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南基樹

담 옆 북서향의 바닷가에서는 햇빛을 반사하는 물결의 광채가 온 바다에 퍼지는 오후 한나절이 되면 바다는 언제나 거대한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는 빛의 덩어리로 변하였다. 그런 오후가 되면 나는 바다를 덮고 있는 그 큰 빛의 광휘에 끌려서 나도 모르게 물가로 내려가 물에 발을 담가보고는 하였다.

발을 물에 담그고 있으면 서늘한 감촉이 발목 주위에 맴돌았다. 몸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도 물 속처럼 맑아서 생각지도 않은 여유가 더불어 마련되는 듯싶은 한 때였다. 멀리 수평선이 가물가물 내다보였고 잔잔한 물결이 빛의 가루처럼 물 위에 뿌려져 있었다. 발목 주위에서 남실대는 물결은 더없이 다정하게 느껴졌었다. 검은 색, 회색, 적갈색의 화산암들이 울쑥불쑥한 물가에서 그렇게 한가로이 앉아 있는 때면 바다가 아름답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새어나왔다. 초여름 한철이 되면 물에 잠긴 바위 언저리는 진초록 해초들로 융단처럼 덮이는데, 달에 한두 번씩 간만의 차가 커지는 때면 물결에 드러났다 잠겼다 하는 그 무심한 초록 빛깔은 물을 먹어 더욱 까맣게 보이는 바위 색깔의 돋음으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어서 자연의 무구한 면을 대하는 놀란 가슴이 탄성을 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바다는 처음에는 아름답다고 할 어떤 것으로 다가오고는 했었다.

그러나 바다는 살아 있는 것들의 삶으로 겹겹이 얽혀 있어서 수평으로 드러나 보이는 물결의 광채처럼 그렇게 간단히 일러버릴 무엇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윽고 뒤따르는 것이었다. 발이 물에 잠겨 있는 짧은 동안에도 발가락 사이로 간질간질 기어오르는 바다 다슬기의 삶이 바로 눈 아래 물 밑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정강이에 맺혀 있는 기포를 먹이로 여긴 열대어들은 앙증맞은 입으로 살갗을 따끔따끔 쪼아대었다. 해녀들은 자맥질을 해가며 소라를 따고 미역을 뜯어 올렸다. 물개 섬을 드나드는 작은 관광선은 관광객들로 언제나 분주하게 보였고, 해동 앞바다에는 물 아래로 늘여져 있는 정치망이 사시사철 눈에 띄었다. 여객선과 상선들과 섬처럼 커다랗게 보이는 유조선들이 연기를 뿜으며 멀리 수평선을 넘나들었다. 새벽이면 담 밖 낚시터 앞까지 와서 자리돔을 잡는 어선들이 자욱한 안개 사이로 내다보이기도 했다.

점차로 바다는 아름답다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새로운 느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것은 누구라도 바닷가에서 한동안 지내다 보면 자연 수긍하게 될 것이었다.

 

2

바닷가는 실제로는 누구나 언뜻 해 보는 생각처럼 그렇게 늘 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물때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 물가는 밀려온 해초더미로 덮이고는 하였다. 그런 후면 드러나 있는 바위마다 얼룩덜룩 이겨 붙은 해초의 마른 모습이 여기저기 흉하게 보이기 일쑤였다. 더러울 까닭이 없는 것을 환히 아는 마음이라도 겉보기로는 선뜻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풍랑이 높이 일고 바람이 며칠이고 불 적이면 바닷가는 물결에 밀려온 갖가지로 난장판처럼 변하였다. 가두리 양어장에서 밀려온 통나무들, 한쪽 옆구리가 터져나간 나무상자들, 어구의 파편들, 찢어져 얽혀 있는 어망 조각들, 하천에서 떠내려온 너겁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기 마련이었다. 크고 작은 스티로폼 부표들은 바람을 타고 뭍까지 날려들어 잡초 사이에서 희끗희끗 나뒹굴었다.

낚시꾼들이나 해변을 찾아온 관광객들의 유물들도 끊이지 않았다. 뒤집힌 양산, 줄이 끊어진 슬리퍼, 깨어진 플라스틱 바가지, 뒤엉킨 낚싯줄, 깨진 소주병, 고추장 통, 양초 도막, 엄지와 검지가 잘린 채 뒤집혀 있는 목장갑들, 돌 틈에 끼어 너풀거리는 비닐 봉투들…….

마을 사람들이나 학생들이 간간이 물가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탈 만한 것들은 군데군데 모아서 태워버리기도 했다. 그런 곳은 사람들이 남모르게 개를 그슬려 먹고 떠난 데처럼 거뭇거뭇한 자취가 남아 있어서 보기에 언제나 흉했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아름답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바닷가의 숨겨진 면면을 조금씩 드러내 보여주는 지표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는 널려 있는 것들이 늘 그렇게 있을 것처럼 처음에는 보인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바닷가에서는 그대로 오래 머물지 않았다. 첫눈에 들어오는 바닷가는 한순간의 모습일 뿐으로, 바닷가는 살아 있는 듯 늘 변화 중에 있었고, 다시 찾는 눈에 바닷가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띠었다. 모든 것들이 서로 동화하면서 새로운 바닷가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바닷가를 한동안 떠났다가 어느 날 다시 찾아든 마음에 문득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다. 너저분하던 것들은 간데없이 사라졌고, 바닷가는 햇볕 아래서 제 빛깔로 돌아와 있는 검은 돌들로 다시 맑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직 남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들도 그 동안 삭고 바래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의 일부로 환원되어 있었다. 다시 찾은 눈앞의 바닷가는 전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사람들이 끼쳐놓는 행적들은 극히 미미할 뿐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바닷가에서 마음은 새로운 것을 보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돌들이 바다와 태양과 함께 어울려 나가는 방식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긴 시간을 두고 삭이고 녹여내고 몰아들여서 근원적인 하나로 환원하여 나가는 방식이었다. 인간의 것과는 기준이 다른 기다림의 방식이요, 살아 있어 서로 작용하며 근원으로 회귀하는 방식이었다. 하나인 근원으로 지향하는 숨결이, 이런 기다림 가운데서 바닷가 눈앞에 순환의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이런 느낌은 지금까지 흔히 대하여 온 아름답다는 말의 일상적 의미로는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3

나는 하늘 아래 바닷가에 이처럼 널브러니 누워 있는 모습들을 통해서 매이지 않고 제멋대로인, 초연한 한 존재의 옆모습을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하였다. 하늘 아래의 어떤 것에서도 벗어나 있는 존재의 온전한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바다는 단순하였고 무심하였다.

 

4

이런 바다는 또한 하늘의 둘레이기도 하였다. 바다는 그 앞의 시선을 둥그렇게 가두어놓았다. 무겁도록 짙푸르고 질긴 물빛에 마음은 본의 아니게 눌리었다. 요지부동인 수평선에 속절없이 잘려버리는 시선이 마음 속에 저도 모르게 무력감을 깔아나갔다.

나는 달리 할 말이 없는 때가 많았다. 한결 같고 빈틈없는 바다의 충일한 활력이 참으로 거대하게 느껴졌었다. 그 많은 물결을 가두어놓고 있는 바다, 언제나 가득한 바다의 모습들이 나에게서 일상적인 생각을 지워놓고는 했다. 손바닥 위에서는 맑고 보드라운 한 움큼의 물에 지나지 않지만, 큰 몸을 이루어 바다가 되면 큰 바람을 일으켜서 천지에 떨치는 그 기세가 생명에 대한 관점을 이리저리 돌려보게 했다.

이곳 사람들은 바다를 두고 아름답다는 말을 좀처럼 쓰지 않는 듯했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바다를 아름답다고 하면 그들은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버린 듯 별 반응이 없이 미소만 지었다. 바다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들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그들은 그런 바다와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그들의 삶이고, 삶의 진리는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작고, 기교에 흐르고, 다듬기에 여념이 없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바다의 아무것에도 닿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리하여 새롭게 대하게 되었다. 내가 닮을 수 없는 그것에 대해서, 내가 가까이 할 수 없는 그곳에 대해서 내가 가진 말들은 모두 거리가 진 것들이었다. 바다의 거대한 무심함 앞에서 나의 자아는 언제나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었지만 나는 말만으로는 바다의 귀틀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더듬어볼 수 없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나를 밀어내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물결이 긴 시간 씻어내고 벼린 돌들의 날카로운 표면 위에서 얇은 발바닥 한 겹만으로 서 있는 육신의 무게가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 없었다. 나는 극히 무력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창조된 그 나름의 전통과 역사에서 내가 제외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각처럼 떠올랐다. 내가 근원에서부터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사람들 사이에서 닳아진 습성들이 바닷가에서 자신을 얼마나 옹색하게 가두어놓고 있는가를 새삼스러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인정해야 했지만, 그때 나는 부끄러움 가운데서도 일종의 후련함 같은 감정을 맛보기도 했었다.

나에게 옆모습만으로 드러나 있는, 내가 닮을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그것은 그런데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전체의 일부로서 제 위치를 정하고 물결과 바람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바닷가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