이 덕수궁 마당을 지척에 둘 수 있으며, 여름이면 말매미 울음 정겨운 배재공원의 벤치를 어디에서 찾을건가?

색종이처럼 날리는 늦가을의 은행잎 속을 말없이 걸어가며 실낱 미소를 짓는 밤색 가방의 사내나, 늦은 밤 사무실을 나서면 눈에 띄는 모습, 희미하게 졸고 있는 가로등 밑으로 쓸쓸히 선 굽은 등의 사내는 덕수궁 돌길을 병(처)럼 안고 사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리라. 이 근방은 어디를 가도 내가 고즈넉이 앉아 있다. 때론 슬픈 얼굴을 하고 있고 때론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앉았다가 천천히 일어서 뒷짐을 지고 걷기도 한다. 돌담의 벽돌 하나에도, 건물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그늘에도 내 눈빛은 오롯이 박혀 바람을 맞이한다.

내가 이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이유는 부근에 녹지(綠地)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옆에는 비쩍 말라 바스락거리는 가슴에 신선한 샘물을 부어주는 시립미술관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슬픈 소리를 내는 해금 소리의 정동극장이 있기도 하고, 연극 한 편에 웃음과 눈물을 함께 실어 올린 극장 세실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어느 레스토랑에 가면 흘러간 노래를 생으로 들으며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문화의 보고(寶庫)를 버리고 내가 어딘들 가고 싶겠는가?

시인의 이름을 얻은 것도 수필가의 반열에 낄 수 있었던 것도 이곳에 발령받은 뒤의 일이고, 시집 출판기념회를 가진 곳도 이곳 시청이니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내가 이곳에 와서 많은 사람을 사귀고 지면을 넓혔으니, 시청은 내게 많은 부(富)?) 가져다준 행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옛말에 신발 장수가 나막신만 신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서울을 관통하며 중랑천을 만난 후 한강으로 들어가는 청계천이 수형자의 칼처럼 목에 두른 거죽을 벗고 푸른 물을 내보낸 지가 언제인데, 업무적인 일 이외에는 방문한 적이 없으니 딱도 하거니와 면목도 없다.

예전 영국은 식민지가 하도 많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지만 이 일대도 해가 지지 않는 땅이긴 마찬가지다. 낮에는 중천을 밝히는 태양이 상공을 달리고 어둠이 빌딩 숲에 짝하여 서면, 청계를 밝히다 고궁古宮을 아우르는 문화의 해가 더 멋지게 뜨기 때문이다.

꼭 소재를 구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건 아니지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물을 대할 때 자신도 모르게 사냥꾼의 시각으로 접근하게 됨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멀리 가서 소재를 구하는 것도 좋겠지만 가까이에도 취할 것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덕수궁과 문화의 거릴 지켜(?)냈다는 수성(守城)의 기쁨이 내 것만은 아니다. 츄리릿 날아오르는 시청 비둘기와 뱃고동 뿜어내는 수문장 역시 빠질 수 없다.

고궁이 즐비한 거리, 빨간 지붕의 성공회 건물과 아관파천의 풍상이 오롯한 문화의 이 거리를 떠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거리의 밤바람이 다가와 까불댄다.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 수필>로 수필 등단.(2004년)

시집 『바람이 사는 나라』, 『구름 몇 장 내게 주더니』, 공저 『시인의 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