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다리

 

                                                                                양미경

잔잔한 수면 위로 놀빛이 물들기 시작한다.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충무교(忠武僑) 위에서 바라보는 통영만의 아기자기한 바다가 이렇게 정겹게 느껴지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나는 충무교보다는 운하교(雲霞僑)라 부르기를 즐겨한다. 하늘 가까이 아니, 손 내밀면 금방이라도 구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어렸을 때는 철이 없어 바다에 무심했다. 나이 들면서는 사는 일에 바빠서 바다에 무심했다. 지난 세월 동안 무수히 건너다녔을 다리, 오늘은 왜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서는가.

남망산(南望山)의 그림자는 붉은 선이 뚜렷하다. 미륵도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작은 섬들의 그림자도 이제 침묵 속으로 묻혀든다. 땅 위에도 불빛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바다 위에도 작은 배들의 불빛이 점점이 흔들리며 늘어난다. 고개를 드니 섬 그림자 위에도 희미한 별빛들이 하늘에 뜬 배의 불빛처럼 흔들리고 있다. 지금 충무운하(忠武運河)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아치형의 통영대교(統營大橋)도 파란 불을 밝힌다. 저 불빛은 아마도 밤이 지치도록 아름다운 오색 불빛의 향연을 펼치리라.

나는 밤바다에 빠져든다. 다리 난간의 퇴색한 빛깔과 그 아래를 흐르는 운하의 물길을 보며 사색에 잠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시간 위에 다리를 놓고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진행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다리는 시간을 이어주는 통로다. 그래 다리가 지금 내 인생의 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단절의 틈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사이를 이어줄 무엇인가를 간절히 갈망한다. 그 역할을 맡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는 사람 사이에 놓인 아름다운 다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리는 연인들 사이에 놓아진 사랑의 통로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한번에 가슴의 문을 활짝 여는 대신 조금씩 조금씩 문을 열어 아주 조금씩 상대를 받아들인다. 그 과정이 항용 평탄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겨우 조금 열었던 문을 닫아버리기도 하고, 수없는 노크에 다시 열기도 하며 짧지 않은 시간과 질곡을 넘어 비로소 가교 하나를 두 사람 사이에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다리도 그렇게 완성된다. 처음에는 듬성듬성 징검다리였다가, 시간이 흐르면 보다 든든한 나무다리가 되다가 나중에야 완전하고 탄탄한 돌다리가 되는 것이다. 그 과정도 수월치만은 않다. 홍수에 징검다리가 쓸려 가버리기도 하고 비바람에 나무다리가 무너지기도 한다. 포기하면 다리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연인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다리를 비유로 드는 일이 있다.

소설을 영화화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여주인공은 중년 여성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나 역시 대리 만족일망정 짜릿함을 맛보았다. 불과 사흘 동안 뜨겁게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간 중년 남녀의 사랑은 보는 이의 가슴에 경악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비밀한 사랑을 알아낸 것은 유품과 편지를 정리하던 자녀들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 원망보다는 오히려 감동을 느끼며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된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열연한 ‘퐁네프의 연인들’이다. 화가였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가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걸인처럼 거리에서 살아가는 미셸과 곡예사라지만 거지나 다름없는 알렉스가 파리 센 강의 퐁네프에서 만난다. 마음 속의 상처와 가난으로 누더기 모습을 한 이들은 하루하루 절망적 삶을 살아간다. 알렉스는 미셸을 사랑하나 미셸은 첫사랑 줄리앙에 대한 기억을 떨치지 못한다. 각자의 길로 헤어졌던 두 사람은 3년 후 크리스마스에 퐁네프 다리 위에서 재회한다. 불꽃같이 살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그들의 등 뒤로 퐁네프의 다리가 펼쳐질 때 내 가슴엔 뜨겁게 차오르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있었다.

‘퐁네프’는 불어로 ‘아홉 번째 다리’라는 뜻이지만 ‘새로움’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퐁네프``─``새롭게 시작하는 다리라는 의미가 가슴에 깊게 와 닿는다.

운하교 난간에 가만히 서 있으니 마치 퐁네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리 위로 지쳐버린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과 희망과 슬픔과 사랑이 첩첩이 쌓여 있을 다리, 그 난간 너머로 인생을 사랑하고 살아낸 그들의 이야기가 물살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는 것 같다. 이곳 어딘가에, 저 파도 어딘가에 나의 흔적도 한 점 여운으로 밀리고 있을까. 흔들리는 배들의 불빛에 난간마저 흔들리는 듯하다.

어느 새 어둠으로 덮인 하늘 어딘가에 통영만을 바라보며 인생과 사랑을 노래했던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선생이 고향 바다를 비추는 별빛으로 흔들리고 있으리라.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94년)

경남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2004 문예진흥원 우수도서 선정.

수필집 『외딴 곳 그 작은 집』.