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고임순

때로 우리는 낯선 땅을 밟고 그곳의 분위기에 젖다보면 잠시 나를 잊을 때가 있다. 강, 달 배, 숲, 시가 있는 풍경, 분강촌汾江村의 하루가 그러했다. 마치 5백 년을 거슬러올라간 듯한 신비스러움을 느꼈다.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聾巖) 종택은 퇴계 이황(李滉)의 스승이신 이현보 선생의 생가로 그의 17대손이 살고 있었다. 둘레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주는 예스런 기와집, 따스한 온돌방에서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새벽 대기는 폐부를 찌르는 상쾌함이었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근처 청량산(淸凉山)으로 향했다. 2월 하순의 산은 황량했지만 세상사에 찌든 등산객들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훤히 뚫린 시야, 가물가물 안개처럼 서리는 나목 잔가지 끝 너머로 봄소식은 다가오는가. 춥고 메말랐던 고행의 계절을 밀어내고 모든 생명이 깨어나는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활짝 어깨를 펴고 두 발에 힘을 주며 낙엽으로 범벅이 된 산길을 오른다. 지난 달부터 신장 투석透析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남편의 병실에서 몸에 밴 비릿한 내음을 신선한 산 정기로 씻어내며 마음도 다잡는다. 우리가 내일 삶을 마감한다 할지라도 오늘은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산.

청량산은 이름 그대로 맑고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 소금강이라 불리우는 이곳은 바위산이어서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 사이에 천년 고찰 청량사가 포근히 들어앉아 있었다. 신라 문무왕 3년(663)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산사는 태고의 멋과 자연이 숨쉬는 곳이었다.

청량사 입구 육각정자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숨이 차올라 잠시 발을 멈추었다. 고개를 드니 눈앞에는 한일 자로 가로막는 웬 현수막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글과 함께 나풀거리고 있지 않는가. 순간 이 색다른 화두(話頭)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바람은 무엇이고 소리는 또 무엇인가. 그리고 이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혼미해진다.

시원한 산바람을 마시며 소리를 찾아 두 귀를 연다. 새 소리, 풍경 소리, 대나무통을 타고 내려오는 약수물 소리, 목탁 소리,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어온다. 알고 보니 이 화두는 이곳 주지스님이 지은 산문집 제목이었다. 그리고 범종각 아래 안심당에 들어선 쉼터. 황토벽에 너와지붕을 얹은 고풍스런 찻집 이름이기도 했다.

약수물로 목을 축이고 단숨에 계단을 올라가 유리보전(琉璃寶殿)에 이르러 고려 공민왕의 친필인 육중한 현판 글씨 앞에서 숙연해졌다. 이 법당 안에는 병든 사람을 치료한다는 특이한 부처인 약사여래불이 있었다.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의왕으로서 신앙되는 부처님이었다.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었는데 금박을 입혀 겉모습만으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더 산 속으로 들어가면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은신했던 ‘웅진전’, 의상대사가 입산수도한 ‘의상봉’, 퇴계 이황이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천하 명필 김생이 글공부하던 ‘김생굴’ 등 많은 유적지가 있다는데 오늘은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터벅터벅 침목으로 만든 길을 내려와 찻집에 있는 안심당 앞에서 은은한 풍경 소리에 발을 멈춘다. 바람이 없으면 저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을 풍경이 아닌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독특한 필체로 나무에 각한 찻집 간판을 보자 내 머리 속은 또다시 수수께끼 같은 화두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하산하여 서울행 버스에 올라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이 말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석지현 스님의 산문집을 폈다. 글을 읽으며 30년 넘게 행자(行子)로 산 청량사 주지스님과 함께 청량산을 소요했다. 구절 구절마다 깨우치는 자연이 주는 한량없는 법문. 시적인 감성으로 산사의 사계절의 흐름을 물 흐르듯 담아낸 정갈한 글들이 묵향처럼 번지며 가슴을 울린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꽃이 필까 잎이 질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의 저쪽/ 아득한/ 어느 먼 나라의 눈 소식이라도 들릴까.’

눈물이 나도록 고요한 가을 밤, 바람이 방문을 두드리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문득 어느 죽음을 떠올리는 스님. 삶은 가난이나 육체적인 고통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아파하고 헤어지는 과정 때문에 더 어려운 것 같다고 술회하며 밤을 지새운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은 운명의 끈에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는 귀 밝은 스님은 청량산의 천년의 바람, 천년의 소리를 한 권의 책 속에 담아내고 있었다.

책을 덮으니 밤은 벌써 삼경을 넘은 듯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도심의 겨울 밤도 산사처럼 고요하다. 그 적막 속에 바람이 일고 있다. 내 안의 열정을 깨우는 바람, 파랑새를 날려보낸 가슴 속에서 계속 비상을 꿈꾸는 바람이 불어대고 있다. 그리고 외치고 싶다. 늘 믿음으로 인내하며 부르짖는 소원을 지금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절규(絶叫)하고 싶다. 목소리의 뿌리는 사색이고 영혼의 울림이 아닌가.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이 목소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한 편의 수필이 탄생되리라. 체험에 바탕을 두고 내면으로 치달으며 삶을 풀어나가는 나만의 글쓰기는 마침내는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한 작업이다. 고뇌를 통한 정직한 자기 노출인 수필은 자기 자신의 의식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순수한 내 목소리로 목청이 터지도록 부르고 싶은 노래.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처럼 내 안에서 바람은 계속 불어대며 내 목소리를 흔들어줄 것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청량산에서 풀지 못한 화두를 나름대로 풀어보는 밤, 시간은 흐르면서 또 새로운 내일은 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